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도의 일이다.
아주 급하게 해외 휴가 일정을 잡았었다. 당장 3일 후에 출국하는 비행기를 끊었고, 매장에서는 한창 큰 팝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시즌이 아니면 나는 일 년 내내 쉴 수가 없었다. 영감도 채우고 조금 쉬고- 팝업이야 오픈해놨으니 나 없어도 돌아가고. 그때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친구도 큰 걱정은 아니었다. 시부모님이 하루에 한 번씩 놀아주러 오시기로 하셨었고, 내가 출근하는 시간에는 혼자 잘 놀았으니까.
근데 일어날 일은 꼭 일어나고 만다. 나와 남편의 여행 둘째 날, 집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우리는 급하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했다. 키우던 고양이는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 었고, 6일을 꼬박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결국 고양이 별로 떠났다.
장례를 치르며 감정을 충분히 쏟아냈던 남편과 달리, 나는 희한하게 처음에는 눈물도 나지 않고 담담했었다. 남편을 위로해야 하는 책임감인줄 알았는데 그게 이유가 아님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벽에 다급하게 남편을 깨웠다. 몇 시간에 걸쳐 너무나 또렷하게 내 이마 안 쪽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어떤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이유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꿈틀대는 촉각을 그대로 느끼면서 내 머리는 이 벌레의 이름을 “죄책감”으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 날,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내 증상을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환각과 환시, 환청처럼 내가 겪은 증상은 일종의 ‘환촉’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것저것 테스트를 한 후에는 꽤나 중증의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환촉 증상이 나타날 정도면 꽤나 심각한 상태라 약을 절대 거르지 말고, 자칫하면 조현병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도 해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반려묘의 죽음이 촉발제가 되었을 테지만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라며, 자신은 신경물질과 호르몬을 약으로 치료해 주는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이 모든 것의 깊은 원인은 내가 찾아야 할 것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잔뜩 약을 받아 들고 우울증 치료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깊은 원인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죄책감. 거기서부터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휴가를 가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애초에 고양이를 키우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머리로는 어쩔 수 없었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리고 회사에 복귀해서도 그 죄책감은 이어져갔다.
내가 갑자기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니 모두들 힘들어하는구나. 남편은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나를 챙기기 바쁘구나. 내가 남편에게 같이 사업을 하자고 꼬시지 않았더라면 나았을까. 내가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민폐만 끼치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끝도 없이 들었다.
다음 진료날이 되었을 때 나는 자랑스럽게(?) 의사 선생님께 ‘죄책감’이라는 키워드를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그런 마음을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한 시기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의 일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차근차근 하나씩 이야기했다.
- 일을 실제로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회사에 열정과 애정이 있는 직원을 ‘능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해고했을 때. 하지만 더 솔직한 이유는 나와 회사는 그 친구를 품을 만큼의 마음의 여유도, 금전적 여유도 없었다.
- 내가 내린 어떠한 결정이, 직원 모두를 고생시켰을 때. 그리고 그것이 또 대단한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때.
- 일 때문에 가족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못할 때.
- 동업관계인 남편의 꿈과 가능성을 내가 뺏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이유는 다양했지만, 몇 년을 묵은 이 죄책감이라는 단어 뒤에는 몇 가지 요인들이 더 뚜렷이 보였다.
의사 선생님은 ‘상담’이라는 행위 자체를 하는 것을 극히 꺼려하는 것 같았지만 내 이야기 말미에 조심스레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영지님이랑 같이 일하기로 결정한 남편도, 직원도 - 다 스스로 결정한 것이지 영지님이 등 떠민 것은 아니에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이상하지만 조금 더 이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때요? “
회사를 운영하면서 내가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내가 혼자 일을 할 때는 나에게만 영향을 끼쳤었다. 돈을 못 벌면 내가 굶으면 되고, 일이 많으면 내가 밤을 새우면 되었다. 그런데 인원이 늘고, 결정해야 하는 것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범주가 늘어나며 이제 나의 결정은 누군가의 밥벌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누군가의 몇 날 며칠을 뺏을 수 있었다. 그 부담감과 잘못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로는 내가 어디가 아픈지 알겠고. 약도 잘 먹고 있는데.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병원을 다니고 한 두 달이 지난 시점에는 약간의 대인기피증까지 와서 어떠한 개인 약속도 잡지 않았다. (실제로 24년도에는 정말로 출근 외에는 6개월 가까이 아무와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 번의 대화만에 나의 생각이 달라지며 확연하게 좋아졌던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 대화는 한 직원과의 대화 었다.
