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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초 Jul 24. 2020

내 안의 틀을 넘어 다문화교육 활동가로, 최현정

내 이름을 불러줘 no.3

<내 이름을 불러줘>는 31개 시군에 거주하고 있는 경기 시민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하는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 기획자는 최초의 인터뷰이만 섭외하며, 이후로는 인터뷰이가 자신의 지인 중 다음 차례의 인터뷰이를 추천하는 방식입니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다섯 번째 인터뷰이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여섯 번째 인터뷰이 혹은 열 번째 인터뷰이와는 어떤 접촉점이 있을 수도 있지요. 이런 방식으로 인터뷰이는 지인의 지인 형식으로 모두 연결되고,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을 구현해내게 됩니다. 본 프로젝트의 무대는 경기도이지만, 우리 사회를 이루는 이러한 방식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는 실상,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각각의 인터뷰이는 그들 삶을 이루는 행복, 가치, 꿈, 흔들리던 순간 등을 묻는 10가지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경험과 삶을 나누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또 다른 모양의 길과 삶을 들여다봅니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 당신의 이야기, 그리고 익명으로 존재했던 이웃들의 고유한 삶을 품고 있는 도시의 다양한 얼굴입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이웃들의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하고, 다른 이의 걸어간 길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며, 불확실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희망을 만들어갈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이름과 사는 곳은?

고양시에 사는 최현정입니다. 



2. 당신이 사는 도시에서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일산이란 도시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호수공원과 공원 길에 심어진 많은 나무들이었어요. 아파트 사이사이로 나 있는 공원 길의 봄여름가을겨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거든요.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길이 더욱 우거지고 예쁘게 정돈되어, 이런 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혼자만 누리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곳이 많답니다. 세월만큼이나 일산도 풍성해지고 복잡한 도시가 되었지만요.



3. 어떤 일을 해오셨고, 지금 몰입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을 키우다 어느 정도 자라서 제 손이 덜 필요해지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나의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의 엄마, 며느리, 아내, 딸이 아닌 나.. 내 이름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때가 서른아홉이었어요. 그리고 마흔 살이 되던 해, 사이버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진 아이들 열심히 키우는 주부였어요. 다만, 큰 딸이 책을 엄청 좋아했는데 정작 엄마인 내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던 터라,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을 한 이후로 학교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다 보면 한 두 권이라도 책을 빌려다 줄 수 있을 테고, 신간이나 양서를 접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책 읽어주기, 책 활동, 그림자 연극 등 다양하게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9년 동안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좀 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고, 다문화 아이들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시작하고는 후회도 많이 했고, 학위를 받더라도 과연 내가 바랐던 대로 내 자리, 내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불안감과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금세 졸업을 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서 중도입국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 후 줄곧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초중고에서 다문화 인식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시 대학원에서 다문화교육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다문화교육의 중요함을 더욱 느끼게 되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4. 무엇이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나요? 혹은 그런 사람이 있나요?

사랑하는 두 딸성당 대모님이 저의 생각과 행동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꼽는다면, 함께 일하는 권 선생님이에요.   

한국어 공부가 거의 끝나갈 즈음, 김포시외국인주민지원센터로 한국어 참관수업을 가게 되었어요. 마침 권 선생님이 중도입국 아이들과 한국어 수업을 하고 계셨는데, 첫인상이 참 좋았어요. 참관수업이 계기가 되어 그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선생님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보여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일은 어떻게든 해내시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드는 추진력도 있으세요. 무엇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의 스펙트럼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요. 어떤 사람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는다 해도, 그 사람 나름의 이유를 이해할 거 같은 분이랄까요? 게다가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심사숙고하며 입이 무거우신 분이라, 선생님의 의견은 제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5. <나의 컬렉션> 당신이 아끼는 7가지 아이템으로 당신의 취향을 소개해주세요.

1) 자동차 : 비 오는 날 음악 들으며 혼자 드라이빙하기(내가 젤 좋아하는 것!). 어릴 적 학교랑 집이 너무 멀었고 비가 오는 날이면 신발과 옷이 모두 젖는  날이  많았어요. 누구 한 명 제게 우산을 가져다 줄 사람도, 상황도 되지 읺았어요. 그래서 비 오는 날을 제일 싫어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제일 먼저 차를 사겠다고 마음먹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다음부터 비 오는 날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것, 오롯이 나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마치 모든 걸 다 얻은 그런 느낌이랄까요. 차창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요.  

2)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쓴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해요. 신선한 글과 사건 전개 방식이 엄청나게 흥미로워서, 도서관을 두루 돌며 이 작가의 책을 빌려보곤 했어요. 그렇게 반년 정도를 이 작가의 책에 탐닉했던 기억이 나네요.

3) 음악 :  <You are the reason>, Calum Scott

4) 노트북 

5) 에어 팟 프로

6) 여행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7) 맛있는 커피가 있는 곳 



6. 일상에서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두 딸이 웃을 때, 소소하지만 작은 것을 성취하고 결과를 보며 흐뭇해하며 웃을 때, 아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7.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원칙이 있나요? 그것을 얻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작든 크든 누구에게든 대가를 치르며 살아간다. 

내가 하는 크고 작은 행동들이 세상을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 준 일은 없는지, 내가 받은 상처는 또 없는지..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돌고 도는 세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8. 인생을 살며 큰 변화가 있었던 일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고 그로 인해 무엇이 바뀌었나요?

나이 마흔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맞는 선생님들과 함께 다문화 감수성 교육에 대한 연구도 하고, 강의도 합니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 같았던 다양한 배경의 이주민들과의 만남이 지금까지의 제 삶과 생각을 흔들어놓기 시작했어요. 나도 모르던 내 안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닫게 되면서, 단단하게 쌓아져 왔던 그 관념들이 조금씩 균열이 나기 시작한 거예요. 40년 넘게 살면서 옳다고 생각했던 철학들이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많이 힘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조금씩 변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큰 변화죠?   




9.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모험, 꿈이 있나요? 그것을 위해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게 있나요?

한 달 이상 해외에서 살아보기.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요. 문화의 차이가 참 클 텐데, 이주민들의 삶을 보면서 어렵고 힘든 점이 많겠구나 생각해요. 제가 막연히 느끼는 것과 직접 경험하는 당사자가 느끼는 것은 또한 많이 다를 테고요. 그래도 새로운 문화 속에서 살아보는 것을 한 번쯤 해보고 싶어요.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10. 삶에 흔들리는 순간들에서 당신을 지켜주는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두 딸들, 가족.  

나를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늘 혼자서 결정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그렇게 살았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또 다른 나의 가족이 만들어졌고,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잘 몰랐던 거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게 어렵고 힘들기만 했으니까요. ‘난 혼자 살았어야 했어. 이기적이고 게을러서 혼자 살아야 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알았습니다. 내게 가족이 없었다면, 혼자 살았다면, 내가 지금처럼 열심히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가족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살 때 살아가는 힘을 얻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아, 이래서 가족을 찾는구나' 이 생각을 저는 지금에서야 합니다.. ㅎ 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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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터뷰이를 소개해주세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저의 큰 딸, 심수아입니다. 미숙한 엄마를 만나서 마음도 많이 아팠을 텐데 너무나 예쁘게 잘 커준 울 딸. 너무 맑고 이쁜 마음 때문에, 혹시나 상처를 받진 않을까 염려되는 아이. 어떤 상황에서도 제 편이 되어 주는 아이. 이제는 20살이 되어서 기쁠 때나 슬플 때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아이. 아무리 사소한 것도 늘 고맙다는 말을 제게 하는 아이. 그래서 늘 고마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현정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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