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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30. 2021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될 수 있을까.

글쎄, 그게 정말 좋은 일일지는 잘 모르겠다

일복이 터져버렸다. 

원고 마감은 정말 코 앞이고, 조금씩 취미처럼 해오던 소품샵은 이번 달 매출이 지난달의 다섯 배가 되고, 취미반 일 반이던 사진은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남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는' 그 과정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행하고 초조하다.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1. 좋아하는, 또는 좋아했던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조금 과할 정도로 많은데, 오죽 많으면 20살 이례로 항상 써오는 아이디가 emptybean이다.  '영(0)'지여서 emptybean 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 아이디를 만들 때도 오만가지 생각 끝에 한 달 동안 이름을 못 지을 거라면  그냥  '생각을 비우자' 하고 지었던 그 아이디가 emptybean이다.  empty + 비어있다 할 때 그 빈..

그런데 또 그렇게 잡생각이 많아 그 생각들을 뱉어내지 않으면 답답함으로 도지는 예민한 사람이기도 해서, '글쓰기'는 언제나 나에게 꽤 든든한 탈출구 었다. 내 메모장에서 블로그로, 페이스북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브런치로 - 그 터를 옮겨 갔을 뿐, 언제나 어딘가 기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리고 내 작은 가게가 있다. '예쁜 물건을 소개하는 그런 가게, 내 취향을 한껏 담은 가게'를 꿈꾼 것은, 아마 본격적으로 디자이너로 일을 하기 시작한 후인 듯하다. '예쁜 것, 특별한 것'을 좋아하지만, 또 그렇다고 동료 디자이너들과 달리 무언가를 직접 만들고 싶다는 창작 욕구가 없는 나였다. 그래서 '나만의 가게'는 왠지 모르게 쾌쾌하게 묵어 있었던, 하지만 그 방향을 찾지 못했던 나의 창작 욕구에 대한 해결책이었고, 하나하나 나의 취향인 것들을 소개하고 또 그 취향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 큰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돈이 안되더라도' 평생 가지고 가고 싶었던, 나의 소중한 두 일이 조금씩 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전혀 즐겁지 않다.  독자가 한 명 한 명 늘어나던 즐거움은, 어느새 계속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힘이 나지 않아도, 힘이 되는 글을 쓰기 위해 어떤 사건에서 억지로 교훈을 끌어내려하고 있었다. 누워서 시간 가는 것 모르고 쓰던 글들을, 어느새 타이머를 맞춰 놓고 '오늘은 반드시 끝낸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었다. 가게도 그렇다.  아무 기대도 없던 가게에,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니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고 골머리를 앓는다. 조금씩 규모가 커지는 만큼, 내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 대신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방향이 흔들린다. 내 방식이 잘못되었는가 하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던 일들이 즐겁지 않다. 한 발 한 발 나아가던 즐거움은 '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변하고, 마음만큼 빨리 내디뎌지지 않는 발걸음에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쯤 되면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 이 일들.. 진짜 좋아하는 거 맞아? 




2. 낙타, 사자 그리고 어린이

니체의 책 - <짜라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에 '낙타, 사자, 어린이'의 세 가지 마음 상태에 대해서 나온다.   

낙타의 마음 상태는,  이것을 왜 하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끌려가듯 살아가는 상태이다. 

사자의 마음 상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의욕적으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상태이다.  이 마음 상태일 때 가장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 마음 상태가 건강하지 못할 때, 극도의 긴장되어 있고 자기 방어적이다. 

