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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지 Feb 14. 2021

누군가에게는 이상한 언니였다

손과 2년 전에 일본 여행을 갔을 때의 이야기다.  교토 가와라마치역에서 걸어서 15분. 구비구비 골목을 지나, 무작정 어떤 가게를 찾아 손을 이끌던 날이 기억난다.  

"아니 도대체 어디가는건데" 

한 30여분 정도 헤맨 후에야, 손의 볼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시선의 끝에 드디어 그 가게가 잡혔다. 간판 하나 없이 숨박꼭질 하듯 작게 숨어 있던 그 가게 말이다. 


내가 그토록 찾던 가게는 일러스트레이터 오하시 아유미씨가 운영하는 io+(이오플러스)였다. 임경선작가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에서 처음 그녀와 그녀의 가게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귀 밑으로 똑 떨어지는 단발에 동그란 안경 - 여든이 다되어가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감각적인 스타일링의 오하시 아유미씨는, 사실  1960년대부터 활발하게 활동하던 베테랑 일러스트레이터이다. 그런데 그녀를 일러스트레이터라고 정의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 등 당대의 유명한 작가들과 협업을 하면서도,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수십권의 에세이를 냈었다. 또 유명 잡지의 편집장으로 역임함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취재하여 <아르네>라는 계간지를 발행했고, 자신의 취향을 담은 편집샵 이오플러스를 운영하면서 50대 여성을 위한 패션, 잡화 브랜드까지 론칭했다.  

그녀의 수많은 재능들은 50년 넘게 줄기차게 빛나고 있었고, 여든이 다 되어 가는 나이에도 그녀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몰랐다. 임경선 작가의 표현 대로 그녀는 '오래오래 자신의 일을 해내가는 여자'이자,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녀에 대한 설명은 고작 반페이지 정도뿐이 책에 없었지만, 홀리듯이 가게를 찾아가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가파른 좁은 계단을 올라가던 순간은, 그 여행에서 가장 설레던 순간이었다. 어떤 물건이 있는지 보고싶다기 보단, 천천히 올라간 계단 끝에 오하시 아유미가 있기를 바랬다.  '일본어 공부 좀 해둘껄' 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고 싶다'는 마음까지.  물론 아쉽게도 그녀 대신 직원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공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다 보니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졌다. 그릇부터 옷, 악세서리와 책까지 무엇하나 통일성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갸우뚱함은 부정적인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다.  어우러지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어우러지고, 하나 하나 살펴볼 수록 이 가게의 주인장이 점점 더 궁금해질 뿐이었다. 

직원들이 행여 내 이야기를 알아들을까 걱정하며 벅찬 목소리로 손에게 이 얘기 저 얘기를 쏟아 내었다.  그녀가 무엇을 했고, 지금 이 가게는 어떤 가게이며, 이 물건과 이 물건을 소개하는 것이 나한테는 왜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그녀와 오래 알고지낸 사람인냥, 신이 나서 떠들던 내 이야기가 끝날 때즘 손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상하고 재밌는 할머니네 


결국 빈손으로 나왔지만 아유미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에코백을 몇 번을 들였다 놨다 했는지 모르겠다. 제품이 마음에 쏙 들어서라기 보다, 이토록 흥미로운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온 덕질에 가까운 구매충동이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역에 도다랐을 즘에야, 내 마음이 그토록 울렁이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울렁임에 가깝던 작은 속삭임이 내게 계속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저렇게 나이들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오래 하며,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 

이상하고 재미난 할머니로 나이들고 싶다' 







언제고 한번 고등학교 친구들과 꿈에 대해 이야기나눈 적이 있었다.  함께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당당하게 '디자이너요' 라고 외쳤던 친구들은, 이제는 더이상 직업을 꿈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한시간여 이어진 수다 끝에, 우리가 바라는 미래의 모습은 '이상하고 재미난 할머니'었다.  다만 각자가 상상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조금씩 달랐다. 

오양은 고양이에 둘러쌓인채,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이야기했다. 오양은 지금으로선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고, 식물을 키우지도 않는데 어찌됐건 그녀가 좋아하는 두가지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 졌다. 

이양은 만화책을 쌓아두고 동네의 아이들에게 전래동화 들려주듯 만화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녀가 지금도 잘 하고, 좋아하는 것이니 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나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들어가고 싶을까. 그리고 아유미씨의 작은 가게가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리고 조금은 수줍게 나의 작은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고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가게에서 누군가를 따스히 맞이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또 언제든지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런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것 같아 


이양과 오양은 나의 수줍은 고백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우리의 대화는 물음표만 잔뜩 남긴채 끝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그리는 모습의 할머니가 되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질문 말이다. 


이 질문에 가장 빠르게 답을 찾아가는 방법은, 실제로 그렇게 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롤모델이라는 표현은 낯간지럽지만, 그렇게 불릴법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약간의 궁금증이 해결되곤 했다. 

