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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밍웨이 Apr 14. 2020

나는 부족한 사람이었을까?(클루지 제거)


책장에는 낡은 다이어리 몇 권이 채워져 있다. 일관성은 없었다. 어떤 해는 몇 글자 남기고서 여백으로 가득 채워두기도 했고, 반대로 그 시절 고민과 감정들이 비좁을 정도로 빼곡히 담겨있는 해도 있었다. 스스로와 대화를 나눴던 흔적들이 보였다. 자책과 반성 사이에서 헤매고 있던 나를 벼랑 끝으로 세우기도 하다가 손을 내밀어 위로도 해봤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책이 다시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10년 전 다이어리의 첫 페이지에는 나에 대한 질문이 적혀있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답을 하지 못한 채 같은 질문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내 문장 뒤에 숨겨진 말이 보였다.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 나는 완벽한 사람 되고 싶었다. 완벽하기 위해서는 계속 부족한 사람이라고 주문을 걸어야 했다.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완벽해지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확인하기 위해 나만의 저울에 올라간다. 이 저울은 굉장히 특이했다. ‘나’를 담아내는 그릇에는 ‘단점’을 올리고 ‘타인’을 담아내는 그릇은 ‘장점’이 올라간다. 이 저울에서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는 욕심이었다. 두 손에는 나의 장점들이 담겨있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미 내 것이기에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가질 수 없는 것들에 시선을 보냈다. 탐욕이었기에 갈망해도 가질 수가 없었다. 부족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틀에 갇히게 되었다.


피폐한 생각의 습관들이 나를 집어삼켰다. 그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보는 눈을 잃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대답할 수 없던 이유였다.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를 다그치며 자학한 행위의 결과였다.


그러나 나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스스로를 포기하진 않았다. 균열하는 절망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나는 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흩뿌려졌던 노력들이 하나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의 장점들이 단점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로 손에 놓여있었다. 책임감이 강한 것을 가족의 짐으로 여겼고, 어떤 일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자책했던 나, 상대방을 헤아리는 것을 눈치만 보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낮추기만 했던 내가 보였다. 겹겹이 붙어있던 자학하는 수식어들을 털어내주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타인을 공감할 수 있는 사람

10년 만에 나에게 물었던 질문을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느껴졌다. 그동안 힘들었을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내 안에서 자라나는 사랑이 느껴진다. 이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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