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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웨이 Jan 22. 2024

할머니 바보? 바보 아니여 !  아가가 바보?

- 손녀의 맨 처음 언어 -

-할머니( 말 )해 봐 !-

-할미!! 할미야 !-  

-아니 할미 말고  할!.  머.!  니 !-

-할 .. 할 머니-

'맨 처음 고백은 힘이 들어라' 송창식의 노래처럼 .  나올 듯 나올 듯 하다가 끝내 입속에서만 맴돌다 사라지곤 하던 할.머.니 라는 말을 손녀가 성공하던 날 가슴이 벌름 거렸다. 세상의 가장 순수한 목소리로 들은 할머니 라는 말,거기 까지는 좋았다.  

" 할머니 바보?"


명색이 국어교사 이십년 , 평생  책 오타쿠로 산, 할머니가  손녀와 처음 소통한 언어가  '아름답다'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예쁘다' '맛있다' 도 아닌 ' 꿈'도 '똥'도' 쉬야'도 아닌  바보라니?

오늘도 허둥지둥 유모차 끌고 가서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손녀를 받아 왔다.

"진아 , 천천히 갈까? 빨리 뛸까 ? 초고속으로 달릴까?"

날이 추웠다 . 아침에 날이 푹해서 옷을 좀 얇게 입혀서  유모차 덮개를 옴팡 다 씌웠더니 우주인 같은

투명 비닐 사각 창에 비친 손녀 얼굴이 숨이 막힐 듯  답답해 보인다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처...고슥 .."

이제 말 배우기 시작한 손녀의 대답.

"오케이 초고속 이다!!!

씽씽 유모차 바퀴 굴려 달린다. 손녀는 재밌는지 .까르륵 ..까르륵 웃는다 .

드디어 아파트 건물들을 돌아 돌아 우리 동 앞에  도착.

아파트 호수 누르고 비밀번호 네 자리 누르자.. 찍... 에러 소리!!

 다시 시도하라는 소리. 잠시 멈칫하는 사이 금방 손녀 입에서 나오는 말,


-함머니 바보?- 빙긋이 웃으며  놀린다.

- 아녀 아녀 할머니 바보 아녀 .- 호들갑 스럽게 진짜 바보가 안 되려고

얼른 핸드폰 저장 문자 보고 비번 입력하여 문을 연다.

-자 봐. 함머니 바보 아니지 -

- 바보, 함머니 바보  - 계속 놀린다 .

통과 , 일단 동 전체의  아파트 입구 진입은 성공. 그러나 또 통과해야할 문이 있다.

맞다 새 아파트 지?. 내 아파트 출입구 문

이번에는 무려 여섯자리..번호가 복잡해서 외어도 다음 날이 되면 금방 잊어 버린다

집에 아침에 읽다만 츄피 스키장 이야기도 더 읽어 달라 하고 싶고 오줌을 여러번 싼 기저귀도

갈고 싶고 빨리 들어가고 싶은 데

 지문인식을 한 엄마 아빠처럼 재빠르게 문을 못 열어주는  건건마다 걸리고 뭉그적거리는 할머니가 갑갑하기도 하리라.

오늘도 손녀에게 바보소리 수십 번 듣고 하루가 지나갔다.



바 보.. 그러고  보니 그 귀한 손녀와의 첫 언어를 바보로 만든 주인공이 바로 나다.

무언가 모자라고 자기 것도 잘 못 챙기는 사람을 바보라 한다.

처음으로 어린이집 손녀를 데리러 가는 날이었다. 유모차 끌고 가는 할머니. 내 로망 중의 한 그림이기도 했다

그런데  급히 나가다 보니 팬트리에 보관하는데 걸리작거리는 유모차 손잡이를 떼어놓은 걸 미처 다 달지도 못하고 그냥 간 거였다. 내 품에 앉긴 손녀를 유모차에 태우려 보니 손잡이가 안 끼어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손녀를 다시 내려놓고  끼우려 하는데  위, 아래 방향이 자꾸 뒤집어진다. 그리고 옆에 엄마들의 시선이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무엇보다 보채지 않고 할머니가 하는 것을 뚫어지게 보는 손녀가 부끄러워 얼른 손녀를 앉고 한쪽 손으로 그냥 유모차를 밀고 가다가 사람들 시선이 없는 곳에서 겨우 달아서 태워 왔다.

그 손잡이를 다는 동안 손녀가 지루할까 봐

"할머니는 바보래요. 바보.. 바보 할머니..."

일부러 과장되게 동작하면서 힙합톤으로 자작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손녀는 까르르까르르... 웃고 너무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바보.. 바보 자기도 자꾸 입모양을 보고 따라 했다. 젊잖고 반듯한 말보다 빵꾸똥꾸라는 루저적인 언어를 더 좋아하고 진실이라 생각하는 나는 우리 둘이 소통했다고 즐거웠다. 이게 바보라는 언어의 시초이다. 그리고 바로 앗! 나의 실수... 했다. 손녀는 아이가 아니고 딸의 아이다.

반듯하고 이지적인 딸은 내 이런 루저 성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나도 어른이지만 어른이 싫다. 내가 손녀에게 바보라고 고백하는 것은 손녀에게

나이 든 사람으로서 예의나 권위나 교육을 시키는 어른이 아닌 그냥 손녀와 같은 눈높이로

있는 그대로 같이 즐기며 놀겠다는 내 마음의 표현이다. 손녀가 거침없이 나를 바보라 하는 것도 서운하거나 손녀가 나를 무시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버르장머리 없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손녀의 '할머니 바보'는 오늘 집으로 놀러 온 이모할머니 한 분을 자신의 찐 팬으로 만들었다. 육아 경험이 아주아주 오래된 이모할머니가 손녀의 최신식  물병을 어떻게 열지 몰라 쩔쩔매는 것을 보고

할머니 바보를 외치고 또 그 소리 안 듣기 위해 열심히 진심으로 새물병을 열려고 애쓰는 이모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웃겨서 깔깔 웃고... 오랜만에 뵙게 되어 서먹하던 이모할머니와 손녀의 마음이 금시 따뜻해지고 경계가 없어진다.  잠시 공간이 동화의 세계로 바뀌는 마법의 순간. 행복하고 따뜻한 순간. 나 만의 과대망상인가? 반듯하고 예의 바르고 정확하고 의미가 분명한 언어를 사용하고 가르쳐야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라 생각하신 엄마들은 날 정신 나간 할머니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완벽한 것은 숨이 막히게 한다. 살아있는 것은  숨구멍이 있어야 한다.

바보는 좀 모자라는 사람, 자기 것도 제대로  잘 못 챙기는 사람을 말한다.

좀 모자라는 사람이 있으니 그 모자라는 사람을 도울 잘난 사람도 있는 법이고 세상에 모든 것이 모자라는 사람은 없고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은 없다. 모자라는 면이 서로 다르니 세상에 바보와 바보 아닌 사람의 경계는 사실 없다. 자기 것도 잘 못 챙기는 사람이 대게 남의 것을 잘 챙기는 배려하는 사람이고 자기 것 보다 여러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 리더다. 리더와 바보도 따로 없다. 사실 사회가 필요에 의해서 그렇게 나눌 뿐이다

손녀가 이 세상에서 할머니와 처음으로 배운 바보라는 말..

손녀가 자라 이 글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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