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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사람 Apr 26. 2019

데굴데굴

나의 소원이 데굴데굴, 차가운 곳에서 뒹굴지 않기를 바랐다.



 몇 년 전, 여름에 떠났던 인도 여행이 중반에 이르렀을 때 머무르던 지역에는 아침마다 염소를 제물로 바치는 칼리 사원이 있었다. 인도는 다신교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신은 시바. 시바의 아내, 칼리 여신 또한 인도인들에게 사랑받는 신이다. 칼리는 해골로 만든 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여러 개의 팔을 엮어 만든 치마를 입고 있다. 입 주변은 늘 피로 물들어 있다. 피 한 방울마다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악마를 죽이기 위해 칼리가 창으로 악마를 찔러 그 피를 모두 받아 마셨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모습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분노의 여신이 자신들의 불행을 깡그리 태워버릴 거라는 믿음으로 만든 건 아닐까 싶은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여신의 사원으로 향했다. 들어서기 전부터 주변에 번진 피비린내에 머리가 절로 아파왔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염소 대신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장소였다.     

 

 시멘트 바닥으로 된 네모난 제단 주변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단두대와 피가 흘러가는 배수로가 가로질러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제물은 불쑥 나타났다. 단곧 단두대가 내려가고 염소 머리가 데굴데굴 굴렀다. 머리를 빼앗긴 몸통은 버둥거리다 시간을 두고 멈췄다. 움푹 파인 파이프 모양의 홈을 따라 염소의 피가 흘러갔다. 그 피를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 직전에 다녀온 바라나시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윤회의 강에서 누군가는 몸을 씻고 죽은 자를 태워 재를 뿌리는 강. 신분 제도에 살면서 죽어서는 평등하게 바라나시에 뿌려지길 염원하며 돈을 버는 많은 사람들. 어둔 밤 사람을 태우는 불길을 뒤로 하고 배를 올라 강으로 나갔다. 배에 오르기 전 어린아이가 내게 디아(꽃으로 장식한 작은 접시에 올린 초)를 내밀며 터무니 없이 비싼 값을 불렀다. 평소 같았으면 흥정으로 몇마디 오갔을 텐데 나는 토를 달지 않고 그 값을 다 쳐서 디아를 샀다. 배에 올라 강으로 나가자 육지에서 펼쳐지는 화장터의 불길과 화려한 의식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결에 일렁이는 배를 따라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생겨난 트라우마가 구토처럼 속을 치고 올라왔다. 멀미 같은 어지럼증을 견디려고 어두운 강쪽 멀리로 시선을 던졌다. 무척이나 까만 강의 지평선을 따라 젊은 엄마 손을 붙잡고 뛰어가는 어린 내가 보이는듯 했다. 먼 외국에서조차 따라붙은 연약함에 몸서리쳤다. 나는 디아에 불을 밝혀 강으로 띄었다. 지난날의 엄마와 내가 지평선을 달리다 디아 불빛을 향해 몸을 돌려서 멈춰섰다.     



 그 지점에서 나는 다시 칼리 사원의 염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침의 제물이 된 염소를 관계자들이 수습하고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다 보지 못하고 향 냄새와 피비린내에 지쳐 사원을 급히 나왔다. 그때도 사원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었다. 



 문 옆에 서서 사원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만신이 있다고 믿는 이 나라에서 사람들의 소원을 그 많은 신이 나누어 들어주는 걸까. 디아를 띄우며 뱉은 나의 소원이 염소 머리처럼 데굴데굴, 차가운 곳에서 뒹굴지 않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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