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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가이인줄 알았지? 사실 난 반항아, <락앤롤보트>

아쉽씨네(Cine)-아쉬운 영화 다시 보기 <4회>

by 대미지

4. 로맨틱 가이인 줄 알았지? 사실 난 반항아, <락앤롤 보트(2009)>


pos2.jpg 포스터

원제: The Boat That Rocked

국내 개봉: 2010. 12. 02

장르: 코미디

국가: 영국

감독: 리처드 커티스
주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빌 나이


https://youtu.be/pyXu0mC38SE

예고편


워킹타이틀의 대표 선수이자,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인 리처드 커티스의 영화들에는 마치 인장과도 같은 대표곡들이 있습니다. Love Is All Around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She (<노팅힐>)/ All by My Self (<브리짓 존스의 일기>)/ All You Need is Love (<러브 액츄얼리>)/ How Long Will I Love You (<어바웃 타임>) 등등. 리처드 커티스의 탁월한 선곡은 로맨틱한 스토리에 풍미를 더해주고 푹 빠지게 만드는 그의 특급 레시피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막상 그가 큰 맘먹고 만든, 주옥같은 노래들로 가득한 음악영화 한 편은 전작들과 달리 처참한 흥행 실패를 겪고 뒤늦게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이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락앤롤 보트>입니다.


5.jpg 락앤롤 보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 영화는 확실히 리처드 커티스의 최근 필모 중 튀는 작품입니다. 그의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는 확실히 아니고 오히려 골 때리는, 반항아 같은 분위기의 영국 시트콤에 가깝죠. 그러나 알고 보면, 사실 이 분야야 말로 그의 전공입니다. 명작 로맨틱 코미디들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리처드 커티스는 원래 그의 옥스포드 대학 동창, 로완 앳킨슨과 전설적인 코미디 프로그램, <미스터 빈>을 만들어 유명해진 아티스트이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 <락앤롤 보트>야 말로 그가 원래 만들고 싶었던 코미디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이자 출세작, <러브 액츄얼리> 직후 찍은 작품이 이것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1.jpg 바다 위 낭만에 건배!


이 영화는 1960년대 소위 불온 문화를 검열하던 정부를 피해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배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해적 라디오를 송출하며 금기에 맞서는 보헤미안 DJ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이 배에 올라타게 된 주인공 청년의 성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만, 진지한 영화는 전혀 아닙니다. 어딘가 대책 없이 낭만적인 보트의 분위기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의 무심한 등장인물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빌런 역할의 정부 관료들까지 한데 모여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죠. 이 영화의 제일 큰 갈등(?) 중 하나인 인기 1,2위 DJ 간의 자존심 싸움만 봐도 리처드 커티스가 이 영화를 매우 힘 빼고 찍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4.jpg "Why So Serious?"라고 말하는 듯한 인물들


그렇다고 허투루 찍은 건 절대로 아니죠. 리처드 커티스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화려한 배우진들과 공들인 미술(배가 너무 멋있어요)로 한껏 멋을 뽐냅니다. 자유를 이야기하는, 반항기 가득한 메인 스토리 라인이 탄탄하게 서있는 건 당연한 부분이고, 영국식 유머와 황당한 전개들을 가득 담은 코믹 에피소드들이 그 사이에 촘촘히 배치되어 끊임없이 여러분을 웃음 짓게 할 준비가 되어있죠. 유머가 취향에 맞으신다면, 이 에피소드들이 끝없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잘 되었더라면 드라마로도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2.jpg DJ 한 명씩의 에피소드만 풀어도 시트콤 한 시즌은 될 텐데


서론이 길었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에 있습니다. 과장을 좀 보태서 음악은 이 영화의 척추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락앤롤 보트와 그 안의 DJ들이 그토록 이야기하고 열망하는 표현의 자유는 락앤롤 음악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기 째문이죠. 그런 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감독인 리처드 커티스는 그의 장기를 살려, 심혈을 기울여 선곡한 멋진 사운드 트랙들을 영화 안에 가득 채워 두었습니다. 각자 다른 스타일을 뽐내는 이 노래들은 각양각색의 매력을 지닌 등장인물들과도 닮아 있는데, 여러분이 1960년대 영국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들이 한동안 여러분의 최애 플레이리스트가 될 수 있으리라 자신합니다.


https://youtu.be/gH5buq6p8Cg

맛보기로 한 곡 듣고 가시죠 - 'All Day And All Of The Night' by The Kinks


사람들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에피소드 나열 형식의 긴 러닝타임이 문제였을까요. 이 영화는 이 수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박스오피스에서 강판당한 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미덕들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유머들과 멋진 사운드 트랙은 영화 VOD와 유튜브 음원으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있으니, 바다 위 자유로운 보헤미안들과 즐거운 두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이 <락앤롤 보트>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6.jpg 뜬금없지만, <IT CROWD> 많이 봐주세요


3.jpg R.I.P, 우리의 카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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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볼만한 영화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그대. 그건 단지 지금이 코로나 시국이라서가 아니라, 그대가 영화의 홍수 속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대의 취향이었을지도 모르는 영화들은 막대한 P&A(Print & Advertisement, 배급 및 마케팅비의 준말)를 등에 지고 극장을 지배하는 대형 한국영화, 프랜차이즈 외화들에 달리, 빈약한 P&A 혹은 잘못된 마케팅, 그로 인한 낮은 인지도로 개봉 사실조차 묻힌 채 사라졌거나, 수많은 우려와 고민 끝에 제 때를 놓친 채 극장을 지나쳐 소리 소문 없이 VOD로 직행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VOD 출시 스케줄만 봐도 이런 외화들이 한 주에만 두 자릿수에 이르다 보니, 보물을 찾아 정글로 들어가는 모험가의 마음으로 영화 VOD 메뉴를 샅샅이 뒤지지 않는 이상 그대가 원하던 그 영화와는 영영 랑데부하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일상에 지쳐 식사 메뉴조차 오래 들여다보기 어려운 그대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이 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색다른 영화를 찾기를 원하는 그대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그대가 놓쳤을만한 좋은 영화들을 소개하는 목적입니다. 만에하나 이 중 하나라도 그대의 마음에 든 영화가 있다면, 검색과 알고리즘을 통해 이를 타고 타고 그대 취향의 또 다른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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