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씨네(Cine)-아쉬운 영화 다시 보기 <4회>
원제: The Boat That Rocked
국내 개봉: 2010. 12. 02
장르: 코미디
국가: 영국
감독: 리처드 커티스
주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빌 나이
워킹타이틀의 대표 선수이자, 로맨틱 코미디의 대가인 리처드 커티스의 영화들에는 마치 인장과도 같은 대표곡들이 있습니다. Love Is All Around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She (<노팅힐>)/ All by My Self (<브리짓 존스의 일기>)/ All You Need is Love (<러브 액츄얼리>)/ How Long Will I Love You (<어바웃 타임>) 등등. 리처드 커티스의 탁월한 선곡은 로맨틱한 스토리에 풍미를 더해주고 푹 빠지게 만드는 그의 특급 레시피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막상 그가 큰 맘먹고 만든, 주옥같은 노래들로 가득한 음악영화 한 편은 전작들과 달리 처참한 흥행 실패를 겪고 뒤늦게야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것이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락앤롤 보트>입니다.
이 영화는 확실히 리처드 커티스의 최근 필모 중 튀는 작품입니다. 그의 장기인 로맨틱 코미디는 확실히 아니고 오히려 골 때리는, 반항아 같은 분위기의 영국 시트콤에 가깝죠. 그러나 알고 보면, 사실 이 분야야 말로 그의 전공입니다. 명작 로맨틱 코미디들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 리처드 커티스는 원래 그의 옥스포드 대학 동창, 로완 앳킨슨과 전설적인 코미디 프로그램, <미스터 빈>을 만들어 유명해진 아티스트이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 <락앤롤 보트>야 말로 그가 원래 만들고 싶었던 코미디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이자 출세작, <러브 액츄얼리> 직후 찍은 작품이 이것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소위 불온 문화를 검열하던 정부를 피해 바다 한가운데에 떠있는 배를 배경으로 그 안에서 해적 라디오를 송출하며 금기에 맞서는 보헤미안 DJ들,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이 배에 올라타게 된 주인공 청년의 성장을 그리고 있습니다. 만, 진지한 영화는 전혀 아닙니다. 어딘가 대책 없이 낭만적인 보트의 분위기와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태도의 무심한 등장인물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빌런 역할의 정부 관료들까지 한데 모여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내죠. 이 영화의 제일 큰 갈등(?) 중 하나인 인기 1,2위 DJ 간의 자존심 싸움만 봐도 리처드 커티스가 이 영화를 매우 힘 빼고 찍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허투루 찍은 건 절대로 아니죠. 리처드 커티스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화려한 배우진들과 공들인 미술(배가 너무 멋있어요)로 한껏 멋을 뽐냅니다. 자유를 이야기하는, 반항기 가득한 메인 스토리 라인이 탄탄하게 서있는 건 당연한 부분이고, 영국식 유머와 황당한 전개들을 가득 담은 코믹 에피소드들이 그 사이에 촘촘히 배치되어 끊임없이 여러분을 웃음 짓게 할 준비가 되어있죠. 유머가 취향에 맞으신다면, 이 에피소드들이 끝없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잘 되었더라면 드라마로도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에 있습니다. 과장을 좀 보태서 음악은 이 영화의 척추와도 같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락앤롤 보트와 그 안의 DJ들이 그토록 이야기하고 열망하는 표현의 자유는 락앤롤 음악 없이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기 째문이죠. 그런 점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감독인 리처드 커티스는 그의 장기를 살려, 심혈을 기울여 선곡한 멋진 사운드 트랙들을 영화 안에 가득 채워 두었습니다. 각자 다른 스타일을 뽐내는 이 노래들은 각양각색의 매력을 지닌 등장인물들과도 닮아 있는데, 여러분이 1960년대 영국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 영화의 사운드 트랙들이 한동안 여러분의 최애 플레이리스트가 될 수 있으리라 자신합니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에피소드 나열 형식의 긴 러닝타임이 문제였을까요. 이 영화는 이 수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박스오피스에서 강판당한 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의 미덕들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유머들과 멋진 사운드 트랙은 영화 VOD와 유튜브 음원으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있으니, 바다 위 자유로운 보헤미안들과 즐거운 두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은 언제든 이 <락앤롤 보트>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