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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나 Oct 17. 2022

2021.04

4월 24

#엄마의메모


엄마의 노트 속 메모.      


운을 바꾸는 방법 

적선, 기도, 스승. 독서. 본인 팔자….

미소 짓고, 인사하고, 대화 나누고, 칭찬하라. 

상대방에게서 칭찬할 것을 찾아내자.

조용히 말로 감동하게끔. 행동으로 하는 것을 보고 배운다.

부끄럽지 않은 부모의 자식이 되자.       


엄마는 늘 장지갑을 썼고 지갑 안에 고리를 만들어 볼펜을 넣어 다녔다. 

펜이 늘 준비되어 있던 사람, 엄마.          


4월 26

#2주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2년이 흘렀다. 

오랜만에 ‘엄마’라고 적고 엽서를 쓰며 지난 2년을 돌아보니 거쳐온 많은 일이 떠올랐다. 2년 전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하던 날, 가족 대표로 상담하면서 처음 들은 말은 “영정사진은 준비하셨나요?”였다. 입원과 동시에 죽음과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는 슬픔. 하지만 당시 담당해준 사회복지사분이 “오늘 입원하신 분에게 이런 말씀 드려서 죄송하지만, 다들 미리 준비하실 수 있다면 사진을 골라 두실 수 있으니까요.”라고 전해주셨다. 그날 밤부터 삼남매가 가장 엄마다운 사진을 찾아 몇 장을 추려 공유했고 최종적으로 내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을 남동생이 사진관에 가서 뒷배경을 바꾸어 엄마의 영정사진으로 준비했다. 액자까지 사서 병실 옷장 안에 두고 있었던 20일. 우리는 이 사진 덕분에 지금도 엄마를 보고 웃을 수 있기 때문에 그때 이 사진으로 고를 수 있어 감사하다.      


언젠가 엄마가 나와 한 장례식장에 갔을 때 ‘흰 국화가 있는 장례식이 싫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오래 꽃을 즐기시고 때때로 주변에서 꽃 주문도 받던 엄마. 마당을 가꾸고 제철 꽃과 나무 이름을 잘 알던 엄마. 그래서 긴 인연을 맺은 한 꽃가게 사장님께서 엄마를 찾아오셨을 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장례식의 꽃을 부탁드렸다. 


오늘 엄마에게 가져갈 떡을 사며 꽃가게 사장님께도 떡을 보냈다. 엄마 부고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와 마음을, 시간을, 기억을, 자식들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을 장면을 만들어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었다.     

엄마가 사랑한 것, 엄마의 컬러링, 엄마가 인생을 바라보던 가치와 그 시선을 돌아본다. 편안히 웃으며 우리를 바라볼 엄마를 추억하고 기억한다. 자식들에게 극진한 사랑을 받은 엄마. 그리고 이런 문장을 떠올려본다. 

‘잊히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 

엄마의 글을 쓰며 연결된 이들을 통해 다르게 보인 세계가 많다. 꾸준히 써 내려갈 긴 글의 원동력을 찾아본다.   

        

4월 29

#목각수녀님 #녹음으로남아있는장례미사


2년 전 오늘, 엄마의 장례미사 날. 투병 중에 평생 다니시던 성당을 거의 못 나가셨기에 엄마의 장례미사만큼은 꼭 성당에서 드리고 싶었다. 엄마의 관과 함께하는 미사. 정말 마지막 미사. 내가 다니는 성당 본당에는 장례미사 성가대가 따로 있어 그분들이 성가를 불러주시고 유가족은 관과 함께 입장하는데 직접 그 자리에 서니 그 시간이, 그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장례 여정을 돌아보면 본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추모공원으로 갔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성전에서의 평생 잊히지 않을 모습이라 요즘도 미사에 가면 그날을 떠올린다. 천주교인은 세례도 혼배도 장례도 모두 이 십자가와 제대 앞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여기에 있구나 싶다.     


평소 열심인 신자가 아니었어도 장례를 치른 뒤에는 더 깊은 마음이 드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장례식이 최대의 선교지란 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아름다운 마무리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고 고인은 물론 유가족을 챙기고 기도해주는 마음마저 받게 되니까.      


아빠는 종종 우리와 대화하는 걸 녹음하곤 한다. 엄마의 장례미사도 그렇게 녹음해두었는데 나중에 

‘그때 신부님 강론이 무척 좋았는데’ ‘그 성가대 곡이 정말 감사했는데’라고 말씀하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나도 그 녹음을 다시 들으며 그날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돌아보면 그 귀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녹음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관에 함께 모신 목각 수녀님. 남동생이 엄마에게 선물한 수녀님 목각인형을 엄마 가는 길에 함께 가주시라고 넣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걸 어떻게 생각하고 챙겨서 사진까지 찍었지 싶다. 관을 닫기 전 장례지도사님이 ‘어머님, 마지막으로 보시는 겁니다.’라며 사진을 찍으라고 말씀해주셨던 게 아직도 무척 감사하다.


한 사람의 필체도 오직 그 사람 만의 것.여러 노트에 적어둔 엄마의 문장들이 나에게도 오랜 시간 말을 건다.


2019년 4월 26일 세상 하나뿐인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인스타그램에 엄마의 세례명을 딴 #로사리아의선물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 이란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말을 아낍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엄마이지만 엄마와 나눈 시간, 말과 행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글로 남겨둡니다.

훗날, 엄마를 잃게 될 많은 딸들과도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 10회 브런치북 응모를 위해, 지난 글을 정리해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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