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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미지 Jun 08. 2021

화려한 욕망의 스노우볼, <몰리스게임>

아쉽씨네(Cine)- 아쉬운 영화 다시 보기 <3회>

3. 화려한 욕망의 스노우볼, <몰리스 게임(2017)>


포스터


원제: Molly's Game

국내 개봉: 2018. 09. 06

장르: 범죄

국가: 미국

감독: 아론 소킨
주연: 제시카 차스테인, 이드리스 엘바


https://youtu.be/Ngy1fWc_6bo


<몰리스 게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로 데뷔한 감독이자 할리우드 최고의 각본가 중 하나인 '아론 소킨'을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명작 영화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을, 그리고 그전에 이미 NBC에서 전설로 남은 시리즈, <웨스트윙>을 써낸 위대한 작가인 '아론 소킨', 그는 날고 기는 할리우드의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역량을 인정받은 천재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의 출세작 <웨스트윙>은 시즌1~4를 진행하는 동안 연속 네 번으로 에미상에서 '최우수 TV 드라마 시리즈 상(우리나라로 치면 드라마 대상)'을 수상한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지금도 미국 정치를 이해하는 교과서로 쓰이고 있을 정도죠.


이미 아시는 분도 많을 '아론 소킨'의 천재성에 대해서 이래저래 설명하면 불필요하게 긴 글이 될 테니, 그냥 악명 높은 그의 '지독하게 어렵고 긴 대사' 중 하나로 대신하겠습니다. 다음은 대표적으로 많이 회자되는 <뉴스룸> 오프닝입니다.


https://youtu.be/xONuKkdNMj8

HBO 저작권 관계로 뒷 대사까지 들어간 버전은 이것뿐인 듯하네요


이렇게 각본가로서 전설을 쓰던 그가 2017년 영화감독 데뷔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마니아들이 궁금해한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이번엔 '누구의 이야기를 할까?'. 영화로는 <소셜네트워크(페북 CEO 마크 주커버그)>, <머니볼(오클랜드 에슬레틱스 단장 빌리빈)>, <스티브잡스(애플 전 CEO 故 스티브잡스)>로 주로 혁신가로 불리는 인물들의 성공담을 써냈던 그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론 소킨은 본인의 데뷔작에서 의외의 선택을 합니다. 불법 사설 도박장을 운영하다가 FBI에 검거된 여성, 몰리 블룸의 '실패담' 영화로 만든 겁니다.


몰리는 영화 초반부에 모든 것을 다 잃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몰리 블룸은 올림픽 스키 유망주였다가 경기 도중 스키화가 분리되는, 백만분의 일 정도 되는 불운을 만나 선수 생활을 접게 됩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셀럽들이 모이는 지하 포커 세계에서 일하게 되죠. 명문대를 수석 졸업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그녀는 포커를 전혀 몰랐음에도 순식간에 그 세계를 배우고 장악하여 자신만의 판을 짜게 됩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몰리가 만들어낸 불법 포커장과 거기 모여든 사람들을 보여주며 탐욕과 허세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펼쳐 보입니다.


그 세계의 중심에는 플레이어 X(토비 맥과이어로 추정되는)가 있죠.(이 영화 이후 전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을 잘 못 보게 되었답니다) 어머니까지 팔아먹는 고도의 심리전으로 상대를 무참하게 박살 낸 뒤, 모욕감까지 주는 악질적인 플레이어 X, 그럼에도 그와 포커를 쳐봤다는 훈장을 남기고 싶어서 큰돈을 들고 불나방처럼 모여드는 LA의 셀럽들, 거기에 기생하며 정보를 캐어 가는 사업가들까지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이 판에 모여듭니다. 그 세계에서 욕망에 눈이 먼 사람들이 수십억을 따고 잃는 에피소드들을 보다 보면, 도박장이 마치 눈먼 자들이 뒤엉킨 방 한 칸짜리 지옥처럼 느껴지는데 몰리는 그저 방 한 구석에 앉아 이 아비규환을 조용히 관전하며 자신의 팁만 챙겨갈 뿐입니다.



