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가 불러낸 술자리에서
내가 원치않는 걱정에 조언을 듣게됐다.
언제까지 쉴거야?
이제 돈 떨어질 때 되지 않았어?
이제 뭐할거야? 다시 글 쓸 생각은 있어?
다시 쓸거면 그 전에 너 멘탈도 잡고 갔으면 좋겠다.
3년 전 쯤... 나는 보조작가를 했다.
모 작가가 말하길, 집필하는 작가 중 행복한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나였다.
웃긴건 저 말도 메인에게나 해당되는 표현이었을 텐데.
작가의 '작' 도달 못한 내가 'ㅈ가(까)' 가 될만큼 불행했다.
맞지 않는 CEO와 한 집 아래 24시간 붙어 사는 건 정말 정신육체건강에 좋지않다.
보조작가는 이제 막 시작한 주방보조다. 주방보조가 만든 요리가 미슐랭이 되지못해 매일, 밤새도록 질책받는 것과 같다.
언제까지? 작품이 망하든 되든 끝날 때까지.
사실, 재밌게 봤던 술꾼도시여자들에서 나온 예능작가 안소희 캐릭터가 나에겐 그다지 좋게 와닿지 않았다.
안소희는 소개팅 자리에서 예능작가랍시고 소개팅 남에게 이런저런 예능 퀴즈를 실험해보다가 소개팅남이
"때가 쏙~ ♡♡" 라고 정답을 제시하자,
정색하며 혼잣말로 "미쳤냐?상품 노출 어떻게 할 거야..."
중얼거리더니 "어머 죄송해요, 후배작간줄 알고. 죄송해요 맘 상한 거 아니죠, 실수실수!" 사과를 한다.
맘 상하는 말이라는 걸 본인도 이미 자각하고 있으면서
후배작가에겐 실수가 일상이 되어도 된다는 듯한 마인드.
왜? 작품이 중요하지, 일개 너가 중요한건 아니니까. 식의 태도. 물론 저 에피소드는 재밌었으나, 내가 그런 취급을 당했으니 1부터 백까지 감정섞인 피드백을 받았던 나는 마냥 좋진 않았던 장면이었다.
아무튼 나는, 작품을 마치고 짓무른 슬픔으로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노라 떠들고 다녔고 2년간 회사원이 되었다.
"근데, 이렇게 보조작가 하다가 메인으로 되는 사람도 있어요? 실제로 보셨어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며 파릇파릇했던 나의 20대.
"나 글 안 쓸거야. 나 이제 글 안 써."
내 입으로 말하면서, 진짜 글을 쓰지 않게될까봐 내 자신을 걱정하고 앉았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글만 쓰며 행복했던 내가, 그 몇 년. 잠시 만났던 이로 인하여 한동안 처절히 망가졌을 뿐인데.
지금 이 술자리에서 친구에게 멘탈 약하다는 소리나 듣고 있는게 슬펐다. 솔직히, 본인 연애 힘들 때만 괴롭다고 날 불러내놓고 나더러 멘탈관리 하라는 말이 잡소리로 들리고 불쾌했나보다. 내 상처를 '너, 멘탈이 약하다.' 는 말로 쉽게 건드는 것만 같다.
날이 맑은데 비가 토도톡 내린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가시가 되어 소리없이 박혀온다
그 날을 잊었노라 생각했는데,
소리는 지나가고 기억만 남았다.
빗줄기는 거칠어지는데 잔상은 도리어 뚜렷해진다
마음에 안들면 나한테 얘기를 하지
두 명을 굳이 불러 앉혀, 얘는 이런데 너는 왜이래
나를 비교했으며,
넌 앞으로 인터뷰하고 취재만 하자. 강등됐다고 생각하지마, 물론 너가 다른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물론 다른 일들도 시킬거야, 인터뷰도 중요한거야. 돌려돌려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며 일을 맡기고,
보조작가 중엔 이런작가도 있고 저런 작가도 있어.
밥도 하고 끼니 챙겨줄 시다작가도 필요하다는 식으로
내 능력을 재단하고 틀에 가둬 폄하했는지.
매 년 지인 생일을 챙긴다는 나에게
'나는 바빠서 내 생일도 기억 못한다'며 넌 아직 어려서 사회생활을 제대로 안해봐서 그렇다는 당신을 따랐고,
우리가 지금 감정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작품 끝나고 맛있는 한 끼 먹으며 그때가서 웃으며 풀면 된다는 논리에 선 넘고 막대해도 바보같이 자책만 했다.
나만 빼고 둘이서 방송국 사람들과 회식하고 숙소로 들어오다 걸려 뻘쭘하니 우리끼리 회식하자며
'난 너 작가로 인정못해' 하던 사람이 "그래, 힘들었겠지." 위로하는 소리를 내뱉고.
식사자리에선 막내가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상식, 상품권으로 월급을 줬어도 어쨌든 준 거 아니냐는 상식.
미안한 일들을 사과 대신 홀로 성경으로 대신하던 상식.
나 또한 그들을 온전한 작가로 응원하지 않음을.
그리고 당신과 함께 일하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하여 실력이 퇴화되다 못해 머리가 막혀 진심으로 아임 쏘리입니다.
그렇다. 내가 잘한 것도 아니니 받아들여야 한다.
잘하고 싶은 욕심만 충만했던 서툰 나를 딪고
얼마 남지 않은 젊은 나를 위하여.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