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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NO人입니까?

나는 老人입니다

by tea웨이

" 집에 아무도 안 계신가요?"

"네? 제가 글 올린 사람인데..."

"저 어르신 말고.. 자제분들... 아드님이나 따님 좀 바꿔주세요"

"네????????????"

매우 당황스럽고 핸드폰 잡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살다 살다 나이 들었다고

할매니니. 할매, 진지충,꼰대, 연금충 별 이상한 별칭으로 놀리더니 이제 젊은 자식들이라는 보호자가 따라붙지 않으면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사람 취급을 안 하다니..

더군다나 동병상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환우카페 아니던가. 카페에 약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현직약사환우님이 출몰했다 했다. 약조절에 힘들어하던 참이라 용기를 내어 조언을 부탁드리는 글을 올렸다.

바로 댓글이 뜨고 전화가 왔다.

몇 년 생이냐고부터 물었다

한 번도 생각지 않은 질문에 당황해서 어버버 하자 더 이상 나와는 대화소통이 불가하다는 판단을 한 건지 내 아들 딸을 찾았다.


충격이었다. 독립적인 삶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삼으며 죽을힘을 다해 가족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고백하자면 환우들을 위한 책을 만드는 데 거들기도 했으니 약에 전혀 무지하지도 않았다. 처음으로 현타가 왔다.


나를 둘러싼 사회는 노인은 보호자가 필요한 NO 人 취급을 하고 있구나!

나는 아직은 보호자 없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그냥 몸이 좀 부실해진 老人일 뿐인데..

설령 보호자가 필요하더라도 필요한 부분만 도우면 될 텐데..








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러운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 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 새 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

늙은 사람 -기형도-



좋아했던 기형도 시인의 시다.

노인은 젊은 몸을 탐욕스럽게 본다고? 틀렸다.

아무리 젊고 아름다운 몸, 차준환의 우아한 피겨스테이팅 몸동작이라도 이미 젊어보았던 몸은 부럽 기는커녕 시시하다. 젊은 그 몸, 그 몸 때문에 겪을 온갖 희로애락에 짠하고 애처로울 뿐이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일들 50년 후의 내 모습

주름진 얼굴과 허옇게 센 머리칼 아마 피할 순 없겠지

강철과 벽돌의 차가운 도시 속에 구부정한 내 뒷모습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훨씬 더 적을 그때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세월에 떠다니고 있을까

노후연금 사회보장 아마 편할 수도 있겠지만

벤치에 앉아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긴 정말 싫어

하루하루 지나가도 오히려 길어지는 시간들


- 신해철 솔로 2집 앨범 50년 후의 내 모습 가사 일부-


신해철은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고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무료한 시간을 공연벤치에서 보내는 잉여인간, no人 을 노인으로 보았다. 이것도 틀렸다


모든 것에 편견 없이 열려있는 시인, 록커조차 늙은 사람에 대해 이렇게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사실 너무 일찍 요절해 늙은 사람이 돼 보지 못한 젊은 분이 멀 아실까.

시진핑과 푸틴이 중국 열병식에서 150세 수명을 이야기하는 시대이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퇴직한 후 이 정도면 넉넉하겠지 하고 친정엄마 용돈 자동이체를 10년으로 걸어놓았던 둘째 언니는 연장해서 친정 엄마 용돈을 계속 넣고 계신다. 자신도 80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그래서 노인이 노인을 보살핀다는 노노캐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배우고 따라야 할 길과 롤 모델이 사라져 버린 노년의 길.

가르쳐 주는 곳도 없다. 그래도 가르쳐준다고 가 보면 세상에 있는 불안이라는 불안은 다 꺼내어

내 빈약해진 통장과 부동산을 강탈한다.

노년의 지혜, 꿈..., 불안에 대해 예술가 철학가들은 책들을 내고 영화감독은 독립영화도 만든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그분들 프레임에 맞는 노인이야기 일 뿐이다


노년에 불치병까지 얹은 나는 정 견딜 수 없을 때 타인에게 짐이 되는 내 몸을 내 스스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안락사가 이 지구 어디 한 공간에 있다는 것이 오히려 희망이었다.


잊을 만하면 던지는

너는 혼자 설 수 없는 no人이야. 너는 짐이야.

노인이 돈이 됩니까?

라는 불안에 불안을 더하는 질문


그러다 일본 자율 요양원에서 식사 중인 한 할머님을 티브이에서 만납니다.

거동이 불편한 동작으로 서툴고 갑갑하고 불안하게 식사를 하십니다. 도움 없이. 발우공양하시는

스님 아우라로 아추 천천히 꼼꼼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시는 할머님.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다가

식사가 끝나는 그 순간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제까지 쓰고 있던 노후생활의 달인들 이야기를 버리고

2시간의 식사, 존엄을 배운다 라는 제목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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