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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y 12. 2016

대학 4년과 졸업과 나

졸업을 앞둔 흔한 대학 4학년의 고백

어느 광고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였다. "물론 꼭 광고를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다른 지원자들은 그래도 광고업을 인생에서 하나의 중요한 선택지로 생각하고 있거든요. 효정 씨는 어때요?" 솔직하게 답했다. "한때는 광고를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광고 외에도 다른 것들을 경험해보니까 세상에는 재밌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면접 결과는 어쩌면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회사 카피라이터 님으로부터 "경험의 힘을 아는 아이"라는 타이틀을 받았다. 나는 종종 그 순간을 곱씹는다. 그리고 여전히 생각한다. '세상에는 재밌는 게 너무 많다'고. 평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을 만한 양을 훨씬 뛰어넘을 만큼, 세상은 들여다보고, 사색하고, 경험해 볼 만한 흥미로운 것들로 가득하다.


4학년이 되니 이처럼 새삼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욱더 많이 하게 된다. 취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곧 학교를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초·중·고 12년을 지나, 대학이 내게 만들어준 울타리는 지난 4년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가두지도 풀어두지도 않는 '보이지 않는 안전망' 같은 것이었다. 그 울타리 덕분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학교 안팎을 오가며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었고, 반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그저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잠자코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누구도 내게 무엇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혹여나 엄마의 잔소리처럼 이따금씩 나를 조종하려는 시도가 있어도 학생이라는 이유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뻔뻔하게 맞서 싸울 수 있었다.


한때는 휴학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다. 3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에 한 번, 3학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에 한 번. 3학년이 왜 '사망년'으로 불리는지를 깨닫게 된 순간, 학교에 있는 시간이 너무 미워졌고 주변에는 다음 학기에 휴학할 거라는 이야기를 이미 확정된 것처럼 흩뿌리고 다녔다.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들을 어정쩡하게 '잘' 버텨냈고, 지금은 휴학계를 내지 않은 나의 선택, 혹은 내지 '못한' 나의 소심함이 오히려 참 다행이었다 생각한다. 지난 대학생활을 돌이켜보면 나는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 상태에서는 오히려 스스로를 옭아매고, 어느 정도의 '압박'이 들어왔을 땐 오히려 강하게 저항하며 세상 밖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휴학'이라는 반년 내지 일 년의 완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면, 나는 아마 지난겨울 방학 때처럼 하루의 절반은 침대와 일심동체가 되어, 나머지 절반은 이 짓을 하다 남보다 반년이 늦어진 것에 대한 '걱정 근심의 탑'을 쌓아 올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니는 날들이 마치 기념일을 거꾸로 세듯 하나둘씩 줄어간다. 수업에 들어가면 1학년 때 본 고학번 선배들이 아직도 졸업하지 않은 것을 보며 혀를 끌끌 찬다. 한때는 학생 신분을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하루빨리 졸업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이 시간을 더 이상 유예하고 싶지도, 연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대학 4년이면 딱 주어진 그대로, 4년이라는 시간을 멋지게 채우고 깔끔히 끝내고 싶다. 이런 확신을 갖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믿는 구석이 생겼기 때문이다. 바로 '나 자신'이다.


나란 사람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것을 향유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 고로 졸업을 또래보다 조금 일찍 혹은 늦게 한다 한들, '나'라는 사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골몰할 것이고, 조금이라도 더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매진할 것이다. 만약 '대학 4년'과 '졸업' 사이에서, 내가 '나'가 아닌 다른 요소들, 가령 취업이나 학점, 또는 스펙이 좀 더 마음에 걸렸다면 지금의 이런 태도를 갖지는 못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졸업 이후의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이게 다 지난 4년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갖은 실험을 하면서 알게 된 결과다. (그 '갖은 실험'이란 26개의 대외활동, 8개의 공모전, 수많은 이들과의 관계 맺기, 1년 간의 심리상담, 그 외에 자잘한 잉여짓과 덕질, 수백 번의 과외와 기타 돈벌이 경험 등등을 말한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다만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하는 것이 좋을지, 내 내면의 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것뿐이다.


졸업을 앞둔 지금 나는 내 앞에 너무나 많은 선택지들이 놓여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고 있다. 전통적인 취업 루트를 비롯해 각종 스타트업과 벤처기업, 해외취업, 심지어는 창업까지.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그 어느 돌이든 두드려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심지어 발을 내딛거나 혹은 아예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선택은 오직 나의 몫이다. 단,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미래를 굳이 성공과 실패의 잣대로 이분하여 재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졸업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로 취업과 미취업이라는 잣대로 나누지 않으리라는 다짐이다. 나는 언제나 '내 뜻대로'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때로는 실패하고, 빙 돌아가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실험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졸업은 새로운 무언가의 시작일 테니까. 그게 4학년이 되어 가끔은 불안에 떨면서도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 졸업을 앞둔 오늘날 나의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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