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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밍웨이 May 19. 2020

내 인생의 첫 풀코스 마라톤을 달리며

2019년 베를린 마라톤을 달리며 보고 느꼈던 감동을 표현해본다.

나는 러너(Runner)다.
심폐력과 지구력이 타고나서인지, 참고 오래 잘 버티는 성격이라서 인지 달리기는 나와 잘 어울리는 운동이다. 러너라면 누구나 세계 메이저 대회에서 뛰어보는 꿈을 가지고 있다. 베를린, 런던, 시카고, 뉴욕, 보스턴, 도쿄. 도시 이름만으로 내 몸에 달리고 싶은 세포들이 꿈틀거린다.


2019.9.28.
꿈같은 날이 눈앞에 펼쳐졌다. 국적도 인종도 다르지만, 베를린 마라톤을 위해 모인 4만 4천 명의 러너들! 수많은 러너들과 함께 내가 이 곳에 있다. 여기서 내 인생의 첫 풀코스 마라톤 도전이 시작되었다.


베를린은 가을의 햇살을 닮아가듯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마라톤을 준비하며 사진으로 찾아보았던 고대 유적지와 풍경들을 직접 마주하며 담아가는 기분은 끝내주게 좋았다.


스타트 지점부터 피니시 지점까지 전 구간에 베를린 시민들이 만들어준 응원 길도 감동적이었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조그만 아이들도 러너들에게 힘내라며 손을 내밀고 있다. 귀여운 녀석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하이파이브를 했더니 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옆에 있던 엄마에게 자랑을 한다. 티셔츠에 새긴 태극기를 보고 곳곳에 있는 우리나라 교민들과 유학생들이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이 순간, 이 장소를 같이 공유하는 한국인이 있다는 존재만으로 힘이 되었다.


베를린 시민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20km까지 연습한 대로 평균 6분 페이스로 꾸준히 달렸다.(6분 페이스라고 하면 1km에 평균 6분 정도 걸린다는 의미다) 20km 지점까지 1시간 57분. 한국에서 연습한 만큼 잘 달렸다.


그리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숨은 차오르지 않았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리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점점 처지는 속도에 백발의 러너들까지 나를 앞질러 나간다. 패배감이나 씁쓸함 보다는 경외의 마음이었다.


‘대단하다. 대단하다’


사실 처음부터 나의 목표는 속도가 아닌 ‘완주’ 였기 때문에, 너무 힘이 들면 마음 편하게 걸었다. 걸으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달리기는 몸으로만 하는 운동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달래고 힘내라고 북돋아 주었다.


‘할 수 있다!’



39km... 40km... 남은 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거리에 빼곡히 서있는 사람들이 응원을 한다. 언어는 다르지만 다 똑같은 의미로 말했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라고. 같이 달리는 친구도 나를 이끌어 준다. 대회 전날 놀러 왔던 베를린의 상징 브라덴브르크문이 보인다. 진짜 다 왔구나... 친구와 태극기를 들어 올리며 기나긴 42.195km를 완주하였다.


울컥하는 마음이 가슴 저 깊이 밀려왔다. 사실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했고 불안했었다. 막연하게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으로 베를린까지 오게 되었다. 스스로를 의심하였지만, 결국 나는 완주하였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나에게 기록은 상관없다.(절대적으로 자유롭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들마다 저마다 속도가 다르다. 누가 빨리 가고 늦게 간다고 틀린 것도 없고, 잘못된 것도 없다. 자신만의 페이스대로...


앞사람과 거리 차이가 많이 난다고 해서 부러울 필요도 없고, 부끄러울 일도 아니다. 각자의 속도로 달리면 된다. 그리고 단 하나. 포기만 하지 말자! 이것이 내가 러너로서 마라톤을 대하는 자세이고 내 삶에서 바라는 나의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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