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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Jan 19. 2021

찰박한 재능

좋게 말하면 다재 다능한 것이고, 안 좋게 이야기하면 빛 좋은 개살구 였다. 

음 그러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본업이 디자이너라고 이야기하면, 무슨 디자이너냐는 질문을 연달아 듣는데, 로고부터 인테리어 공사까지 직접 다하니 ‘그냥 디자이너입니다’ 라고 답변하곤 했다.  차라리 돈벌이에 관한 것이면,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게 장점이겠다. 그런데 사진에 글쓰기에 코딩에 영어회화까지 – 이 줏대 없는 다재다능함은 내 삽질의 기간 만큼 길게 늘어져 있다. 


누군가는 ‘우와’하고 감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재능의 깊이를 물웅덩이에 비유하자면, 울퉁불퉁한 아스팔트에 소나기가 내렸을 때 정도 아닐까. 발을 담그면 ‘찰박’하고 살짝 튀기는 정도. 

그렇게 내가 할 줄 안다고 얘기하는 것들의 깊이는 얕디얕다.  그나마 제일 깊은 것이 디자인 프로그램 다루는 것인데, 그마저도 대학에서 4년, 회사에서 3년을 억지로 써왔으니 그러한 것이지, 누군가의 강요가 없었다면 진작에 때려 쳤을 지 모르겠다. 




사실 처음부터 이래왔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내리 ‘미술 대학 진학’을 목표로 달려왔다. ‘Art is my life! (정말?)’을 외치며 장래희망란에는 디자이너를, 특기에는 언제나 ‘그림 그리기’ 를 적어 넣었다. 미술학원을 다닌 햇수가 있으니, 당연히 그림만큼은 무엇보다 자신 있었고, 원하던 대학으로의 진학은 내 유년시절의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내가 바랬던 것이 ‘대학 진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입학하고 두달 정도가 되었을 때 느꼈다.  조금 의미 없게 느껴졌던 수업 탓도 있겠지만, 어떤 작가의 작업을 함께 보며 감탄하는 몇몇 과 동기들과는 쉽사리 어울릴 수 없었다. 어떤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받은 과제를 얼른 끝내 버려야 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지금에서야 확실히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차라리 다른 과를 갔으면 어땠을 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무튼 내 관심은 온통 다른 곳에 가 있었는데, 20살에는 ‘옷’에 가있었다.  여느 스무살 새내기의 관심과는 사뭇 달랐다. 좋은 옷을 사 입을 돈은 당연히 없었지만, 해외의 브랜드들이 기획한 멋진 패션쇼와 컬렉션을 찾아보기를 즐겼다. 내가 직접 입는 것보다는, 내가 찾아본 멋진 사진들과 글을 기록하기를 좋아했고 그렇게 한동안 블로그 활동에 매진했었다. 나의 의지로 판 첫번째 웅덩이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진과 글에 관심이 생겼다. 입학선물로 받았던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다녔다.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가게와 브랜드들을 찾아가 허락을 구하고 그에 대한 글과 사진을 발행하기도 했다. 때마침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신혼 부부의 여행 스냅 사진을 찍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형편에 맞지 않는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렇게 나의 얕은 재능 중에 하나인 ‘사진’이 시작되었다.  파리에 있을 때는 정말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고 다녔는데, 아예 한 달 동안 세계 4대 패션쇼 라고 하는 뉴욕-밀라노-파리-런던의 패션위크를 취재하기 위해 여행을 하기도 했다. 오로지 인터넷에 나온 패션쇼 정보만으로 무작정 쇼장 앞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곤 했는데, 그 막무가내 정신 덕택에 여러 포토그래퍼들을 알게 되었다. 이들 모두 나처럼 ‘사진’에 대한 마음 하나로,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날라온 이들이었는데, 다만 이제는 그들은 패션쇼에 초대받는 멋진 프로들이 되어 있거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사진과 함께 성장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여전히 얕디얕은 사진이라는 재능을 간혹 일에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한동안 열심히 팠던 사진이라는 구멍은, 어느 순간 삽질에 불과하지 않게 되었다. 


왜 사진을 파지 않았냐면, 글쎄- 다른 관심사가 생겼기 때문 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한창 사진을 열심히 찍으며, 국내의 유명 잡지에 객원 기자로 까지 활동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돌연 다른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 때 꽂혔던 것은 ‘앱 개발’이었다. 과 동기 두 명과, 또래 개발자 두 명이 더 모여 앱을 개발하겠다고 난리 부르스를 쳤었다. 얼마전까지 내 근황을 ‘패션 사진을 찍고 있다’고 소개하다가, 돌연 ‘앱을 개발 중이다’라고 이야기하니 혼란스러워 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었다. 다만 아무도 내게 무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냐면 나는 매우 매우 어렸으니까. 그 때가 22살 쯤 되었던 것 같다.  사진에 취미를 가지고 조금 파보다가, 다른 것을 더 파보면 어때서. 그게 내 어린시절 변명이었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아마 그렇게 내 진로를 쭉 팠으면, UX 디자이너나 퍼블리셔 이런 직함을 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는 또 다른 관심사가 생겨 버렸다. 이즈음 대학을 졸업 했었는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하는 디자인 보다는 조금 더 ‘만질 수 있는’ 디자인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구와 오브제를 주로 디자인 하는 에이전시에 들어갔고, 회사에 있는 기간 동안 참 열심히 ‘손에 만져지는’ 무언가를 만들었다.  사실 애초에 전공이 ‘제품디자인’인지라, 학교만 잘 다녔어도 익숙했을 일들을, 졸업할 때나 되서야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해서 회사에 들어가서야 처음으로 ‘제품 디자인’을 제대로 하게 되었는데, 결국 3년을 회사에 다녔어도 ‘얄팍한’ 경험들만 남았을 뿐이다. 

