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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혁민 Aug 08. 2018

솔직한 연기

배우 성동일이 예술 고등학교에서 일일 연기 수업을 하는 짧은 영상을 봤다. 그가 한 어떤 말보다도, “솔직하게 연기하세요.”라는 말이 괜히 거슬려 내 주의를 끌었다. 다른 유명한 배우들도 연기에 대한 지도를 할 때 이 말을 하는 것을 몇 번 보기도 했다. ‘솔직하게’라는 말과 ‘연기하라’는 말이 같이 쓰이는 게 참 모순적으로 들렸다. ‘솔직하다’는 말은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다’를 의미하는데, 본인이 아닌 다른 가상의 인물을 표현하는 연기에 어떻게 거짓이 없을까.


이런 나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다. 연기란 단순히 어떤 인물인 척하는 게 아니다. 그런 인물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까지는 허구지만, 그 배역의 삶과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분석하고 이해하고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게끔 표현하려는 배우의 노력에는, 평소에 사람들을 바라보고 느껴온 그의 가치관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 무대와 스크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단순히 가상의 인물이 아니다. 배우가 ‘저는 이 인물을 이렇게 이해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떻습니까?’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쯤 되면, ‘솔직하게 연기하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하긴, 연기도 예술인데, 그 예술에 ‘솔직함’이 빼면 얼마나 남을까.


대충 ‘이런 감정이겠거니’ 하고 슬프면 눈물 흘리고, 화가 나면 찡그리고 얼굴을 붉히는 게 연기가 아니다. 그런 얕은 이해로 표현한 것은 말 그대로 꾸민 것일 뿐이다. 과장된 연기에는 확신이 없어 힘이 없거나 부담스럽다. 우리는 그런 ‘척’에 감동받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이긴 용기에 박수는 쳐주겠지.


솔직함에 대해서 생각한 지금, 문득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솔직한 수업을 하고 있을까. 나도 내가 이해한 만큼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고 있을까. ‘이런 내용이겠거니’ 하고 학생들의 수준을 내 멋대로 판단하고 그만큼만 공부하고 만족한 것은 아닐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쇼맨십'이랍시고 조금만 알고도 많이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며 교육자 행세를 한 것은 아닐까.


‘솔직한 수업’을 이상으로 잡고 영어를 공부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그러나 교육이란 내가 많이 아는 게 아니라, 학생을 잘 가르치고 열심히 공부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건 그 과목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가르치는 학생에 대한 이해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감동해서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는 없다. 이상은, 그저 이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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