마이클 세라의 플레이어 X는 정말 재수 없는 놈


이 실화는 비슷한 서사의 픽션과 비교하며 보시면 더 흥미롭습니다. 그 이야기가 무엇이냐, 바로 '타짜'입니다. 할리우드 최고의 타짜 플레이어 X와 그를 중심에 놓고 판을 짜는 매니저의 관계, 그런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바라보면 플레이어 X는 고니이고, 몰리는 정마담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둘의 관계가 배신을 통해 결국 파국으로 끝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죠. 다만 다른 점은 딱히 호구들이 미끼를 물도록 설계하지 않아도 이 포커 테이블에서는 하루에 수십억이 가볍게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픽션은 현실을 이길 수가 없나 봅니다.


결국 플레이어 X라는 걸출한 타짜를 잃는 정마담, 아몰리 단지 팁만으로 합법적으로 수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이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단지 이 도박장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 각성 계열의 마약을 하고, 말도 안 되는 천문학적 빚을 지고, 결국 불법 도박 수수료와 마피아라는 불법의 영역에까지 손을 대게 됩니다. 플레이어 X와 짠 포커판은 이미 끝난 지 오래지만, 그녀는 왜인지 멈추지 못하고 자신만의 무의미한 판('몰리스 게임')을 계속 벌이며 끝내 구속까지 당하게 되죠. 여기까지 오게 되면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아버지(케빈 코스트너)의 무료 상담


아마도 아론 소킨이 데뷔작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도 이것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평생 만져보기도 힘든 수십억의 돈을 벌고서도 탐욕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일까? 왜 끝내 파멸을 향해 제 발로 걸어 들어갈까? 하는 호기심, 그것이 예외적으로 그가 이 실패담을 소재로 택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거죠. 그러나 이 영화는 아쉽게도 끝자락에서 몰리의 아버지 입을 빌어 주인공 몰리가 첫 실패(스키 탈락)이후 비뚤어진 승부욕을 가지게 되어 이런 세계에 빠지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다소 시시한 분석을 내놓습니다. 탐욕에 대하여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 조금 미지근한 결론이라 아쉬운 부분입니다.


끝없이 돌아가는 무간지옥


약간 부족한 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데뷔작 답지 않은 경쾌한 리듬과 흥미로운 가십성 에피소드들을 가득 담고 있는 볼만한 영화입니다. 제시카 차스테인의 지적이고 강단 있는 몰리와, 마이클 세라의 재수 없는 플레이어 X 등 눈길 가는 연기들이 있고, 아론 소킨의 작품답게 말 맛은 기본 이상이죠. 여러분이 만일 주말에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영화 한 편이 보고 싶어 진다면, 그때는 이 영화와 함께 타락한 자들이 모여드는 전망 좋은 무간지옥 투어를 즐겨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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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볼만한 영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대. 그건 단지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라서가 아니라, 그대가 영화의 홍수 속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대의 취향이었을지도 모르는 영화들은 막대한 P&A(Print & Advertisement, 배급 및 마케팅비의 준말)를 등에 지고 극장을 지배하는 대형 한국영화, 프랜차이즈 외화들에 달리, 빈약한 P&A 혹은 잘못된 마케팅, 그로 인한 낮은 인지도로 개봉 사실조차 묻힌 채 사라졌거나, 수많은 우려와 고민 끝에 제 때를 놓친 채 극장을 지나쳐 소리 소문 없이 VOD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VOD 출시 스케줄만 봐도 이런 외화들이 한 주에만 두 자릿수에 이르다 보니, 보물을 찾아 정글로 들어가는 모험가의 마음으로 영화 VOD 메뉴를 샅샅이 뒤지지 않는 이상 그대가 원하던 그 영화와는 영영 랑데부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일상에 지쳐 식사 메뉴조차 오래 들여다보기 어려운 그대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색다른 영화를 찾기를 원하는 그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그대가 놓쳤을만한 좋은 영화들을 소개하는 목적입니다. 만에하나 이 중 하나라도 그대의 마음에 든 영화가 있다면, 검색과 알고리즘을 통해 이를 타고 타고 그대 취향의 또 다른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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