마지막이자, 니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음 상태가 바로 어린이의 마음 상태이다.  어린이의 눈으로 본 세상은 새로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세상이자,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는 세상이다.  일은 하나의 놀이이고 몰입의 대상이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 상태는 '사자와 어린아이' 그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와중에 만나는 작은 결과들에 마냥 행복하고 기쁜 어린아이의 단계와,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다'는 진취적인 사자의 마음.  니체는 어린아이의 상태가 가장 이상적인 마음 가짐이라 했지만,  좋아하는 일을 그저 취미로 남기지 않고 업으로 만들려면 사자와 어린아이 그 중간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일에 대한 설렘과 몰입은 잃지 안돼, 능동적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태도.  좋아하는 일을 '먹고사는 일'로 만들려면, 어디서 먹고살 길이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막연한 아이의 순수한 눈망울로는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스탠스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다.   왜냐면, 이 사자가 보기보다 성급하거든.  조금이라도 작은 해프닝이 있으면 불쑥 머리를 드밀어, 콱하고 아이를 물어 버린다.  그 순간에 나는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마주한다. '내가 즐겨하던 것들은 이런 것이 아닌데, ' 하고 슬피 우는 어린아이를 말이다.   얼마 전에도 그러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갑작스러운 성장세를 보이는 가게 소식에 기뻐했다가, 수 천명의 사람들 중 딱 한 명이 - 내 가게의 색이 다른 곳과 유사하다는 말을 하자마자 내 그간 모든 행보가 잘못된 방향이었나 싶어 세차게 흔들렸다.  이때다 싶어 나타난, 내 안의 병든 사자는 - 가게를 다잡을 여러 방안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빠르게 내 안에서 해답이 나오지 않으니,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다 끌어들여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 말도 안 되는 불안이 겨우 잠재워진 순간은, 나를 쫓던 것이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불안이 겨우 잠재워진 순간은,
나를 쫓던 것이 결국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내 안의 사자와, 아이를 겨우 어루 달랜 후에야 다시 그 아슬아슬하지만 즐거운 균형 잡기에 들어설 수 있었다. 아이와 사자의 경계를 지키는 줄타기 말이다. 



3.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아끼는 일

흔히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구분하라고 한다.  잘하는 일로 먹고살고, 좋아하는 일을 취미로 하라고.  그러다가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기까지 하면 잭팟 터진 것이라고 말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잘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제일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돈벌이랑 이어진 것은 아니다또, 즐겁게 일을 하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을 이기는 데는 생각보다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못 이긴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니까 - 잘한다고 먹고사는 것도 아니오, 즐긴다고 먹고사는 것도 아니올시오,  어디 노른자 땅에 토지를 몇백 평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먹고사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힘든 일이다.  ( 아, 물론 그들도 그들만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잘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한다던가,  열심히 잘하는 것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즐기는 일을 찾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하는 것은  조금 구시대적 조언이 아닌가 싶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건, 잘하는 일을 더욱 즐기고 싶은 사람이건 -  '다른 무언가'를 찾아라라는 조언보단 '어떻게'에 대한 경험이 간절하지 않을까 싶다. 또는, 정말 금전적으로 메디치식 지원을 해주던가! 


나 역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드는 법'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언제나 나를 끄집어내는 방법은 하나 있다.  바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마구 몰두하며 하다가도, 순간순간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조급한 것은 아닌지. 방향은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거리를 두는 것은, 몰입에 의해 중심이 흐트러지 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서있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여기,  '아끼는 일'도 있다.  애지중지, 나의 자식처럼 내 평생 가져가고 싶은 그런 일. 그 일들이 아끼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이 한 층 더 소중해졌을 때, 아끼는 일이 된다.  부모 자식 간에 아무리 트러블이 있어도, 내 자식을 쉽게 내팽개칠 수 없듯이 아끼는 일에 거리를 두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누군가가 내 자식에게 꾸지람을 주면, 아무리 그 말이 맞는 말이어도 상처가 되듯이 객관적인 조언도 듣기가 쉽지 않다. 


나는 종종, 내 글과 가게에 대해 자식과도 같다는 마음을 여긴다. 사실 이 마음은 참 소중해서, 아장아장 걷는 걸음에도 기쁘고 설렌다. 아끼는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아끼는 일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보는 설렘은 어느 기쁨과 쉽사리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끼는 일들은 거리를 두는 방법 대신 지속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는 것 같다.  아끼는 일을 업으로 만드는 것이 맞나?라는 근본적인 생각부터, 내가  이 일들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상황에 있는 것인지. 너무 빠르게 성장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말로만 아낀다 하고 그저 방임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오래오래 평생 하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단, 너무 오래 하면 산으로 가니- 적당히. 



4.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될 수 있을까

다시 처음의 명제로 돌아와 본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 대한 아직까지 나의 생각은.. '글쎄'이다.  수없이 많은 -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든 사람을 보았고, 또 업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취미로 남기는 사람들도 봤다.  수적인 우위로 따지면, 당연히 취미로 남기는 사람들을 더욱 많이 봤지만 수적인 데이터가 모든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내가 나 스스로 내린 작은 결론은 -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잘하는 것'도 아니요, '한없이 즐기는 마음'도 아니다. 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하기도 한, '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의 해답과 그에 의해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아닐까 싶다.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될 수 있을까. 

글쎄. 10년 후 에는 같은 제목과 함께 나만의 결론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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