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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in Pangyo Oct 28. 2020

퇴직한 지 1년, 이러려고 퇴사했어?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퇴직한 지 1년이 지났다.

내 생각보다 많은 것이 바뀌었고, 내 생각보다 많은 것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대로 유지되는 것 중 하나는 긴 근로시간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밤, 이른 새벽,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게다가 아이들 등원 후 바로 업무를 하다 보면 아침, 점심은 먹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밥을 먹을 기회가 오면 폭식도 하고 있다. 이전에 어머니께 상당부분 의존했던 아이들 등원, 하원도 직접하고 가사 일도 병행하며 일을 하다 보니 몇 주 동안 하루에 4시간만 잘 때도 많아서 피로가 몰려오기도 한다. 이런 나를 두고 양가 부모님들은 안쓰럽다고 이야기하신다. 가끔씩 방문한 양가 부모님 댁에서 배고파서 허겁지겁 저녁밥을 먹는 나를 볼 때마다 유난히 고생한다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 시아버지는 가끔씩 '아이고 불쌍한 것들'이라고 말씀하신다. 부모라는 존재가 늘 자식을 불쌍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존재라 그런가.. 하지만 나는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내 삶에 만족하고 있다.      


(1) 통제권을 갖게 되었다.

퇴사를 한 후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일에 대한 통제권을 내가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지, 말지 또는 한다면 어느 정도로 할지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2) 시간적 자유가 생겼다.

출근이 없는 대신 연구실 저녁 회의, 주말 근무 등 퇴근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시간을 모두 포함하면 일을 하는 시간은 풀타임 직장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남편과 비슷한 듯하다. (우리 남편은 야근도 많고 근무 시간이 길다.) 그런데도 시간적 자유가 생겼다.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운동을 갔다가 연구실에 출근할 수도 있다. 급하게 아이가 아프면 조금 일찍 퇴근해서 픽업할 수도 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평일 점심에 친구를 만나서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업무가 파도처럼 밀려올 때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아무리 바빠도 내가 하고 싶은 운동을 한 시간 한다고 해서 일이 잘못된다거나, 반대로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더 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3) 우선순위를 둔 가치에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게 됐다.

아이를 낳고 나서 단 한순간도 아이가 일 순위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일 순위라고 해서 내가 아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느냐?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와 평일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될까 말까였고, 주말에는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아이와 보내는 시간들이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퇴사의 가장 큰 목적은 아이들과 함께 등원하고, 직접 하원 하고, 평소 아빠가 부재하니 엄마와 저녁을 함께 먹고, 함께 잠자리에 드는 일상을 갖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성과가 나지 않는 이 반복적인 일들을 하는 것이 나의 퇴사 목적이었고, 나는 지금 그것을 매일 하고 있다. 퇴사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이러한 3가지 이유로 인하여 지난 일 년은 나에게 회복의 시간이자 감사의 시간이었다. 반면, 일 년이 지난 지금 현재 나의 삶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 또한 보이기 시작했다.     


(1) 시간적 자유는 얻었으나 재정적 한계를 마주하였다.

퇴사로부터 딱 1년이 지난 시점부터 퇴사 직전 받던 연봉 정도의 돈을 벌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복지 혜택이 없는 대신, 현재 실수령액 기준으로는 기존 벌었던 돈보다 조금 더 벌고 있다. 이러한 뿌듯함도 잠시, 뿌듯함과 동시에 내가 앞으로 벌 수 있는 돈의 한계치가 명확하게 그려졌다. 시간당 수당으로 받는 준전문가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는 순간, 나의 내재적 가치는 시간이라는 한계에 갇히게 된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시간적 자유를 유지하는 기준으로 일을 하면 정말 잘해야, 정말 잘 풀려야 월 800 이겠구나 싶었다. 그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 더 이상을 달성하려면 나의 우선순위 가치를 포기해야 한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시간당 급여로 측정되는 나의 내재적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 외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을 명확하게 말로 표현하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내가 어떤 부분에서 가려움을 느끼고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다가 어느 순간 여러 자극들로 인하여 알아차린 것 같다. 앞으로 1년-2년은 이러한 한계를 마주하고,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시기로 보내고자 한다. 이 말은 수많은 도전과 그만큼의 실패를 맛보게 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2) 선천적 재능이 없는 나는 어떠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평범한 나는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한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몰입할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동시에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단기 목표는 박사 졸업인데, ‘박사를 졸업하면 ~해야지.’라는 명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도 하고 있다. 회사가 인생의 동아줄이 되는 순간 여러 가지 부작용(워라벨이 없어지는 것, 일의 노예가 되는 것, 일이 실패할 경우 나의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여,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삶의 영역을 심리학, 육아 등으로 다양화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학위를 목표지점으로 삼고 가는 순간 그것이 나의 다른 동아줄이 되는 실수를 반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사 학위라는 조건이 내 삶의 정박점(point of anchor)이 되지 않도록, 그 기준에 나를 묶어두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을 이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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