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ㅎㅈ Sep 07. 2019

스물두 살의 버킷리스트를 스물여섯의 내가 다시 보았다

나는 그대로였다 

나는 주기적으로 버킷리스트를 쓴다. 내가 원하는 걸 정리해보고, 그걸 문장으로 기록해놓고, 시간이 흘러 그중 하나라도 이뤄진 걸 보며 기뻐하는 순간들이 내겐 무척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언어로 내 소원을 남겨 놓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면, 그게 어느 정도는 이뤄진다 믿는다. 언어는 힘이 있기에. 


외장하드를 꺼내 예전에 작성한 버킷리스트 파일을 찾아보다가, 내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개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15년도 9월, 어느 전공수업에서 2학기의 개강 첫 주 아이스브레이킹 과제로 '10개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런 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조차 완전히,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파일을 발견해 다시 읽자마자 머리를 한대 내려 맞은 느낌이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의 버킷리스트 10     

(마지막 수정 2015-09-05 오전 12:28)


1. 내가 인정받는 글쓰기

글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쓰고 있지만, 항상 혼자서만 보고 혼자서 고치기를 반복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객관적이고 예리한 평가를 받고 싶다. 그리고 그 글로 모든 대중은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


2.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공부하기

중국지역학과 문화콘텐츠학 수업을 듣는 지금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두 전공 모두 내게 잘 맞는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배우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연극’이다. 졸업 후 대학에 재입학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연극학 공부를 하고 싶다. 욕심 같아선 앞으로의 커리어도 그쪽으로 쌓고 싶다.

하지만 꼭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해야만 연극을 배울 수 있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학생으로서 순수하게 그 학문에 ‘탐닉’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다.

작년 겨울 계절학기 학점교류를 통해 한예종에서 연극원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추운 겨울에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꺼려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가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인 내가 아침부터 옷을 두껍게 껴입고 한 달 동안 학교를 열심히 출석했다. 따뜻한 공기가 가득한 강의실에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엎어질 때도 나는 단 한 번도 졸지 않았다. 연극을 공부하는 그 시간이 너무도 좋았기 때문이다. 나의 20대에, 돈 걱정 없이, 진로 걱정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또 한 번 그렇게 하고 싶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3. 낯선 곳에서 철저히 혼자로 남기

태어나서 지금까지 항상 타인과의 연결고리를 두고 살았다. 물론 그 고리는 내게 어딜 가든 안정감을 주었지만 때로는 그 고리를 완전히 깨부수고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철저하게 혼자인 채로,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이방인의 신분으로 꽤 긴 시간을 살아보고 싶다.

이번 겨울방학에 혼자 한 달 남짓 미국을 여행한다. 그리고 내년에 휴학을 하면 제주에서 또다시 한 달을 살고 오려고 한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런 가면을 쓰지 않은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4. 나의 색깔 찾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평범한 사람보다는 개성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그저 그런 ‘흔남 흔녀’보다는 ‘또라이’가 나아 보인다. 이상한 사람이 좋다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색깔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 어떤 삶의 방향성을 추구하는지를 넘어서서, 자신이 뭘 잘하는지, 내가 지금 이 순간에, 혹은 평생 살아가는 동안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정말 비범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의 밑바탕은 자존감인데, 나는 그 자존감이 너무 부족하다.

나는 단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아는 단계를 넘어서 내가 뭘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 너무 무능력해서 내가 무슨 실수를 저지르는지도 모르는 한심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거기에 한번 다가오는 좌절에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는 머저리가 되고 싶지도 않다. 경험이 답이라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5. 나를 존중하기

나를 존중하기가 참 어렵다. 누가 존중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도 아닌데 나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는 그리 좋지 못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또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타인을 위한 배려보다는 내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자주 자신을 비하한다. 20대가 되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나는 나 자신을 상당 부분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삶을 이끌어 가기엔 아직까지 많은 것들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6. 무대에서 호흡하기

나는 공연을 참 좋아한다. 특히 연극, 무용, 창극, 이 세 가지 장르를 좋아한다. 나는 종종 공연의 일부가 되어보고 싶다는 상상을 한다. 무대에서 호흡한다는 것은, 단지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배우뿐만이 아니라 무대 뒤 어두운 구석에서도 하나의 완전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일부가 되는 것을 말한다. 무대의 맨얼굴에서부터 무대를 가장 아름답게 꾸민 모습, 그리고 다시 그 공간이 공허해지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7. 사랑하기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적은 인생 전반에 딱 한 번뿐이다. 19살 수험생 때, 그 전과 후로는 누구를 강렬하게 좋아한 기억도, 강렬하게 미워한 기억도 없다. 내 인생에서 나 자신이나 가족 때문이 아닌 타인에게서 비롯된 감정 기복은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가능성이 아주 희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이 주는 사랑 말고, 내가 하는 사랑, 내가 누군가를 정말 강렬하게 사랑하고 마음속에 그리는 경험. 어쩌면 ‘사랑하기’는 지금 적고 있는 10가지 중에서도 가장 ‘덜’ 간절한 것이라 어쩌다 툭, 그냥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8. 평생 향유할 수 있는 나만의 보물찾기

글쓰기와 연극은 내가 각각 10대와 20대에 찾은 나만의 보물이자 해방구다. 글쓰기를 하거나 연극을 볼 때면(또는 연극에 대한 글을 쓰거나 읽을 때면), 나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진정한 ‘몰입’을 경험한다.