외근을 마치고 복귀하는 와중이었는데, 그 직원이 내게 괜찮냐고 물어봤다. 나의 말투나 그런 것들이 달라져서 걱정된다는 것이 요지 었다. (실제로 그 당시 약 부작용으로 말이 많이 어눌해졌었다.)
평소에도 나이 차이도 많이 안 나고, 친구처럼 지내던 친구라 솔직하게 상황을 공유했었다. 우울증이 왔고, 약을 먹고 있고, 우울증의 원인은 이런 것 같다 등등.
그 직원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표님은 우리를 그냥 톱늬바퀴의 부품이리고 여기세요. 그게 회사와 대표님과 우리를 위하는 길이에요.”
무언가 띵-했다. 평소에 복지 차원 등에서 회사에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제안하는 직원이었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대표님께 기대하고 원하는 건 강단 있게 우리를 이끌어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인 존중을 해주는 것. 그거면 충분하고 그거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 부작용이 심한 것 같으니 병원을 옮겨보는 것이 어떻냐는 조언도 해주었다.
두 번째 대화는 다른 대표님과의 대화 었다. 그 대표님은 나를 어떤 토크 자리에 소개를 하고자 하셨는데, 사실 sns에서 서로를 팔로우하고 있던 기간이 길었을 뿐- 실제로 대면한 적이 없었기에 나를 추천하셔도 될지 만나서 확인하기 위한 자리었다. 그런데 웬걸- 내 어눌한 말투를 변명하다 보니 구구절절 내 우울증 얘기를 다 털어놓았다. 반려묘가 세상을 떠난 이야기부터 대표로서의 죄책감까지.
처음 대면 하는 자리에서 TMI 대방출하는 나 보고, 당황스러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표님은 침착하게 조언을 해주셨다. 요지는 이러했다.
나의 스트레스와 힘듦의 원인은 면밀하게 따지면 죄책감이 아니다. 역할이 바뀌면서 생기는 문제다. 프리랜서에서 1인사업자로, 1인 사업자에서 직원을 둔 대표로 역할이 바뀌면서 내가 잘했던 것들이 아닌 낯선 것들을 하기 시작하는데, 낯설지만 으레 해야 하는 당연한 결정들을 해나가는 것이라고.
그 감정을 죄책감이라고 생각하면 부정적이고 대표로서 짊어지는 평생의 직업병 같지만, 내가 어서 익숙해져야 하는 감정이라고 이해하면 오히려 쉽다고 말이다.
나는 두 대화를 토대로 조금씩 내 생각과 행동을 바꿔봤다. 일단 단약을 시도했다. 병원에 이야기해 약을 바꿔보자 이야기했다.
직원들을 톱늬바퀴 부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는 손님들- 그러니까 내 곁에 있을 때 나는 최대한의 존중을 해주면 되는 이들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대표로서의 낯선 감정들에 조금 더 무뎌지기로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하고 가을이 왔을 때, 나는 다시 약 없이도 일상생활과 원활한 일이 가능한 사람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거기서 또 일 년이 지나니- 언제 내가 이런 우울증을 겪었는지 의아하다 싶다.
사실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쓸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주제도 우울하고, 읽는 이에 따라 누군가는 나의 경험이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결국 내가 이 우울증을 벗어나게 된 과정에 공감을 못할 테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내가 사업을 하면서 이 정도로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결국은 극복했었다는 것- 이 이야기를 남겨보고 싶었다.
그리고 훗날 또 언젠가 나의 마음이 많이 무너져 내렸을 때, 시간의 문제이지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나 스스로에게 이 글을 통해 생기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