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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미지 Jun 01. 2021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B급 코미디, <스콧 필그림>

아쉽씨네(Cine)-아쉬운 영화 다시 보기 <2회>

2. 장인정신으로 빚어낸 B급 코미디, <스콧필그림 vs. 더 월드(2011)>

포스터

원제: Scott Pilgrim vs. The World 

국내 개봉: X

장르: 코미디

국가: 미국

감독: 에드가 라이트
주연: 마이클 세라


https://youtu.be/7wd5KEaOtm4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감독 '에드가 라이트'를 여러분은 어떤 영화로 기억하시나요? 비교적 최근에 그를 접하신 분들에게는 아무래도 경쾌한 범죄 액션 <베이비 드라이버(2017)>가 익숙하실 테고, 영화 좀 봤다 하실 분들은 아무래도 '코르네토 삼부작(일명 피와 아이스크림 삼부작)'인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뜨거운 녀석들(2007)>, <지구가 끝장나는 날(2013)>들로, 특히 이 중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다 좋은 영화죠. 그러나 저는 오늘, 그 영화들 말고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묻힌 비운의 명작, <스콧필그림 vs. 더 월드(2011)>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명 '피와 아이스크림 삼부작'

먼저, 이 영화의 시놉시스부터 짚고 가볼까요


- 토론토에 살고 있는 스콧은 보잘것없는 록밴드 Sex Bob-omb의 베이시스트로 밴드 멤버인 스티븐, 킴, 닐과 연주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게이 친구인 월레스의 집에 얹혀 살아가는 그는 언젠가 자신의 밴드가 유명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중국인 여자 친구 니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속에서 만난 여인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그런데 꿈속에서 봤던 이상형의 여자 라모나가 눈앞에 나타나고, 스콧은 우연을 가장한 데이트를 통해 그녀와 점점 가까워진다. 어느 날 공연장에서 갑작스럽게 자신을 공격하는 인도인을 만나고 결투 끝에 제압하지만 그가 라모나의 7명의 전 남자 친구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그들과의 결투에서 이겨야만 라모나를 계속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들은 스콧을 죽이려고 덤벼들고 스콧은 사랑을 얻기 위해, 그리고 살기 위해 그들과 대결을 펼쳐야하는데...(출처: 왓챠피디아)


... 이게 무슨 얘기지?라고 생각이 드실 텐데, 의외로 이 시놉은 영화의 내용을 아주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작품의 원작 코믹스 내용이기도 한데, 에드가 라이트는 이 내용을 좀 더 영화적으로, 현실적으로 풀고자 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관된 B급 감성과 8 bit 게임 분위기, 만화적 상상력이 가득한 컷들로 이 황당한 내용을 우리에게 허풍처럼 풀어놓죠. 그래서 우리는 평범한 밴드 베이시스트인 스콧이 무협 영화처럼 하늘을 날며 격투를 벌이거나, 마치 <쿵푸허슬>처럼 소리를 형상화시켜 쌍둥이 DJ와 대결하는 장면들을 영화 내내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감독은 사실 스콧이 은둔 무림고수였다 거나 초능력이 생겼다거나 하는 친절한 설명도 일절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이 영화의 굉장한 미덕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모든 컷들은 범상치 않다


이 영화는 타협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반항아 같습니다. 자신의 괴상한 콘셉트를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콘셉트를 위해 매우, 매우 많은 공을 들입니다. 작품의 핵심 콘셉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 영화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요? 의외로 정말 찾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재기 발랄한 콘셉트를 가지고 시작한 영화여도 기승전결의 '전'만 넘어가면 납득 가능한 결말을 위해 톤을 누르고 드라마를 강화하는 등 콘셉트를 일부 포기하는 타협을 시도하죠. 같은 감독의 <베이비 드라이버>에서도 결말에 가면 숨 돌릴 틈 없는 컷 전환과 카 액션은 남지만 배경음악과 딱 맞춘 화면 구성은 슬며시 자취를 감추죠. 그러나 이 영화는 끝까지 '만화적 표현과 스토리'의 콘셉트를 잃지 않은 채로 끝까지 갑니다.