20대에 앞으로 남은 인생 동안 더 많은 ‘몰입’을 경험하게 해 줄 보물들을 많이 찾아두고 싶다. 사진이나, 미술이나, 음악이나, 여행이나, 흔하거나, 흔하지 않거나, 다 상관없이. 그저 내가 정말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보물들을 찾아서 잘 보듬고, 계속 배워나가고 싶다.


9. 하루하루를 동기 부여된 채로 살기 (Stay Motivated)

솔직히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지만 내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고민거리도 없고, 걱정거리도 없고, 그저 내 또래의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적당한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내게 스트레스나 고민은 그저 삶을 너무 처지지 않고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윤활유 같은 것이다. 또 반대로 나는 정말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가보고 싶은 곳도 없다.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이나 나의 신분,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다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지금에 만족한다.

오히려 이런 현실 속에 있기 때문에 내가 나보다 더 강한 것에 이끌리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항상 스스로를 동기 부여된 채로 유지시키는 것, 삶에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현재에 만족하다 못해 안주하려고만 하는 나지만 정말 독하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다. 


10. 이기적으로 살기

예전에 어디선가 ‘개썅 마이웨이’라는 단어를 들은 적이 있다.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건지 인터넷에서 본 건지는 정확지 않은데, 이 단어를 처음 듣고 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다가, 앞으로의 내 삶이 딱 ‘개썅 마이웨이’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학교, 아르바이트, 대인관계, 사회, 타인, 직장, 일... 이런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까지나 오로지 나 자신만이 주체가 되는 나의 삶을 살고 싶다. 아직은 내 선택에 떳떳이 맞설 용기도 깡도 부족해서 종종 스스로를 감추지만, 점점 그 부족한 자질들을 키워나가 스스럼없이 나 자신을 위한 결단을 내리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를 존중하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삶, 그런 삶을 살아가는 ‘습관’이 나의 20대에 완성된다면 참 좋겠다.


고작 10가지 버킷리스트를 쓰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다.

당장 뭘 하고 싶다, 갖고 싶다, 가고 싶다, 배우고 싶다 말고, 20대 전반에 있어 내가 실천하고 싶은 10가지를 적어보았다. 평소에 그렇게 많던 욕심은 다 어디로 간 건지, 이 10가지를 채우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글을 다 완성하고 보니,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점점 감이 오는 것 같다. 


스물여섯의 내가 스물두 살의 내가 쓴 버킷리스트를 다시 읽는다. 오늘은 9월 7일이니까, (거의) 정확히 만 4년이 지난 시점이다. 나는 내가 어떤 면에서는, 가령 내 소속이나 직업, 나를 둘러싼 환경은 아주 많이 변했지만 나라는 사람과 그 본질 자체는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낀다. 


스물두 살짜리 아이는 대체 뭐가 부족해서, 뭐 때문에 '철저히 혼자 남고 싶다'고 했을까. 무려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철저히 혼자로' 남는 거라니...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왜 그렇게 혼자이고 싶어 하는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게 꾸역꾸역 힘들게 안온한 울타리로 들어왔으면서 왜 그걸 깨고 나가고 싶어 하는 걸까. 니가 무슨 알을 깨고 나가야 하는 데미안이라도 돼? 


'독하게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고 싶다'라고 쓴 부분도 여전하다. 나는 보름 동안의 뉴욕 여행(한 달 남짓의 미국 여행은 당시 사정상 보름간의 뉴욕 여행이 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종종 뉴욕 병을 앓다가 최근엔 뉴욕으로 이직을 하는 걸 꿈꾸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요즘 내가 맨날 뉴욕 타령을 하는 것도 결국엔 (그게 무척이나 허황돼 보일지라도) 그냥 뭔가 하나 말뚝을 박아놓고 그걸 향해 달려가는 추진감, 그 감각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어서인 것 같다. 스물한 살 두 살 때 이후로 그런 걸 잘 경험해보지 못했었으니까. 


스물여섯의 내가 스물두 살의 내가 쓴 버킷리스트를 다시 읽는다. 

내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많이 변했고 어떤 면에서는 놀라울 만큼 변하지 않았다는 게 참 소름이 돋는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한 선택에 흔들리는 스물여섯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