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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bin Son Feb 21. 2021

엄마의 죽음을 생각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엄마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 위해 

소설 <시선으로부터>는 나에게 꽤 오랫동안 기억될 소설이다. 시선이란 인물이 나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시대의 어머니이자 강인한 여성을 상징하는 인물인 시선이 죽은 후, 시선으로부터 받은 기억과 정신적 유산을 기억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한동안 먹먹하리 만큼 엄마 생각이 났다. 


사람마다 죽음에 대한 이견이 있겠지만, 나는 죽음을 곧잘 떠올리는 편이다. 누구나 죽음을 피해 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생은 유한하고 소중하다. 죽음을 떠올리면 축 쳐져 있다가도, ‘인생 뭐 있어' 라던지, '한 번뿐인 인생인데.. 좀 이렇게 살면 어때’라는 쿨함이 생긴다. 그래서 난 가끔 내가 왜 사나 싶을 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사는 것 같을 때 '죽음'을 종종 생각한다. 최근에 이런 연유로 새해를 맞이해서 '죽음'을 테마로 한 뉴스레터를 밑미도 발행하기도 했었다. 한 해를 시작하니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일 년의 시간을 다시 바라 볼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금방 죽는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 서너 번 정도 이 말을 중얼거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날 하루는 덜 쩨쩨해지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소중하게 쓸 수 있고 번잡하고 부산스러운 일보다는 중요한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밑미 뉴스레터 중- 


그런데 죽음에 대한 상상만으로 눈물부터 터져 나오는 사람이 있다. 나의 엄마, 장금자. 아직 너무나 건강하신 엄마를 두고, 엄마의 죽음을 상상하는 이유는 엄마를 내 일상으로 자주 초대하기 위해서다. 바빠서 자꾸 잊는 엄마의 소중함을 구석에 처박아두지 않으려고, 엄마의 소중함에 둔감해지는 일상에 덜 익숙해지기 위함이다. 근데 자꾸만 잊는다.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엄마를 자꾸 잊는다. 


엄마의 죽음을 상상만으로도 머리카락 뿌리부터 바짝 타는 것 같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 눈물이 왈칵 난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더 자립할 수 있는 상황이 될수록 엄마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더 고통스럽다. 내가 자립한 만큼, 내가 더 많은 것을 나눠줄 만큼 성인이 되었는데도, 내가 아직 어린애처럼 제자리라서. 엄마에게 아직 받고만 살기 때문이다. 있을 때 잘하라고 하지만,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늘 그 자리에 있던 엄마는 늘 숨 쉬는 공기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도 잊지 않으려고 나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오늘은 진짜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금자로부터 : 정성 

금자씨로부터 받은 것은 너무 많다. 그중 하나가 엄마의 정성이다. 딸에 대한 정성이기도 하고, 일상을 대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정성. 토요일 아침이면 양평에서 엄마의 밥 배달이 집으로 도착한다. 아직 뜨거운 기운이 가득한 스틸 재질의 통에 가득 찬 현미찹쌀밥, 걸쭉한 된장찌개, 우리 집 노견 돌쇠의 털 윤기를 되살려줬다는 황태 껍질 가루, 너무 맛있어 딸 못 먹을까 봐 아껴둔 엄마의 신김치, 직접 만든 현미 식혜.. 새롭게 개발한 엄마의 새로운 반찬 메뉴. 이루 말할 수 없이 정성스러운 엄마의 밥 배달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엄마의 인생에 딸 아들을 위해 밥 배달한 시간의 비중이 꽤 클 것 같다. 


매주 토요일 아침 도착하는 엄마의 밥 배달에 나도 익숙해졌다. 어떤 정성으로 온 건지 알면서도, 가끔은 시큰둥하게 엄마를 맞이한다. 가득 차다 못해 넘쳐흘렀던 주중의 일상을 보내고 나면 토요일 아침은 기진맥진 누워있는 편이다. 느지막이 아침을 시작하고 싶을 때, 엄마가 밥 배달차 문을 두드릴 때면 속으로 “아, 오늘은 침대에 들러붙어,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문을 열고 나가, 엄마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밥을 익숙하게 맞이할 때가 많다.