나에게는 아유미씨의 삶이 그러했다.  문득 '이렇게 해도 될까'라는 질문이 떠오를때, 그녀의 삶은 '괜찮아, 재밌게 나이들어가고 있어' 라고 다독여주곤 했다.   그녀의 삶을 다시 면밀히 들여다 보는 순간은 항상 나의 발자취에 물음표가 달리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매번 들여다볼 때마다 '어떻게'에 대한 답변보다는 '왜'에 대한 확신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나이들고 싶은지'에 대한 답은 매일 견고해지지만, '무엇을'해야하는지는 더욱 더 희미해져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론적으로 본 그녀의 삶은 내 스스로를 검열하는 높은 잣대가 되기도 했다.  자꾸 들여다볼수록, 내가 왜 그녀의 삶을 동경했는지가 잊혀져 가는 것이다.  그녀가 지금의 모습으로 나이들어간 이유를 그녀의 업적에서 자꾸만 찾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삽화를 그렸다는 사실, 그녀 역시 훌륭한 에세이를 써냈다는 이야기. 수만부가 팔린 그녀의 잡지를 보며 '지금처럼 해서 되겠어?' 라고 조급하게 되묻곤 했다.   그녀 삶에 묻어 있는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라, 수적인 지표로서 그 삶을 들여다볼 때 더이상 내 꿈은 이상하고 재미난 할머니가 아니었다.  '편집샵 사장'이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요, '잡지 발행인'이었다. 구구절절 묘사하던 재미난 할머니의 모습에서 형용사 없는 직업인으로서의 자화상만 남으니,  그것을  쫓는 나도 더이상 설레지 않았다. 재밌지 않았다. 






얼마전에 나의 작은 가게 <로스트앤파운드>를 운영하면서 크나큰 슬럼프가 온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최근 몇 주는, '이렇게 운영을 하면 되는구나'를 깨닳을 만큼 매출에 큰 성장이 있었던 시기었다. 팔로워도 크게 늘었고, 이제는 취미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사업의 모양새를 제법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슬럼프가 왔다.  일이 많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하기 싫은 마음'이 컸었다. 글 하나하나 올릴 때 마다 재미가 없었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듯 했다.  지금 이대로라면, 내가 그리던 따스하고 신기한 것들을 소개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문득 이때, 내가 목표하는 바에 대해 들여다본 것 같다. 이상하고 재미난 것을 소개하는 할머니에서, 어느 순간부터 어엿한 편집샵 사장님으로 나의 꿈이 틀어져 있었다. 어떻게 해야 매출이 늘어날지 고민하고, 나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잘 팔리는 물건'이 무엇인지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사업이나 커리어가 성장하는 방향으로 고민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전혀 아니다. 다만 나라는 사람은, 커리어의 성장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가치로 가득 채운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더 소중한 사람이었다.  또 애석하게도, 커리어의 성장과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을 함께 키워나갈 방법은 잘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고요히 내가 나이들어가고 싶은 모습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어주고, 그로 영감받은 작은 소품들을 소개하는 할머니.  이 모습 속에는 어엿한 편집샵 사장님도, 비즈니스 맨도 없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나의 불안함도 사라졌다. 다시 가게를 준비하는 일이 즐거워졌다. 



 

얼마전에 친한 동생을 만났다.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지금은 그토록 원하던 파리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멋진 동생이다.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며 앞으로 정진하는 그녀를 보면, 안나 윈투어나 밀라논나 장명숙씨가 생각난다.  몇 십년 후에 그녀는 그들처럼 자기 분야에서 멋지게 성장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각자가 바라는 모습을 향해 정진하고 있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데도, 우리 둘은 몇시간이고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나도 다른 서로의 삶이 신기하기도 했고, 또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각자의 영역에서 앞서나가고 있는 이들이 들으면 콧방귀를 낄 법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녀의 한 걸음 한걸음은 너무나 대단해보였다.  내 이야기가 부끄러워질 즈음, 그녀가 나직이 읖조렸다. 약간의 취기가 더 해진 탓도 있는 것 같은데 - 또렷이 들려왔다. 


"언니는 내가 아는 사람중에 제일 이상하고 재미난 사람이에요. "


이상하고 재밌다라. 어쩌면 내가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을 말해주는 그녀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괜한 호기심도 생겼다. 


"무엇이 그렇게 이상하고, 무엇이 그렇게 재미나니?"

"음, 자꾸 그렇게 희안한 길로 들어서는 것이 이상한데 또 그 길을 언니 방식대로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서 재미나요." 


더 이상의 질문은 괜히 서로 낯부끄러운 상황만 될듯하여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꾸 상상되는 흐뭇한 미래에 혼자 실실 웃기까지 했다.  내가 운영하는 작고 따뜻한 가게에 놀러오는, 멋진 그녀의 모습을 말이다.  아, 되도록 그녀가 디자인한 차를 타고 와서 이것저것 많이 사주면 더 좋겠다. 





때때로, 내가 살아가는 매일의 모습이 먼 미래의 모습과 괴리가 느껴질 때가 있다.  묵묵히 걷는 매일의 한 발자국이, 미래의 어느 지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런데 그런 나도,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고 재미난 언니다.  뜻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뜻대로 살고 있어 이상하고 재미난 언니인 것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노트북을 덮고 내가 할머니가 된 순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직은, 안타깝게도 아유미씨처럼 성공한 작가로서도, 편집샵의 주인으로서의 모습도 상상되지 않는다. 다만 그보다는 어찌 어찌 내 가게를 찾아오는 한 두명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중에 누군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라,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려 온 사람이다.  또 누군가는 희안한 경로로 내 이야기를 듣고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이다. 마치 내가 몇년전에 손을 이끌고 이오플러스로 향했던 그 날처럼 말이다. 

그리고 민망하고 행복한 상상은 힘들게 찾아온 어떤 손님이 나직이 중얼거리는 이야기로 끝난다. 


여기가 그, 이상하고 재밌는 할머니가 하는 가게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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