그러고는, 퇴사를 하고 돌연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시작했다. 퇴사를 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했었는데, 이 때 집을 고치고 꾸미다 보니 자연스레 공간 디자인에 관심이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 둘 작은 공사 현장을 다니며 배우고, 내 발목까지도 잠기지 않을 얕은 구덩이를 또 파게 된 것이다. 




내 찰박한 재능 이야기의 큰 흐름은 이렇고, 사실 그 사이 사이에 수도 없이 많은 작은 관심사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갑자기 드라마를 보다가 꽂혀서 열심히 공부한 영어가 그렇고, 요즘은 또 잘 쓰지 못하고 있지만 한 때 열심히 썼던 글들이 그렇다. 이것도 나름의 재능과 자산이라면, 내 브랜드를 만들겠다며 조사해 둔 수많은 공장들 리스트도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이렇게 찰박한 내 재능우물들은 수년간에 걸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이것도 신기하다,’ ‘저것도 신기하네’ 하며 하나 둘 파기 시작했던 구멍이, 어느 날 보니 수도 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주변의 시선이 예전과 같지 않다. 20 후반에 들어서, 서른을 바라보는데도, 나의 수많은 구멍 중 그 깊이가 어느 하나 무릎 위로 올라오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애매한 재능은, 뭐 하나 확실하게 끊어내지 못하게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어른들은 송곳을 예시로 들었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송곳만이 무언가를 뚫는다고 말이다. 애매하게 얕은 나의 다재다능함은 아무것도 뚫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언가 한가지에 집중해야하지 않겠냐’는 그들의 말씀은, 되려 내 마음을 쿡 하고 찌를 뿐이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애매하고 찰박한 재능을 말이다. 


사진이건, 앱 개발이건, 제품디자인이건 그 순간순간에는 최선을 다한 결과는 조금 허무했다. 열정의 세기 만큼, 강하게 내리친 소나기는 흔적을 남겼지만 충분치 못했다. 물이 제대로 고이기에는 그 깊이가 너무 얕은 것이다. 20대에 치열하게 내 열정에 몰입한 결과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구멍 송송 뚫린 울퉁불퉁한 길 정도였다. 

어른들 말씀대로, 이제라도 무언가에 집중해야 할 때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찰박한 웅덩이들이  아무 쓸모가 없느냐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깊이는 얕을 지 언정, 조금씩 넓게 커지고 있다. 아래로 깊어지는 대신, 옆으로 옆으로 뻗어 나기로 한 웅덩이들은 마침내 서로의 끝에 다다르고 있으니까! 

사진에 대한 경험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맞닿으니, ‘나의 가게, 나의 소품샵’이라는 조금 더 커다란  웅덩이가 되었다.  여전히 발목을 적실 뿐이지만 그래도 내 스스로를 비춰볼 정도의 크기는 되었다. 

누군가를 흠뻑 적시게 할 정도의 웅덩이는 아니더라도, 내가 쌓아온 것들이 이만큼은 있구나 하고 돌아보게 하는 작은 연못 정도는 된 것이다. 



아래로 깊어지는 대신, 옆으로 뻗어 나기 시작한 웅덩이들은
마침내 서로의 끝에 조금씩 다다르고 있다


그리고 이 작은 연못들에는 순수한 몰입이 자아낸 재미난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 누군가는 ‘삽질’이었다 하고 쉽게 치부할 경험들도, 아무 쓸모 없게 된 이력들도 그 순간만큼은 설렘으로 무장했으니까 말이다.  옷이 좋아 사진을 시작하고, 사진이 좋아 세계 방방 곳곳 패션쇼를 누비었던 때처럼 – 지금 당장 내가 옷과 사진에 관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 당시의 이야기는 언제 꺼내놓아도 흥미롭다.  오로지 마음이 끌려 했던 나의 땅파기 놀이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 대신,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조금씩 맞닿으며 조금씩 커지는 이 우물들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저 땅파기 놀이었다고 치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순수한 마음은 언제고 즐겁게 꺼내볼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가지에 집중하라’라던가 ‘전문성을 길러라’등의 어른들의 조언은 살짝 귓등으로 흘려 듣고 싶다. 아주 조금만 더, 몇 년만 더 지금 당장 관심 가는 것들에 집중해보고 싶다. 나의 작은 구덩이들이 얼마나 더 넓어져서, 서로 어디까지 맞닿을 수 있을지 실험해보고 싶다. 여러 다른 관심사의 경계에서 나오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이야기 하고 싶다.  또 깊이가 아닌 많은 것을 포괄하는 넓이로 누군가를 흠뻑 적실 수는 없을까 . 


-찰박!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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