밥에 너무 진심인 엄마의 배달. 매주 그렇게 배달을... 


"엄마, 뭘 또 이렇게 많이 싸왔어"


모자를 쓰고 귀여운 차림새를 한 금자 씨가 문을 열자마자 밥은 먹었냐고 다그쳐 묻는다. 혹시 밥을 대충 먹었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왔을 엄마의 먼길이 상상이 간다. 먼길을 헤치고 배달된 건 엄마의 정성이니, 엄마 앞에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만, 나중에 먹겠다며 다시 들어 누울 때가 많다. 그러면 엄마는 얼른 눈치를 채고, 바삐 떠나신다. 


“너 쉬는데 엄마는 갈게”


엄마가 나가고 나면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왜 이렇게 눈치도 빨라서 티도 별로 안 냈는데, 내 마음을 읽어버리고 바삐 나가는 거야.. 


우리 엄마는 나에게 왜 이리 친절한지. 그렇게 친절한 엄마에게 친절하지 않고 나면 마음이 안 좋다. 오랜만에 보는데, 이야기나 좀 하다가 보낼걸, 엄마가 보는 앞에서 밥을 좀 맛있게 먹어줄걸.. 자책한다.  그 짧은 시간, 엄마와의 보내는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엄마와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서, 어느 누구도 그 시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영원할 것처럼 엄마와 소중함이 둔감해진다. 그러다 엄마의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면 또 눈물이 난다. 이 무한 반복의 패턴을 언제 끊을까..



금자로부터 : 멋 


설이라 양평 부모님 집에서 하룻밤 잤다. 창업을 하고부터는 너무 바빠져, 양평에서 편히 머물지도 못하고 늘 바삐 서울로 떠났다. 내가 자고 가길 바랬을 엄마는 한 번도 자고 가~란 말을 안 하셨다. 바쁜데 부담을 주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이겠지. 오랜만에 내가 자고 간다니 좋아하며, 엄마가 패션쇼를 시작한다. 


우리 엄마는 타고난 패션 센스와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엄마가 맛에 까탈스러워 요리를 잘하는 것처럼, 엄마는 패션에도 까탈스러운 자기만의 패션 철학과 스타일이 있다. 엄마는 멋이 중한 것을 아는 분이다. 화려한 멋쟁이라기보다, 패션이 자신과 자신의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 방식이란 걸 아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봐온 엄마는 옷을 늘 깔끔하게 입으셨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차려입는 것이 아니라, 누가 보든 안보든 깔끔하게, 집에 있더라도 잘 때를 제외하고 후줄근한 잠옷을 그대로 입고 집에 있으신 적이 없었다. 일어나면 밖으로 나가던 나가지 않던 옷을 갈아입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에 비해 난 집에 있으면 잠옷 차림으로 하루를 사는 스타일이지만.. 

엄마가 직접 만든 실크 치마를 자랑하는 중 


그리고 외출을 할 때면 세상 멋쟁이처럼 입고 나가신다. 엄마의 최종 목표는 '예쁘게 차려입은 할머니'라서 그런지, 옷에 대한 엄마의 예민한 감각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번 패션쇼의 아이템은 엄마가 빈티지 시장에서 사 온 원피스와 소녀풍의 여러 옷들, 그리고 남자 두루마기를 리폼한 옷이다. 딸이랑 이런 거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나 싶게 신나서, 옷을 갈아입고 한 바퀴를 도신다.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옷의 콘셉트를 설명해주셨다. 


스코틀랜드식 클래식함, 유럽 소녀의 풋풋함, 참한 숙녀 스타일, 그리고 시크함.


영상의 장면을 캡쳐했다. 영상으로 보면 더 귀여운 패션쇼 현장.



특히 시크함을 표현한 남자 두루마기를 리폼한 엄마의 솜씨에 깜짝 놀랐다. 동묘에서 사 온 실크 두루마기에 소매를 줄이고, 오색실로 스티치를 포인트를 만들고, 언밸런스한 한쪽 주머니까지 너무 잘 고친 것 같았다. 주머니를 양쪽 다 달지 않아야 시크하다는 엄마의 코멘트까지. 밤마다 이걸 손으로 만졌을 걸 생각하니 엄마가 참 한없이 귀엽게 느껴졌다. 


