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까지 드라마 보조작가로 일을 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편성은 결국 되지 않았고 올해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기다림은 어쩌면 드라마 작가로서의 숙명이지만 너무나 아팠다.
그렇게 작년 12월, 작업실을 정리해서 나왔다.
메인 작가님과 나의 관계는 편성이 되지 않았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편성이 되면, 그날이 오면 나는 다시 보조작가가 되어 메인 작가님을 보필할 테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내가 할 일은 실력을 키우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버티는 것!
작년 10월 한국 드라마 교육원 기초반에 원서를 넣었고 합격을 했다.
11월 24일부터 매주 수업에 가고 있다. 매주 대략 3시간 정도의 수업을 듣고 있다.
처음엔 우쭐한 마음이 있었다.
당시 난 처음이지만 완성한 단막 대본이 있었고 그래도 여기 모인 사람들과 달리
드라마와 관련된 일을 했고 그래서 조금은 더 잘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지금 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귀여운(?) 자만심이 아닐 수 없다.
다른 기초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반은 드라마의 구성을 배우고 그 구성에 맞게 단막 대본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시놉시스->트리트먼트->대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며 우리 동기들 몇몇은 대본을 작성 중이다.
본인은 현재 시놉시스 완성 후 3번 정도 까인 상태다.
익명성을 보장받은 이 공간에 '저 시놉 까이고 있습니다!'를 자랑스럽게 올릴 일은 아닌데 올리는 이유는
적어도 나의 지금 기분과 자만했던 과거의 나를 인정하고 싶어서다.
앞에 말했듯 나는 조금은 동기들보다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고 적어도 지금 반 선생님의 기준에서 아니다.
나보다 더 번뜩이는 소재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참 많다.
참, 멋진 사람들이 많다.
처음엔 시놉시스가 통과하지 못하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결국 나의 구세주 메인 작가님에게 하소연을 하였고 답을 들었다.
'드라마는 너의 일기장이 아니라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글이다. 네가 원하는 대로만 쓸 거면 그냥 일기로 남겨야지. 굳이 이걸 영상화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내가 원하는 글만을 쓸 거면 드라마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그 진리를 난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인정은 한다. 드라마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재미라는 것이 시청자의 니즈로 이어서 생각하지는 못했던 거다.
그 후로 시놉시스의 방향을 바꿨다.
절대 죽이기 싫었던 나의 캐릭터를 죽이게 되었고 애매했던 주제와 기획의도를 수정했다.
이게 통과되지 않는다면 난 또 수정을 하고 재작성을 하겠지만 두렵지는 않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넌 너무 착해. 네 글도 너무 착하고 밍밍해. 드라마 같지 않아'라는 말에 모든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이리도 돌고 돌아 깨닫는 것인지 참...
다음 주 월요일, 난 시놉시스를 제출하고 그 주 수업에서 선생님의 피드백을 들을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난 진심으로 다시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말을 하기까지 꽤 오래 땅을 팠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