그 덕에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분은 에드가 라이트의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정성을 들인 컷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마치 큰 통에 든 아이스크림을 끝까지 먹는 듯한 느낌이죠. 그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예를 들어볼까요? 다음 영상은 해외 팬이 분석한 이 영화의 화면 전환(트랜지션) 기법입니다.


https://youtu.be/pij5lihbC6k

공들인 화면 전환 컷들


만화를 보는듯한 영상 표현, 물 흐르듯 쭉쭉 이어지는 화면 전환, 예상 못한 시점을 파고드는 엇박자 편집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냅니다. 관객을 홀려서 결말까지 끌고 간 뒤, '와,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죠. 아마도 에드가 라이트 감독은 이 영화를 머릿속에 치밀한 스토리보드를 그려놓고 찍었을 겁니다. 


자의식 과잉의 캡틴 아메리카


너무 감독 이야기만 했는데, 당연히 좋은 연출만으로는 영화가 완성될 수 없죠. <스콧 필그림>에는 B급 냄새 진하게 나는 어처구니없는 캐릭터들 천지입니다. 가만히 보면 제일 이상하면서 혼자 멀쩡한 척하는, 과거를 파면 팔수록 저 정도면 어딘가에서 망명한 스파이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전투력 만렙 주인공(마지막엔 (스포)로 인간의 한계도 넘어서죠)과 그 주변 인물들을 비롯해서 도저히 공통점을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는 스테이지 보스들, 아, 아니 7명의 전 남자 친구들(엄밀히는 '남자 친구'도 아닙니다)은 관객의 이해를 바라지 않고 자신들의 서사를 마구 이어나갑니다. 


고백하건대, 제겐 이 영화의 브리라슨이 <캡틴마블>보다 더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이 B급 캐릭터들은 A급 배우들의 열연으로 찬란하게 빛납니다. 캐스팅은 그 구성만으로도 칼럼 하나를 수월하게 쓸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영화의 주연인 마이클세라(<주노>, <슈퍼배드>), 메리엘리자베스윈스테드(<클로버필드 10번지>)는 제쳐두고 조연 캐스팅만 떼놓고 보면 슈퍼 히어로 영화 같아 보이죠. 캡틴 아메리카(크리스에반스), 캡틴마블(브리라슨), 슈퍼맨(브랜든루스)이 한 영화에 같이 나오는 진귀한 광경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중도 없는 여동생은 안나 켄드릭(<피치퍼펙트>시리즈)이고 최종 보스인 제이슨 슈왈츠먼은 웨스 앤더슨 영화의 단골손님이고... 할리우드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볼수록 익숙할 유명한 얼굴들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 연기('채식주의자 초능력' 같은)들을 천연덕스럽게 해내기에 우리는 그저 팝콘을 먹으면서 이 황당한 코미디에 끊임없이 키득거리면 됩니다.


채식을 오래 하면, 슈퍼맨이 된다네요(아님)


이 멋진 영화,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는 위와 같은 보석 같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처참하게 실패하여 감독 에드가 라이트의 흑역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흥행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는 어린이를 위한 영화인지, 성인을 위한 영화인지 모르겠는, 타겟이 너무나 불분명한 영화'이기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그러나 (호불호 중에 호로 느끼셨다는 가정 하에) 이 수작 B급 코미디를 양껏 즐기고 나면, 이 평가가 실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이 영화는 실은 우리와 같은 괴짜들을 타겟으로, 다이아몬드처럼 아주 세밀하게 세공된 '취향 저격' 코미디인 게 확실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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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볼만한 영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대. 그건 단지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라서가 아니라, 그대가 영화의 홍수 속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대의 취향이었을지도 모르는 영화들은 막대한 P&A(Print & Advertisement, 배급 및 마케팅비의 준말)를 등에 지고 극장을 지배하는 대형 한국영화, 프랜차이즈 외화들에 달리, 빈약한 P&A 혹은 잘못된 마케팅, 그로 인한 낮은 인지도로 개봉 사실조차 묻힌 채 사라졌거나, 수많은 우려와 고민 끝에 제 때를 놓친 채 극장을 지나쳐 소리 소문 없이 VOD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VOD 출시 스케줄만 봐도 이런 외화들이 한 주에만 두 자릿수에 이르다 보니, 보물을 찾아 정글로 들어가는 모험가의 마음으로 영화 VOD 메뉴를 샅샅이 뒤지지 않는 이상 그대가 원하던 그 영화와는 영영 랑데부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일상에 지쳐 식사 메뉴조차 오래 들여다보기 어려운 그대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색다른 영화를 찾기를 원하는 그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그대가 놓쳤을만한 좋은 영화들을 소개하는 목적입니다. 만에 하나 이 중 하나라도 그대의 마음에 든 영화가 있다면, 검색과 알고리즘을 통해 이를 타고 타고 그대 취향의 또 다른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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