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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불시착 김택수 Mar 24. 2024

주머니 속의 장르 23

보이는 것을 그린다

I will draw what i see

보이는 것을 그린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는 일을 합니다. 그것은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일도 아닙니다. 고양이를 따라가 보기도 하고, 여름을 기다리는 선풍기를 오래도록 바라보기도 합니다. 산책하는 강아지의 몸짓을 보고, 떠 있는 구름을, 때를 기다리는 왜가리와 어떤 돌멩이의 색, 촉감을 느껴봅니다. 시집도 읽고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을 읽습니다. 그런 일들이 그림을 그리는 일에 도움이 될지 확신은 없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림도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느날 아침 딸아이는 키우는 거북이를 보며 말합니다. "아빠 누가 복림인지 알아? 이복이는 다른 거북이들을 괴롭혀 그런데 삼복이는 안 문다. 복순이는 얼굴이 귀여워 일복이는 눈치가 빠른 것 같아."하며 하나도 구분이 되지 않는 거북이들의 이름을 열심히 설명하는 아이의 얼굴은 행복합니다.

 

빈 종이에 펜을 들고 한참을 망설이다 보면 떠오르는 건 고양이의 의심스러운 눈빛이라던가, 구부정한 선풍기, 거북이를 좋아하는 아이 얼굴이겠죠.


보이는 것을 그린다는 건 상상하는 힘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눈을 감았을 때 더 선명해지기도 합니다. 냉장고의 문을 열었을 때 바다가 보인다면, 우리들의 도화지는 무한해집니다. 담배를 물고 있는 고양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귀가 조금 이상하게 생긴 사람도 그림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죠.


긴긴 추위를 이겨낸 화초를 만져보는 일과 야구장 잔디 위에 남겨졌던 공을 가만히 바라본다면 그것은 아마 열렬히 그리고 싶다는 마음일 겁니다.


오늘 우리가 본 건 어떤 사랑일까요? 



 by 김택수

https://www.instagram.com/illruw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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