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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타키나발루] 맹그로브 숲은 지구의 희망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았던 맹그로브 나무와 반딧불

by 플린

말레이시아는 2개의 반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 중 보르네오섬 사바(Sabah)주에 있는 코타키나발루는 오래 전부터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휴앙지 중에 하나다.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본 사람들에게 코타키나발루를 가봤냐고 하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봤다고 한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뿐만 아니라 제주항공 등 저가항공이 취항하고, 비행시간도 편도 5시간 정도여서 가족여행으로 가기에 적합한 도시다.

코타키나발루는 대체로 5일 내외로 휴양하러 오거나, 대자연과 동식물을 만나러 센다칸이나 셈포르나로 이동하거나, 아시아 명산 중 하나인 키나발루산 2박3일 하이킹을 하러 온다. 하지만 게으른 여행자인 난 15일을 코타키나발루에만 있었다. 코타키나발루 시내 kk타운에서 11일, 샹그릴라 라사리아 리조트에서 4일.

이 긴 시간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장소가 있다면 바로 맹그로브 숲이다. 맹그로브 숲을 의도적으로 찾아간게 아니라, 코타키나발루에 다녀온 사람들이 입을 모아 좋았다고 얘기하는 2가지 - 노을과 반딧불 중 반딧불을 보기 위해 투어를 갔다가 보게 됐다. 반딧불이 바로 이 맹글로브 나무에 서식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에는 여러 곳의 맹글로브숲과 반딧불 서식지가 있는데 이 중에 나는 두곳 투아란 지역과 파파르 지역을 다녀왔다.

IMG_4649.jpeg 강을 따라 좌우에 있는 나무는 모두 맹그로브 나무다.


L1060340.JPG 강길을 가이드 하는 말레이시아 현지 가이드. (성함을 까먹었다..... )

맹그로브숲은 맹그로브 나무들로 우거진 숲이다. 맹그로브 나무는 나무뿌리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호흡하하는 호흡근을 가지고 있는데, 다수의 식물 뿌리는 햇빛에 노출되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드문 현상이다. 마치 다리가 달려서 물 위를 걸어다니는 모양새다. 그리고 물 근처에 낮게 자라 있는 작은 맹글로브 나무들도 볼 수 있었는데, 이 나무는 마치 새끼를 낳는 것 처럼 열매를 품어서 뿌리가 생기면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떨어진 어린 나무는 진흙에 뿌리가 꼿혀 그대로 자라게 된다.그래서 키 큰 나무 아래에 작은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가이드를 따라 맹글로브 숲 한바퀴를 돌면서 맹글로브에 대해 배우다보니 이 나무들이 참 재밌게 보이기 시작했다.

IMG_4613.jpeg 걸어다니는 다리 처럼 물 밖에 보이는 맹그로브 나무의 뿌리

그리고 무엇보다 맹글로브숲은 아마존과 같이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한다. 맹글로브도 탄소를 저장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지구의 많은 탄소를 격리시켜주는데, 지구온난화의 결과가 말해주듯 맹그로브 나무 역시 인간의 욕심으로 많이 파괴되었다고. 조금씩 맹글로브숲을 보호하려는 노력들이 있고, 그 노력에 우리나라가 선두로 하고 있다는 얘기에 괜시리 뿌듯함을 느꼈다.

IMG_4671.jpeg 긴꼬리 원숭이가 서식해있다.

맹그로브숲에는 악어가 산다. 그래서 가이드는 절대 물에 빠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악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새우, 게 등 다양한 생물이 산다. 그리고 숲 안에는 이렇게 긴꼬리 원숭이도 살고 있었다. 이 원숭이는 사람들 경계하긴 했지만, 사람들을 많이 봐서인지 크게 놀라진 않았다. 그리고 가이드 분이 늘상 간식을 주는 지 배가 가까워지면 간식을 기다리는 것 처럼 주변으로 몰려왔다. 원숭이들은 바나나만 먹지 않고 다양한 잡식을 하는데 심지어 버려진 라면을 뜯어 라면의 면에 스프를 뿌려먹는 원숭이도 봤다고.

L1060348.JPG 작은 배를 탄 관광객들이 종종 지나간다.
IMG_4646.jpeg 맹그로브 숲에서 노을도 볼 수 있다.

4시 50분쯤 탔던 배에서 맹글로브 숲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바퀴를 돌다보니 어느덧 해가 질 시간이 됐다. 12월 중순에 이곳의 일몰은 오후 6시쯤이다. 실제로 언뜻 강물을 보면 갈색의 흙탕물처럼 보이지만 물을 컵에 떠서 보면 1급수의 아주 맑은 강물이다. 그래서인지 하늘과 나무와 햇살이 모두 강물에 또렷이 비춰졌다.


반딧불을 보려면 사방이 어두워야한다. 그래서 노을이 지는 이 시간에는 바다로 이동해서 노을을 먼저 감상한다. 모래가 아주 곱고 따뜻해서 맨발로 걸어다니면, 지구를 오롯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밀물이라 바닷물이 점차 모래를 덮는데 그 물 또한 포근한 느낌이었다.

L1060405.JPG 따뜻한 모래와 포근한 바닷물을 걸어보는 순간.
IMG_4751.jpeg 눈 앞에는 하늘과 바다 말고는 없었다.
IMG_4903.jpeg 물이 맑고 찰랑거리는 높이여서, 사진을 찍으면 우유니사막처럼 우리 모습이 반사되어 보이는 재미가 있다.


노을이 다 내려올 쯤 이제 다시 배를 타고 아까 봤던 그 맹글로브숲으로 다시 돌아간다. 아쉽게도 반딧불에 대한 사진은 없다. 반딧불은 불빛이 있으면 잘 오지 않고 도망갈 수도 있다고 해서 배에 탄 모든 관광객들은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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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담을 순 없었지만, 어두운 밤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긴 맹글로브 나무들에 전구처럼 반딧불들이 옹기 종기 모여 불을 반짝이고 있었다. 사실 기대로는 나무에 반딧불들이 한가득 있고 나무와 물가 주변에 반딧불들이 날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반딧불이 많지는 않았다. 한 가이드 분에 말에 의하면 6년전 환경오염이 심하게 있은 이후로 반딧불 개체수가 반 이상 사라졌다고 한다. 더 예쁘게 볼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한켠에는 있지만 그만큼 환경이 많이 나빠졌구나 하는 쓰라린 마음이 더 컸다.

반딧불은 이렇게 밖으로 나오면 약 10일정도 살게 되는데, 그 전에 땅속에서 1~2년을 있는다고 한다. 발광의 원리는 루시페린이 루시페라아제에 의해서 산소와 반응해 빛이 나는건데, 모든 루시페린이 산소와 반응하면 빛이 나는게 아니라 반딧불이 순도 100% 루시페린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개똥벌레라고도 불리는 반딧불. 그리고 맹글로브 숲.

예쁘게 반짝이는 귀여운 생물을 보기 위해 신청했던 투어였지만, 막상 투어를 하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렇게 예쁘고 신비로운 자연을 계속해서 볼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를 잠시나마 고민해보게 된 시간. 한국에 돌아와서 조금씩 반딧불의 기억은 희미해지겠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도 그 때의 다짐같진 않겠지만 사소한 일상에서 나의 편의를 위해 환경을 외면해야할 때 다시금 이 순간을 떠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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