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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여행, 그 순수한 회고록.

다시는 못올 것 처럼 여행하던 그 때 이야기.

by 플린

2006년,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 땅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갔다.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환상, 목마름을 간직하며 20대 어른이 되기 전까지 난 서울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22살이 되던 해 9개월간의 알바로 번 돈을 단 4주 유럽여행에 모두 쏟아 부었다. 마치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처럼 준비하고 또 하고, 지도를 보고 또 봤다. 하지만 해외를 처음 나간다는건 정말 막연했다. 2006년이면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영어도 잘 못하고 그 나라의 교통, 문화, 법칙도 잘 몰라서 같이 가는 친구들에게 한없이 의지해서 출발했던 그 때.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잘 모르는 나라의 30개 도시나 여행하는 사람이 될 줄은.

그리고 그 때 갔던 유럽에 다시 가서 6개월을 여행하게 될 줄은.


간절한만큼 속상한 시간도 많았던 여행

대학생 때는 정말, 죽기 전에 유럽을 다시는 못갈 줄 알았다. 내 미래도 불확실했고, 만약에 내가 돈을 번다해도 아직 못가본 나라가 너무 많아서 유럽은 결국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될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여행에서의 1분 1초가 너무 소중했다. 허투로 보내면 안됐고 모든걸 눈과 마음에 다 담아야 했다. 그런 간절함과 욕심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기차 시간은 미리 찾아본 것과 다르게 먼저 떠나버렸고, 가고 싶었던 도시도 일행들과의 조율, 비용, 시간 때문에 못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속상해서 눈물이 다 났다. 다시는 못올건데..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하며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하염없이 속상했다.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를 만난다면, 괜찮다고... 그게 전부가 아니고 결국 그렇게 속상했고 힘들었던 여행이 더 많이 기억에 남으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경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라고.


마지막인 것 같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때의 내 마음과 여행에 대한 생각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아쉬움이 큰 만큼 결국 다시 여행을 하고 말겠다고 다짐하며 지금까지도 여행이 내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일 것 같았던 그 여행이 사실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비단 여행 뿐만 아니라 사랑도, 일도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하고 욕심이 많아질 수록 작은 어그러짐에도 크게 실망하고 속상해지지 않던가.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나의 첫 여행과 그 여행에서의 내 마음을 꺼내어 본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닐거라고, 난 다시 할 수 있고 다시 하게 되면 더 잘 할 수 있을거라고 위로하는 힘을 얻는다.

다시는 못올 것 처럼 떠났던 그 첫 여정. 그날 썼던 나의 기록을 남겨본다.



2006.6.26 생애 첫 해외여행을 가는 날.


아침5시. 오전 10시 50분 대한항공 KE925 편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난 꼭두새벽부터 부산하게 움직여댔다. 사실 짐은 어제 밤 모두 싸놨지만, 마치 오늘 처음부터 짐을 다시 꾸리는냥 그렇게 바빴다. 아침 문밖을 나서는 길이 항상 그렇듯 뭔가 빠뜨린 것만 같은 허전함을 느끼면서도 난 가벼운 발걸음으로 큰 캐리어 하나와 작은 쌕 하나를 메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어찌나 발걸음이 가볍던지, 내가 캐리어를 끌고 있는지 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모든게 가벼웠다.(사실 캐리어는 18kg이었음) 캐리어를 들고 마을버스를 타려는데, 헉..

생각보다 가방은 무거웠다. 가방 한번 들고, 내 발 하나 옮기고, 가방 한번 들고, 계단한칸 올라가고,,, 우리나라 버스 기사 아저씨들의 성격을 너무도 잘 아는지라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민망했다. 그렇게 간신히 올라가서 아저씨 얼굴을 살짝 봤는데, 아저씨는 밝게 웃으시며

“ 예쁜 아가씨가 타는데 누가 빵빵 거리는거야~ 그쵸? ^^”

하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리고는 내가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 출발을 하셨다.

작은 친절이지만 난 마음이 따뜻해졌다.

“학생은 어디 가는데 그렇게 큰 가방을 들고타요?”

“아,, 유럽여행가요~”

“와,, 좋겠네, 얼마나 있다 와요?”

“한달정도요-“

“그럼 한달 후에는 학생 생각이 나겠다. 한달전에 그 학생이 지금은 왔을까...하고~ “


기사 아저씨와 나는 버스가 택시인양 서로 대화를 하면서 갔다. 내 자리가 맨 앞도 아닌 뒷문 옆이었음에도-

“안녕히계세요 아저씨~!”

라마도 호텔 앞에서 내려 공항버스로 갈아탔다. 평소 버스만 타면 잠드는 나지만, 공항버스를 타는 긴 시간동안엔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9시에 인천공항 앞에서 나와 동갑인 K양과, 나보다 1살 많은 L군을 만나기로 했기에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공항은 무지무지 넓었다. 한참을 걷고 걸은 끝에 K양 발견! 2번째 보는 K양이지만 낯설고 좋았다.


그리고 발권하는 곳에서 L군도 만났다. L군의 짐은 K양 짐의 절반,,,, K양이 짐이 많은 것도 많지만 L군은 짐이 너무 가벼워 보였다. 짐이 무게에 반비례하여 여행이 즐겁다면서.


우여곡절끝에 면세점 구경도 해가며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올르는 순간까지도 ,,, 비행기 안에서는 스튜어디스 언니가 주는건 뭐든 받고, 뭐든 먹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11시간을 버티며 갔다. 신기한건 11시간 내내 비행기 창밖엔 해가 지지 않았다는거다. (당연하겠지만)


오후3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이 저~ 아래 드넓게 보이기 시작했다. 넓은 들판에 푸른 하늘이.. 우리나라의 여느 시골과 비슷해 보였지만 그래도 기분만은 설레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땅을 밟고 지나는 느낌을 받는 순간 난 K양과 두손을 꼭 잡으며 그 기분을 만끽했다. 변태 같아도,, 난 사실 무서웠다.

