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ㅎㅈ Apr 19. 2017

내가 하고 싶은 일

꿈과 반짝이는 것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1-


 왜 나는 불나방 같은 속성을 지녀서 가까이 갈 수도 없는데 번쩍이고 화려한 걸 이렇게 좋아할까. 대놓고 좋아한다고도 못해서 티도 잘 못 내고 표현도 못한다. 그냥 한없이 움츠러들기만 할 뿐이다. 몇 번 전구에 튕기고 쿵- , 또 창문에 몇 번 튕기고 쿵-. 마치 나방처럼. 차라리 화려한 걸 쫒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걸. 빛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걸. 왜 나는 항상 이런 것에만 빠져드는지 모르겠다. 이런 성향이 내 유전자에 박혀있어서? 그걸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야 하는지 나는 배워본 적이 없는데. 기회도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꿈이 작아지기만 한다. 잊었던 걸 생각해보면, 내 꿈은 작아지기만 했지 한 번도 다시 커진 적이 없다. 세상에... 이걸 이제 알았다.




-2-


 고등학교 친구 중에 한 명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본격적으로 연습생 생활에 돌입했다. 아직도 하고 있다. 사실 그 어느 곳에 소속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계속 하고 있다. 내가 4학년이 될 때까지, 그 친구는 노래와 춤 연습만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기약 없이 했던 걸 되풀이하는, 그래서 조금 더 나아지는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함부로 재단했었다. 가망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부럽고 멋있는 건 그 친구다. 적어도 걔는 자기 본능에 충실하잖아. 하고 싶은 거 숨기지도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고. 원하는 게 있으면 하고, 거짓도 없고. 적어도 나처럼 가면을 쓸 일은 없다. 그게 제일 후련한 일 아닌가. 남들의 평가가 중요한 업이지만, 남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원하는 걸 계속 따라가는 것도 그 친구의 집념이고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뭔가를 갖고 싶고 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 반짝이는 걸 원한다고 말하는 거, 난 언제 그래 본 적이 있었나. 




-3-


 예술이 진짜 다 그런 것 같다. 소설을 쓰든 아이돌 컨셉 기획을 하든 뭐든 간에 전부 이전에 있었던 것에 대한 나의 대답, 나의 해석이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또 그렇게 색다른 것들이 나오는 것 같다. 수많은 재해석이 가해져서. 나 지금 사실 되게 많은 것들을 빨아들여야 할 시기인데, 학교에서 그냥 수업 듣는 걸로 내 학창 시절을 낭비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을 때가 많다. 고전도 많이 읽고, 많은 레퍼런스들을 쭉쭉 흡입해야 되는데 왜 이러고 있지. 


 사실 대학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큰 착각인 것 같다. 대학은 이미 내가 원하는 범위와 방향의 공부를 나 개인에 맞게 제공해주지 못한다. 언제 취업할 거냐고 닦달하기만 하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많은 걸 빨아들여야 하는데 학교에서 과제하고 팀플 하는 건 그저 나를 소진(burn-out)하기만 할 뿐이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걸 소비해서 아웃풋을 내야 할 텐데, 아직까지도 나는 인풋이 너무 적게 투입된 사람 같다.


사실 나의 10대는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거, 낯선 환경에 나를 적응시키는 거, 싸움과 우울함에서 나를 건져내는 거, 이런 것들에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다. 끊임없이 인풋을 쏟아부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게 지금 내가 나를 돌아볼 때 가장 안타까운 지점이다. 


 고전을 읽어야겠다. 나이 스물넷에 이제야 그 필요성을 느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열심히 읽기로 하고...  아예 시작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렇게 또 열심히 살아야지.




-4-


 나를 쏟아붓는 일, 갉아먹는 일 말고, 분석하고 주입하기만 하는 일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투입하는 일. 내가 지금까지 배운 것을 다 집어넣어, 내가 주체가 되어 재해석하는 일. 즉각적인 대중의 반응과 재해석을 얻는 일, 그렇게 힘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예전에 한 선배가 이런 단어를 말해준 적이 있는데, '외화내빈 外華內貧'이라고. 이게 내가 추구하는 업의 공통점인 것 같다. 이런 걸 좇는다는 게 뭔가 내실이 없고 공허해 보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는 부분.




-5-


 오늘 정말 신기하게도 교수님 두 분이 각자 내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내려주셨다. 요즘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생각들이었는데, 사람이 하는 생각이 다 비슷한 건지,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 건지 잘 모르겠네. 어쨌든. 


 첫 번째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은 "계속 바쁘다고 하는 사람은 곧 게으른 사람이다"라는 말이었다. 진짜 능력 있는 사람은 조용히 자기 할 일 하면서 적절히 시간을 배분하는데 오히려 능력 없고 게으른 사람들이 항상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고, 이 말은 교수님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하셨다. 늘 바쁜 게 나를 위해 정말 좋은 건지, 늘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삶이 정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내 능력 밖이라면 쳐내고 정리하는 것도 재주라고. 


 두 번째 교수님이 해주신 말은 '꿈꾸지 말라'는 말이었다. 꿈이라는 게 사람이 지금 당장 눈앞에 당면한 과제들을 해치우기 싫어서 상정해놓은 어떤 '하나의 큰 허상' 같은 것일 수도 있다면서, 하고자 하는 맘이 들 땐 그냥 바로 하라고 하셨다. 계속 고민만 하지 말라고. 


 우리가 좋은 생각만 한다고 해서 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듯이, 고민을 아무리 많이 해도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계속 생각만 하면서 행동을 유예하지 말고 "하고 싶을 때 빨리 하라"고 하셨다. 이 교수님의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고민은 동사가 아니야"라는 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한테 '네 걱정 많이 했어'라고 말하면 그 걱정을 증명할 수 있어? 걱정은 행동이 아니라고." 걱정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는 핑계일 뿐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때론 '꿈'이라는 말도 걱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역할을 하고 만다고.


 "애당초 자랑할 수 있는 인생이라는 건 없어. 좋아하는 일을 할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루하루 미루는 게 지금으로서 끝일 거 같지? 이렇게 미루다가 평생 미룬다.”





작가의 이전글 '착한 딸'에 저항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