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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사람 Nov 21. 2018

어느 날의 여행

이상하고 나른했던, 

스무살 후반의 겨울이었다. 긴 휴가를 낼 수 없던 일정 중에 여행이 가고 싶었다. 나는 무작정 금요일 밤에 출발하는 부산행 버스를 예약했다. 버스는 서울에서 밤늦게 출발해, 부산에 새벽 도착 예정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익숙했지만 짧은 시간에 먼 거리를 다녀오는 무모한 일정이라 체력이 걱정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 차 안에서 하루를 머문 셈인데, 다녀온 후 온 몸이 욱신거렸다.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내 뒤에 탄 모녀의 이야기가 조용한 중에 들려왔었다. 엄마가 딸에게 한 한마디. 

“얘, 이거 두 번은 못 타겠다.”    

 

버스는 깜깜한 새벽에 해운대에서 멈췄다.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일정대로 움직이면서 부산 투어를 해주는 것까지가, 내가 신청한 상품이었다. 나는 마음이 바뀌어서 버스가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에 맞춰 합류하기로 하고, 개인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는 가까운 찜질방을 찾았다. 마침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찜질방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버스에서 보낸 찌뿌둥한 몸을 풀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뜨거운 물에 샤워만 하고 나왔는데도 날아갈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찜질방에서 나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국밥집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었다. 따뜻한 국물을 한 수저 먹고 나서야 진짜 부산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나는 부산이 처음이었다. 국밥에 만 뜨거운 밥을 먹으면서 창밖을 두리번댔다.     


그날은 무척 좋은 날씨였다. 만개한 동백꽃이 작은 화단에서 팔랑거렸고 눈부신 햇살이 길거리에 가득했다. 이른 아침이라 거니는 사람도 적었다. 바다를 따라서 걷는데 파도치는 소리, 사람들의 웃는 소리, 산책 나온 강아지 짖는 소리가 바다를 더 예쁘게 만들었다. 버스에서 긴 시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마음이 온통 나른하고 편안해졌다. 햇빛이 좋은 날이라 그랬는지 완연한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늘어났다. 모래사장에 앉아 쉬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걷던 것을 멈추고 평평한 곳을 골라 풀썩 앉았다. 그리고 바다를 한참 바라봤다.      


파도가 거품을 내면서 모래사장으로 밀려오면 바다는 자신의 일부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금세 파도를 끌어당겼다. 밀려오는 바닷물 아래에서 작은 모래알들은 데굴데굴 굴렀다. 거기에 찰랑거리는 물소리까지 더해져 한참을 앉아 있어도 지루한지를 몰랐다. 볕이 좋은 바다의 분위기는 사랑스러웠다. 바다에 반사되는 햇빛이 강해질 때쯤, 핸드폰이 울렸다. 부산과 근접한 도시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둔 터였다. 부산에 혼자 가는 길이다. 반나절 함께할 수 있겠느냐고. 조금 늦게 답장이 도착했다. ‘지금 가는 중이야.’     


친구와 부산역 근처 정류장에서 만났다. 대학 동창이었던 녀석과 낯선 도시에서 오랜만에 만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사이에 비해 얼마는 더 얹어서 반가운 마음이었다. 친구 소개로 어느 만둣집에 들어가 만두를 포장했다. 맛집이라고 했다. 그리고 간 곳은 태종대였다. 

‘태종대는 백악기말에 호수에서 쌓인 퇴적층이 해수면 상승으로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만들어진 파식대지, 해식애, 해안동굴 등의 암벽해안으로 유명한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 경관지’라고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자그마한 열차에 올라타자 태종대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서서히 이동했다. 


우리는 중턱쯤에서 내려 바다를 내려다보며 만두를 먹었다. 그리고 정문으로 가는 방향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겨울이라 추웠지만 열차 시간이 맞지 않아 도리가 없었다. 태종대에서 내려와 간 곳은 또 다른 대학 동창이 있는 곳이었다. 전공과 무관하게 선박 기관사 시험을 준비하던 녀석이었다. 마침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터라 친구와 함께 찾아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타지에서 지내던 친구 얼굴이 까칠했던 걸로 기억한다. 밥을 먹고 금세 헤어져야 했는데,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였다. 

우리는 연수원을 함께 걷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부산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늦었다. 꽤 긴 시간을 정류장에 있으면서 친구가 문득, 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야?” 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라고 대답했었나.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찬바람은 불었지만 햇빛이 내리쬐던 날이었고, 피곤한 몸이 나른해져 친구를 옆에 두고 잠시 졸았던 것 같다.



친구는 서울로 가는 버스가 있는 곳까지 함께해줬다. 서울에 오면 그땐 내가 함께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순식간에 잠이 들었고, 서울은 출발할 때와 같이 밤이었다. 부산으로 출발하던 날로 시간이 거꾸로 간 느낌에 눈을 비비고 버스에서 내렸다. 이상하고, 나른했던 여행은 마치 홍상수 감독의 영화처럼 느껴졌다. 그 필름은 집으로 가는 내내 등 뒤에서 비추다 집에 도착해서는 이내 흑백으로 바래졌다. 피곤한 몸이 침대에 눕자마자 주변의 풍경들이 모두 암전됐다. 그리고 바쁘게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짧았던 이날의 여행은 기억에서 멀어졌었다. 그리고 한참이 흘렀다. 


혼자 살던 집을 정리하고 가족이 있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려 짐을 정리하던 밤. 책상에서 달그락, 하고 조개껍데기들이 떨어졌다. 햇빛이 좋았던 부산 해운대에서 집어온 것들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서울에서 혼자 살던 원룸 밖은 대로변을 마주하고 있어, 찻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짐정리로 지저분한 방안에서 소음을 뚫고, 하얗게 빛나던 조개껍데기. 

느릿느릿하고 나른했던 날들이 그리워서 잠시 앉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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