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

운전하며 알게 된 것들

by 이지나

지난 주말 아침 올림픽공원으로 운동하러 가며 차를 가지고 갔다. 달리기 7킬로, 쿨다운 후 보온병에 담아 간 차 한 잔 나누며 함께 달린 이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속사포처럼 쏟아진 언니의 문자는 이랬다.


“차 가져갔지? 내가 어제 차 쓴다고 했는데!”

“어? 내가 물어봤을 때 언니가

언니가 ‘차 써’라고 말해서 내가 타고 온 건데.”

•••


운전면허는 십 년 전에 땄는데 어쩌다 보니 운전을 하지 않고 지냈다. 연수도 받지 않고, 어딜 가든 대중교통으로 다니고, 짐이 많아도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다. 그러나 서른 중반이 넘어서 언니 차에 보험을 더해서라도 일단 운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초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뒤에 바로 연수 선생님을 알아보고 언니 차로 연수받고 운전을 시작하고 동네, 주말 오전엔 강남/강북을 오가기도 한다.


“차는 움직이는 자기만의 방”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 말이 맞았다. 그 안에서 듣는 음악, 내가 가는 길, 차 안의 향기 나 그 안에 둘 것 등등. 내가 어딜 향해가는지 그 목적지도 1주일에 몇 번은 그저 내가 온전히 정할 수 있다. 짐이 많고 요사이는 카메라를 자주 들고 다니는 내가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니 기동성이 플러스 알파로 추가됐다. 하지만 언니의 차이다 보니, 언니 거 피보험자인데 내가 두 번의 사고를 낸 것도 내 이름이 아닌 언니 이름으로 사고가 3년 간 남아 할증이 된다는 것을, 겪어보며 알게 됐다.


지난 주말의 “차 써. 차 써.” 내 입장에서 보면 나에게 차를 쓰라는 말로 들리고, 언니의 입장에선 언니가 차를 쓰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로 상대의 말을 듣는다.

이날은 언니에게 “언니의 계획이 틀어지게 해서 미안, 그런데 나는 나한테 차를 쓰라는 이야기인 줄 알았어. 앞으론 주어가 명확하게 있어야 할 듯. 오늘은 미안!!” 하고 택시비를 보내줬다.


한국어가 이렇게 쉽지 않다.^^


-

지난 10월 4일,

집 근처 사거리에서 신호대기 중에 초록불로 바뀐 뒤 앞 차가 1/2초 정도 출발이 늦었는데, 내가 녹색불만 보고 액셀을 밟아서 앞 차를 박았다. 그런데 그 앞차는 흰색 밴츠였다! 운전을 시작하고 세상에나 이렇게 벤츠를 타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놀라고, 그중 흰색 벤츠가 많아서 왠지 그 차를 싫어했는데

박자마자 소리가 너무 커서 놀라고, 앞에 차 로고에 벤츠 로고가 보여서 ㅠㅠ 더 놀랐다.


대물, 대인, 내차 보험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대인 처리를 약 2달간 받고 지난주 합의가 됐다고 보험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직 뭘 잘 모르는 나도 너무 짜증이 났다. (“제가 속도라도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이게 평균적으로 두 달 정도를 끌 사고인가요?” 등등을 묻고, 보험사 분도 좀 억울한 부분이 크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도 차가 크게 수리할 부분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고,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아서 ㅡ다행이었지만 합의가 되지 않고 있다는 걸,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대체 이 사고를 언제까지 끌지’, ‘돈은 얼마나 나올지.’, ‘할증은 얼마나 될지’

등을 혼자 상상하던 시간이 정말 괴로웠다.


운전 시작하고 첫 사고는 주차된 차를 빼다가 옆 차를 긁었는데 그 부분이 길어서 (운전자는 없었음) 대물로, 두 번째가 신호대기 중 앞차를 박은 (이것은 거의 100% 뒤차, 박은 차 잘못이라고) 것. 앞으로의 무사고 운전을 기원한다.


운전을 시작하니 나의 대화에 운전하는 이들, 사고와 대인 사건에 같이 화내는 일도 생겼다. 사람은 자신이 겪고, 관심 있고, 자신의 바운더리에 있어야 자기의 말이 되어 나온다.


2020년의 운전은 언니 차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다. 당장 새 차를 살 순 없지만 거리의 차가 눈에 들어오고, 누군가 차를 태워주는 것에도 더욱 고마운 맘을 갖게 된다.^^


내가 운전해서, 내가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것. 내 속도로 내가 택한 길로. 보조석에서 운전석으로 ㅡ 2020년의 발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