엄마 직접 손으로 리폼한 남자 두루마기


패션쇼를 하더니, 엄마는 100포기가 넘는 김장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늘 봄이 오기 전에 김장을 한다. 배추가 겨울 김장 때보다 많이 싸고, 여름에 딱 맛있는 김치를 먹기 좋은 일정이기 때문이다. 엄마를 도와보려고 몇 차례 거들려고 했지만, 무조건 쉬라는 엄마의 만류로 난 그냥 엄마를 구경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김장을 하는 엄마를 보다, 엄마에게 물었다. 


이 배추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배추가 쌓여있다. 

나 : 반복적인 일이라 힘들지 않아? 그거 언제 다해?

엄마 : 나도 반복적인 거 되게 지루해하거든. 근데 이상하게 음식 만드는 거랑 바느질은 안 지루해. 만들어질 거 생각하면 너무 재밌어. 

나: 엄마는 만드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김장을 다 끝내고 엄마란 침대에 도란도란 앉았다. 엄마랑 더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에 손이 가고, 또 뭘 보고 있느라 정신이 뺏겼다. 그러다 조용히 앉아있는 엄마를 봤는데, 엄마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들었다. 


나 : 엄마 뭘 보는데 그렇게 미소 짓고 있어?

엄마 : 세계경제 트렌드 알려주는 유튜브. 너무 재밌어.


엄마가 무언갈 끝내고 이 방에 들어오면 저렇게 앉아서 유튜브를 켜고, 다른 넓은 세계를 탐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생각하니 이 방이 엄마에게 너무 작아 보였다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생각도 들어, 엄마를 한참 물끄러미 보았다.

 

엄마가 준 소중한 것들 

소설 속 인물인 시선처럼, 혹은 대단한 업적을 남긴 다른 여성처럼, 엄마가 유명하다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런 인물보다 더 많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 엄마다. 엄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엄마만이 가진, 우아한 삶의 태도가 있다. 엄마가 살아가는 일상, 이겨내온 삶의 고난들이 나에겐 영감이고, 동기 부여가 된다. 엄마의 딸이라서 얻은 것이 참 많지만, 반대로 엄마는 엄마와 아내로 살기 위해 잃은 것이 많다. 엄마의 죽음을 상상하며,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남기기 위해, 엄마를 더 낯설게 바라보며 엄마와의 추억을 더 자주 기록하고 싶다. 어떻게 해봐야 후회가 많이 남을게 뻔하지만, 그래도 노력해야지. 내가 무엇을 하든 칭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 나에게 너무나 친절한 사람이 있어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 같다. 


금자로부터 : 존중 

엄마의 30-50대는 어쩌면 남편과 자식을 위한 그늘 속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늘 속에서도 친절했던 엄마는 아빠에게, 오빠에게, 그리고 나에게 늘 친절하려고 노력하셨다. 사람을 존중하는 자세가 늘 배어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친절한 사람. 어떤 힘든 일에도 긍정적인 사람. 


엄마의 꾸준함

난 꾸준하지 못하다. 근데 엄마는 꾸준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매일 스트레칭을 하고, 매일 좋은 음식을 먹고, 매일 배우는 사람. 리추얼 비즈니스를 하는 건 엄마의 리추얼에서 받은 영감도 분명 있을 거다. 


엄마의 순수함 

엄마는 아이처럼 순수하다. 늘 호기심 넘치고, 꽃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자연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 감탄을 참 잘하는 사람. 순수하기 때문에 늙지 않고, 잘 감탄하고 새로운 것에 열려있는 사람. 


올해가 가기 전에... 


-     엄마의 이야기를 꾸준히 기록하기

-     엄마에게 김장 배우기 (양념 위주로)

-     엄마의 음식을 인간적으로 좀 배웁시다. 레시피 좀 전수받읍시다

-     엄마가 좋아하는 빈티지 시장 한 분기에 한 번은 꼭 갑시다

-     엄마가 좋아하는 것 사드리기 : 꽃, 식물, 예쁜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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