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은 F학점
20살 초반 대학생 새내기 때,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사소한 이유들이 쌓이고 쌓여 내 삶의 첫 딜레마. 우울 늪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입학 후, 나는 낯선 다름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예를들면, 그닥 챙겨먹고 싶지 않은 점심을 형식상 낯선 친구들과 우르르 챙겨 먹어야 하고.
그들의 시덥잖은 수다에 의미없는 장단을 맞추고.
긴 공강시간을 지나 기대와 달리 수준 떨어지는 재미없는 수업을 들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찌들은 지하철에선 중2병에 걸린 양 '결국 세상에 남는 건 혼자야.' 괴리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이 짓을 반복하려 버스 2번에 지하철 3번으로 왕복 5시간을 오가야 하는 아침을 맞이할 때.
내 자신이 초라하고 볼품없는 껍데기 같아 싫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툭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더이상 뜨거운 우정이 타오르던 여고생들은 없었다.
오티, 엠티, 과제로 새로운 삶들을 사느라 바빴다.
조언을 들어봤자 딱히 도움되지도 않았다.
한 번은 창밖에 장대처럼 비가 쏟아지길래 우산을 챙겼는데 서울은 비가 오지 않았나보다.
학교에서 우산든 튀는 이는 나뿐인 날,
결국 아끼는 우산을 잃어버린 날,
바보처럼 내 안의 서러움은 폭발했다.
점점 학교에 가지 않았다.
어쩌다 힘겹게 맘먹고 학교에 나가봤자 더이상 출석에 내이름은 거론되지 않았고 진도는 어딜 나가는지 통 따라가지도 못했다.
어쩌다 교수가 '00이 읽어볼래?'
수업 도중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있는데
나: '...어디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교수: '뭐라고? 잘 안들리는데...'
나: '...어디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요.'
교수: '?뭐라구?'
나: '....'
앉아있던 학생들은 다 들었는데 본인만 알아듣지 못하고 계속 읽어보라는 교수로 인해 오분간 정적이 흐른 것 같다.
학생 : '어디하는지 전혀 모르겠대요.'
저 교수가 내가 아주 오랜만에 왔다는걸 모르는지,
안다면 지금 엿먹이려고 하나 싶었다.
그 뒤로 비싼 등록금 납부해놓고 호구처럼 아예 수업을 나가지 않았다.
특기생으로 입학해 놓고 학점은 all F. 문제아였다.
어긋나버린 대학생활에 유일하게 기댈 곳은 남자친구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히도 불타는 청춘 납셨다 싶은데, 당시 내 마음을 들어주는 친구는 고맙게도 고등학교를 복학하신 남자친구 한 명 뿐이었다.
노느라 바쁜 고딩 꼴통들과 남자친구와 매일같이 시내 노래방을 휩쓸고 다녔다.
이 시절, 나는 새벽마다 매일 부모와 언성을 높혔다.
특히 엄마. 그녀와 머리 뜯고 싸우고 또 싸웠다.
참다못해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울컥 마음의 소릴 내뱉었을 때,
'니까짓게 힘들긴 뭐가 힘들어.
니가 힘든게 뭔지 알기나 해?
한심한 년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그러길래 나같은 년 왜 낳았는데?
어릴 때 겁만 주지 말고 고아원으로 보내지 그랬어!'
'집 나가. 너 같은 년은 필요 없으니까.'
철없는 나는 머리 좀 컸다고 집을 나갔다.
친구집에서 자기도 하고 아파트 로비에서 자기도 하고 반노숙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일주일이 지나고 어떻게 알았는지 친구 휴대폰으로 그녀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엔 또 얼마나 소리칠까 두려웠는데,
'친구랑 같이와. 밥은 먹었어? 밥사줄테니까 와.'
밤마다 쌍심지를 키던 그녀가 아니었다.
석박지를 잘라 숟가락에 올려주던 낯선 모습이었다.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방에서 푹 잠들 수 있었지만
우울한 딜레마는 끊이지 않았다.
나는 학교도 망하고 가족관계도 망하고 친구관계도 망하고 연인관계도 망하고.
20대 초반은 나에게 되는 것 하나 없는
말아먹은 인생이기에.
어느 날, 말도 없이 대학으로부터 우편이 날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니 성적표가 거실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ABCDEF 중에 F라고?'
그녀의 머리를 강타한 받아들이기 어려운 알파벳 F.
일 년 반 후, 나는 학사경고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