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지 Oct 28. 2020

내가 비만이라니

몸도 마음도 뒤룩뒤룩

믿거나 말거나. 

인생의 2/3은 마른 체형으로 살았다.  얼굴은 동그랬어도, 팔다리는 가느다란 '츄파춥스형'의 사람이었다. 반바지를 입을 때면 얄상한 다리 때문에 '아니 왜 이렇게 말랐니'라는 말을 꼭 들었고, 딱 붙는 폴라티를 입을 때면 우리 엄마는 '없어 보인다'며 차라리 헐렁한 옷을 입으라고 했다. 


큰 노력 없어도 몸매가 유지되던 어린 시절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던 탓일까.  지난 몇 년간 죄의식 없이 퍽퍽 빵에 발랐던 누텔라 때문일까.  이 세상에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아, 한 번씩 다 먹어보고 싶었던 나의 식탐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한 달에 15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운동 강습비를 핑계 댔던 게으른 나 자신일까. 

거진 3년 만에 해본 인바디 검사에서 '비만'이 나왔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비만. 체지방은 과다였고, 근육량은 부족했다. 최근 조금만 걸어도 헉헉 거리는 바람에, 운동을 해야겠다 결심했던 차였다. 그리고 몸으로나 어렴풋이 느꼈던 나의 건강상태는, 숫자와 단어들로 빼도 박도 못하게 증명되어 버렸다.  나는 비만이다.  




사실 살이 쪘다는 것을 못 느끼던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던 옷들이 몸에 맞지 않을 때 느꼈고, '살을 빼야겠다'며 습관적으로 하는 거짓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이던 가족들과 친구들도 있었다.  다만, 가끔씩 누군가가 찍어준 내 모습에 턱이 두 개인 것을 보아도 "껄껄껄, 웃기게 생겼다"며 지나치게 털털하게 넘어갔다.  큰 치수의 옷을 사고 넉넉해진 핏을 보며, '그래도 이 정도면 귀엽군'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좋게 이야기하면 나는 외모 자존감이 아주 높았다.  안 좋게 이야기하면, 나는 그냥 남들이 날 어떻게 보던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한 평생 이렇게 꾸미는 것에 관심 없이 살아왔던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보다 옷을 좋아했고, 화장을 좋아했으며, 매일 같이 귀걸이를 바꿔 끼고 한 달에 한 번씩은 머리색을 바꿨었다. 다만, 한두해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를 치장하는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것이 중요해졌다. 옷을 살 돈으로는 무언가를 배우거나 내 일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외출 준비를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하는 친구들을 보고는 자존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머리와 손톱에 몇십 만원씩 쓰는 이들을 보고는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점점, 꾸미는 것과 멀어졌고 내가 나를 가꾸지 않은 시간 동안 지방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나의 몸이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해준다.  하루에 몇 시간씩 걸어도 지치지 않았던 나인데, 고작 30분 정도 걸으니 숨이 차올랐다.  조금만 활동해도 그다음 날이 노곤해지고,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옷태가 나지 않았다. 그제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존감이 높다는 변명으로, 나 스스로를 방치해두었구나.  앞은 보고 주변은 둘러보지 않는 자세로, 나를 돌보지 않았구나 하고 말이다. 

내 배에 그득한 지방들은, 나를 방치해두었던 시간의 증표였다.  여전히 옷장 안에 자리 잡은 맞지 않는 옷들은, '뭣하러 꾸미냐'는 내 주장의 위선을 보여주었다.  


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사업으로 당당히 서겠다며 해야 할 일을 응당 해야 할 때는 짜증부터 더럭 났다. '언젠가는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움직이지 않은 때도 많았다. 

꿈을 열심히 좇는 친구들을 보고는 '욕심이 많다'라고 생각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는,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사냐며 내려놓으라고 조언해주곤 했다.  물론 지금도 애쓴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남을 위해 애쓰진 말고 나의 선택들을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위한 선택들을 위해서도 달리지 않았다.  내가 '높은 자존감'을 핑계로 등한시했던 내 몸처럼, '자유로운 꿈'을 핑계로 여러 책임에서 도망가 있었던 것이다. 


회사 다닐 적에 매일 같이 읽던 책들은 어디로 가고,  핸드폰을 붙잡고 있을 때가 많았다.  생각을 비우겠다는 핑계로 보기 시작한 TV는 정말로 나를 아무 생각 없이 만드는 바보상자였다.  나의 꿈엔 현실은 없고, 이상과 희망만 있었다. 현실을 위한 노력 없이 뒹굴대니, 그 시간은 도돌이표처럼 돌아와, 내 마음을 뒤룩뒤룩 찌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헬스장을 끊었고, 디톡스를 하고,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고 있다.  이제 겨우 2주 차이고, 살은 전혀 빠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내 몸을 돌보는 시간을 다시 가지게 되었다.  정말 맛없어, 너무 배고파를 외칠 때마다 나의 몸과 건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헬스장에서 헉헉 되며 운동을 할 때마다 나를 돌보지 않은 시간을 속죄(?)하고 있다.   운동하는 시간을 매일 갖기 위해, 조금 더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려 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난다. 


마음도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전문 서적을 읽을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신청했다. 자기 전에 그래도 글 한 편씩은 내가 관심 가는 분야의 전문지식에 대해 읽는다.  키득키득 대며 즐겨 보던 유튜브는 제쳐두고, 자기 계발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임을 신청했고, 나의 일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과 약속을 잡았다.  나의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사람들과 조금 더 연락하기도 했다.  마음을 운동시키니, 더 이상 나쁜 생각들이 내 마음에 비집고 들어올 시간은 없었다.  남들과의 비교, 불안, 스스로에 대한 불확신.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로 마음의 시간을 허비하기엔 내 마음이 해야 할 운동들이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운동 2주 차. 나는 여전히 비만이다.  아마 앞으로 몇 달간은 계속 비만일 것이다. 내가 몇 년에 걸쳐 방치해두었던 살들은 쉽사리 잡히지 않을 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달리는 기분에, 조금만 뛰어도 숨이 차는 듯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 좋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릴 때면, 나의 지방들이 타고 있는 것 같고 - 내 일을 위해 미팅 장소로 향할 때면, 나의 마음이 긍정적인 생각들로 한껏 씻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취향을 아는 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