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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슬아 작가를 훔쳤다

월 100만 원의 디지털 월세와 '이슬아 챗봇' 개발기

매달 100만 원에 가까운 '디지털 월세'가 빠져나간다. GPT-5 Codex 사용료, 클로드 코드 구독료, 제미나이, 퍼플렉시티, 젠스파크, 커서 AI 툴 이용료다. 나는 현재 인공지능에 미쳐있다. AI로 하루를 시작해 AI로 마감하는 내게, 누군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인간답다고 규정하는 기준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말없이 그저 내 신용카드 명세서를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AI에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나는 정작 가장 간단한 글쓰기 앞에서 자주 무너진다. 바로 이메일 쓰기다. 빈 화면에 '... 님께'라고 쓴 뒤 긴 묵념에 빠진다. 거절의 말을 어떻게 돌려 말해야 할지, 축하의 말에 어느 정도의 진심을 담아야 할지, 그 '적정선'을 찾는 일은 내게 AI가 작성해 준 코드를 분석하는 일보다 어렵다. 지메일에 제미나이가 붙은 건, 나처럼 모니터 앞에서 무릎 꿇는 인간이 한둘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얼마 전에 나는 제이펍에서 <실무에 바로 쓰는 일잘러의 챗GPT 프롬프트 74가지>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표지에서 맨질맨질 매끈한 윤기가 흐르는 이 책의 첫 주제는 공교롭게도 '이메일 작성하기'다.


이슬아 작가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는 충격이었다. 그는 이메일 쓰기라는 주제 하나로 몇 백 페이지를 채웠다. 그 주옥같은 문장들을 내 뉴런에 일일이 박아 넣고 싶었지만, 고작 밑줄을 긋고 노션에 옮겨 적는 게 전부였다. '나는 역시 창의적이지 못하구나.' 책을 덮으면 끝이었다. 하루만 지나도 감탄했던 문장들은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새로 태어난 뉴런 탓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PDF로 변환된 이슬아 작가의 문장들을 NoteBookLM에 업로드했다. 수백 페이지의 텍스트가 순식간에 '소스'로 변환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심지어는 동영상까지 제작해 줬다. 유튜브 영상 속 그의 목소리까지 텍스트로 뽑혀 나왔다. 기계가 인간의 '결'을 학습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데이터 입력이 아니었다. 어쩌면 훔치는 행위에 가까웠다. '이슬아 작가님, 죄송합니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이슬아식 이메일 작성 프롬프트'를 만들기 위한 첫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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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와 챗GPT를 거치며 프롬프트는 정제될 줄 알았다. 하지만 문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불어났다. 처음의 간결한 코드가 온갖 예외 처리와 주석으로 덕지덕지 무거워지는 스파게티 코드베이스(codebase)처럼, 프롬프트는 점점 비대해졌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프롬프트를 제미나이 '젬스'에 집어넣었다. 공장에서 프레스를 가공하는 것처럼 시끌벅적한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귓속에서는 마치 이슬아 작가가 지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젬스가 완성되고 나서 나는 실험정신으로 이메일 한 편을 작성해 봤다.



결과는? 놀라웠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지극히 내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경탄을 의미하는 형용사는 굳이 사용하지 않겠다. 젬스가 뱉어낸 이메일 초안에는 분명 이슬아 작가의 '결'이 묻어 있었다. 내 주관적인 정성 평가로는 80% 이상 일치했다. 이 수치의 근거를 묻는다면, 그저 '내 뉴런이 그렇게 판단했다'라고 답하겠다. (반박 시 당신 말이 무조건 옳다.)


젬스(Gem)에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웹 서비스로 만들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OpenAI의 API 토큰이 또다시 타들어갔다. 이슬아 작가의 문장을 훔친 값일까, 아니면 이메일 쓰기의 고통을 피하려는 대가일까. 어느 쪽이든, 백만 원의 디지털 월세에 몇 만 원이 더 얹어졌을 뿐이다


결국 나는 이메일 쓰기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이슬아 작가를 흉내 내는 AI 챗봇까지 만들었다. 바로 조금 전에도 나는 젬스가 써준 초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문장은 흠잡을 데 없지만,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은 여전히 망설였다. 80%의 이슬아와 20%의 기계. 그 어디에도 '나'는 없는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이메일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이 아니었을까. 디지털 월세 명세서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






그리고 <실무에 바로 쓰는 일잘러의 챗GPT 프롬프트 74가지> 제 책에는 이슬아식의 이메일 작성기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메일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각종 인공지능(챗GPT) 꿀팁(프롬프트)이 마련되어 있으니 심심할 때, 지하철에서 슬쩍 꺼내서 읽어보고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으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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