여기가,, 유럽,,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이구나!

기분좋게 스튜어디스 언니들의 인사를 받으며 비행기를 나와 입국 심사를 하러 갔다.

처음보는 아저씨에게 여유있게 “hi~”를 외치며 입국심사를 하고 나오는 순간 한국말이 없는 공간을 보며 여기가 외국이구나,, 보다 한국이 아니구나,, 를 먼저 느꼈다.

그리고 초짜베기 여행자의 험난함은 이제 시작되었다.


우리의 또다른 멤버 P군(20살 어린녀석..)을 중앙역 1번 플랫폼 버거킹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공항에서 중앙역을 가는 티켓을 살 방법을 알아내야만 했다. 어찌어찌 해서 티켓 발권기계는 찾았는데, 헉. 동전만 가능하다- 그래서 겨우겨우 환전소를 찾아 동전으로 바꾸는데 환전소 안내원이 카드를 보여주며 20유로짜리인데 이걸 사면 22.5유로를 쓸 수 있다고 하며,,일반 카드처럼 쓸 수 있다고 이걸 사는게 어떠냐며 우리에게 정보를 주셨지만 처음이고 뭐든 경계를 하고 있는 그 순간에는 어떤 정보도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린 그냥 동전만 바꿨다.


그리고 커다란 기계앞에서 한동안 멍... 대체 뭘 눌러야 하나? 셋이서 머리를 맡대고 고민하는데 뒤에서 한 외국인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줬다. 우린 1인당 3.6유로 짜리 편도 티켓을 사고 국철을 타러 갔다. 국철은 우리나라 KTX보다 더 좋아보였다. 2층짜리 기차는 처음보는지라 무거운 짐에도 불구하고 우린 2층으로 올라갔다.


중앙역(main station)에 도착한 시간은 5시- 6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일단 버거킹을 찾기 위해 informatiton에 가서 where is the 버거킹? 이라고 묻자 informer는 굉장히 의아해 했다. 그래서 우린 버거킹을 더 굴려야 하는구나 .. 하는 생각에 벌거큉~ 이라고 했다. 그래도 못알아 듣는 informer. 서로의 눈을 보며 3초간 응시한 끝에 informer는 알았다는 듯! 네덜란드어 발음으로 벍허크잉 과 흡사한 발음을 하며 알아들었다는 표시를 하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버거킹에 도착한지 30분후,, 저 멀리서 낯익지만 어색한 한국인 한명이 한손엔 맥주캔을 들고 오고 있었다. P군이다!


우여곡절끝에 이렇게 4명의 모든 멤버가 만났으나,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던 여행에 처음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우리 4명의 개성은 너무도 강했다!


여행.. 그중에서도 배낭여행이란 무엇이냐...?!


나와 K양은 배낭여행이란 여행사 도움없이 스스로 계획을 짜고 한국에서 미리미리 여행 일정을 짜와서 그거에 맞게 유레일 예약과 민박 예약을 하는 것으로 계획성 있는 여행을 생각했다. 반면 P,L군은 배낭여행이란 일단 유럽에 발을 담그고 다음 도시 정도만 계획한 후 좋으면 한 도시에 더 오래 있을 수 있고, 다 봤다 싶으면 떠날 수 있는 모험적인 여행을 생각했다. 난 순간 혼란스러웠다. 아니..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다시 계획을 짜야한다니…!! 내가 만들어간 26일 일정의 계획표는 이제 휴지조각이 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걸 비우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누군가의 말로는 서로 절충해서 얻은 결론만큼 바보스런 결론은 없다고 했지만, 우린 서로 한발씩 물러서면서 절출안을 만들었다. 도시는 기존의 정해진 코스를 기준으로 하되 날짜등은 변경 가능한 것으로. (어렵다 어려워)


그렇게 별거 아니지만 네명이서 토론을 끝내니 7시가 넘었다. 우린 얼른 지하로 내려가서 미리 예약한 뮌헨의 숙소를 취소해야 했다. (다음 코스가 뮌헨이 아닌 프랑크푸르트로 변경될 수 있었기에) 그래서 공중전화를 찾았는데,, 이게 또 난관이다. 우리는 해외에서 해외로 전화를 거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역의 직원으로 보이는 분에게 공중전화 사용법을 여쭤보았다. 질문과 대답은 모두 영어로~ (네덜란드 사람들은 영어도 꾀 잘 했다.) 겨우 알아듣고는 전화를 걸었는데,, 취소는 인터넷으로 하란다.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결국 숙소는 취소도 못하고 공중전화 사용법에 미숙한 우리들은 약 5유로를 전화비로 써버렸다.. 초반부터--


이래저래 별로 한것도 없으면서 무거운 짐만 끌고 다녔더니 4명 모두 녹초가 됐다.

일단 민박집으로 가자!


우린 메트로 15구역 티켓(6.7유로)을 사고 종점 gein역에 있는 민박을 잡았다. 1인당 1일에 25유로였는데 첫 여행이라 좋은지 나쁜지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썩 좋은 시설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우린 불편한 것 없이 잘 지냈다.


이렇게 여행 첫날은 어영부영 지나가고 말았다. 아.. 아까운 하루가 벌써 끝나가는 구나.

민박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희한하게도 밤9시지만 낮처럼 밖은 환했다. 백야현상 체험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현재는 2024년 12월 코타키나발루에서.

내일이면 코타키나발루에서의 15일 여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아쉬우면서도 다시금 설렌다. 여전히 내 인생에 가장 설레는 길은 바로 공항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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