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모두가 퇴근하고 홀로 남은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마주할 때, 막히는 도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 오래된 노래를 들을 때, 몸이 아플 때, 인상 깊었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됐을 때 혹은 어떤 밤이나 낮이나, 이유 없이 그냥, 외로워질 때가 있다. 마음속으로부터 올라오는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언젠가 연고가 없는 외국에서 늦은 시간 버스를 기다린 적이 있다. 비 오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방인으로써 느끼는 생경한 기분에 자유와 불안함이 밀려온 적 있었다. 그리고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엄마를 만나고 동생과 텅 빈 집으로 돌아갈 때 차가운 쓸쓸함을 느끼기도 했다. 모든 외로움은 어디에서부터 찾아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걸까. 나에겐 가족과 친구가 있고, 속한 공동체도 여럿 있지만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우울은 또 다른 이유를 들고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시가 좋다. 시는 함축적이지만 아름답고, 언어를 고른 시인의 긴 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로울 땐 종종 책장에 꽂힌 시집 중 제목이 와 닿는 것을 꺼내 읽는다. 시인이 긴 시간 견디며 뽑아낸 글을 읽으면 나의 외로움도 그 시간에 묻혀 흐릿해지는 기분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 무뎌질 감정을 시집을 통해 빨리 흘려버리는 거다.
어느 날은 허수경 시인의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다. 타국에서 맞은 죽음 너머로 그녀의 고독하고 치열한 글이 남았다. 그녀의 시집 제목은 시집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모든 시적인 메타포를 다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혼자 가는 먼 집이라니…. 우리는 가족에 의해 태어나지만 몸은 온전히 하나다. 무리 속에서 찾아오는 외로움이 우리의 본성은 혼자라는 걸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혼자서 어디로 가는 걸까. 혼자 가는 어딘가의 먼 집이 그리워서 자꾸 외로워지는 건지 의아한 마음을 품어본다. 혼자서 가는 먼 집에 다다르면 모든 외로움을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 쉴 수 있는 안락한 의자가 놓여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