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9
#1. 만삭
며칠 전의 일이다.
만삭의 배를 끌고 투자사 미팅을 다녀왔다. 그들은 나를 배려하여 한사코 온라인미팅으로 하자고 했으나 내가 거절했다. 여러 번의 경험 끝에 대면했을 때 회사의 혹은 내 매력(?)이 더 극대화된다는 것을 깨달았달까..
긴 긴 미팅 끝에- 투자사 대표님이 당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 쭉 가정주부로 살았는데 임신을 한 후에 장사를 결심했다는 이야기, 만삭으로 시장 바닥에서 사업을 일궈냈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가 되면 생기는 초인적인 힘’을 언급하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2. 임신 초기
시간을 거슬러.. 거의 10달 전..
충분히 계획했던 임신이었음에도 상당히 충격이었다. 일단 - 내 건강상의 이슈때문에 임신이 힘들 줄 알았는데 원큐(?)에 되어버린 것. 당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삼신할머니가 도와준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너무나 기뻐할 일인데 그도 그대로 난처했던 것이, 새로운 창고를 계약한 지 한 달, 매장을 확장 계약한 지 일주일이 딱 지난 시점이었다.
열심히 달릴 생각하고 약간 무리하여 확장했던 탓일까, 호르몬 변화 때문일까. 임신 초기는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제 사업 5년 차라고- 가끔 현금이 꼬여 통장에 돈이 한 푼도 없는 순간에도 덤덤한데 이번에는 아예 종류가 다른 불안함이었다.
올해 안에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나는 아마 이런 삶을 살겠지. 영준(남편)과 오순도순 작은 가게 하는 삶. 내가 크게 무리하지 않고 감당하는 선에서 사는 삶. 누군가는 충분히 부러워할만한 삶이지만 어떤 외부의 상황에 의해 선택하거나 스스로 합리화하는 결정은 하고 싶지 않았다. 상상이상으로 힘들었던 임신 초기의 입덧이 더더욱 그 불안감을 가중시켰던 것도 같다.
#3. 임신 중기
입덧이 조금 사라지고 난 어느 날 - 영준과 앞으로의 삶과 일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실 일방적으로 내가 이야기하고 영준이 들어준 대화 었는데 대화의 요지는 이러했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근데 나는 내 꿈과 야망의 크기도 크다”
“내가 아이에게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도 사업을 몰입하여 키우려면 사업을 일정 궤도 이상으로 올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임신을 했지만 열라 달릴 거다.”
영준은 아이를 가지고도 일을 충분히 많이 할 수 있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니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아라라고.. 머리로는 1000번 맞는 말인 것을 아는데 내 대답은 “넌 임신을 안 해봐서 몸의 변화가 얼마나 큰 지 몰라” 었다. 그리고 결국 긴 토론의 승자는 나었다. 정확히 하면 영준에게 나도 머리로는 다 아는 이성적인 조언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응원”을 받고 싶었다. 영준은 내 마음껏 달려보라라고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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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공식적으로 허락을 받고 나는 7월 한 달에만 40개 정도의 미팅을 가졌다. 투자, 영업, 새로운 인재의 영입 설득, 다른 대표님으로부터 조언, 회계 세무 등등.. 실무도 같이 하고 있는 작은 회사의 사장이다 보니 - 낮시간에 미팅하고 밤늦게까지 업무를 이어가는 나날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 자아도 수십 번 깨졌다 붙어졌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막 달리다 보니 아주 조금씩 답이 보일 것 같았다. 여러 조언들을 적용해 보고 나도 바뀌려고 하고 팀에도 적용시키는 것을 해보며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4. 올스탑
모두가 변화를 느끼던 3분기의 시작 - 아무 생각 없이 간 산부인과 정기검진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자궁경부길이 1.1cm.
참고로 그 당시에 내 주수에서는 2.5cm 밑으로만 떨어져도 입원을 하라고 권고를 받는데 1.1cm라니. 의사 선생님은 안 아팠냐고 했다. 아 지난주에 현장에서 사다리를 탈 때 허리가 심상치 않게 아팠는데..라고 조용히 읊조리고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아무튼 그때가 20몇주차었는데 혹여나 안 그래도 짧은 자궁경부길이가 더 짧아져 애기가 확 태어나기라도 하면 아이는 100% 인큐베이터 신세 었다.
그런데 이게 나을 방법이 별다른 게 없었다. 잘 먹고 잘 쉬기. 출근하지 말기. 아이쿠야. 엄청 달릴 거라고 허락까지 받아놓고 한창 드릉드릉하던 사람에게 쉬라뇨. 감금당한 첫 주는 그야말로 우울함 폭발이었다. 여기에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 하던 직원들은 내 부재에 극도로 불안감과 걱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 휴가가라며..) 아무튼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강제로 한 달을 묶여있으니 여러 변화가 생겼다. 첫째 주는 나도 불안하고 직원들도 불안하고 중간관리자급 직원들은 엄청 부담을 느끼고.. 그랬는데 둘째 주가 되니 “내가 없어도 돌아간다”라는 믿음이 서로 생겼다. 셋째 주가 되니 내가 가끔 사무실에 없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넷째 주가 되니 일주일에 몇 번씩 병원 가는 것이 모두에게 자연스럽게 되었다.
영준이 했던 이야기들이 비로소 마음으로 와닿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와 대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적응의 문제다’라는 이야기말이다.
#5 진짜 얼마 안 남은 출산을 앞두고..
내 자궁경부길이는 여전히 짧지만.. 이제는 주수에 비해 아주 살짝만 짧은 정도라 다시 조금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몸은 더 불편해져서 격한 태동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더 많다. 그렇지만 영준도 평생 느끼지 못할 뱃속의 꿈틀거림은 늘 “벅찬 기쁨”이라는 감정으로 마무리된다.
요즘은 잠이 안올때마다 여행리뷰 유튜브를 보는데 - 나를 그토록 불안하게 하고 또 달리게 만들던 내가 그리는 미래에 신기하게도 우리 아이의 모습도 함께 매일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다시 맨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최근 만난 대표님 외에도 7월에 만났던 여러 대표님들이 “임신 중의 초인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그 대표님들의 공통점은 모두 엄마라는 것.
내가 그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 것 같냐고 하면.. 음 글쎄 한 해 동안 회사는 잘 모르겠고, 나는 많이 성장한 것 같다고 답할 것 같다. 그리고 그 힘의 원천은 정말 온몸에 느껴지는 신체적 변화를 세포까지 느끼며 하게 되는 어떠한 방향으로든 결심들- 그리고 당장의 한 걸음이 아닌 아이와 함께할 최소 20년의 미래를 내다보는 결정들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해가 가기 전 우리는 드디어 첫 투자 유치를 해냈다. 사실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던 회사라 투자가 생존을 위한 필수는 아니었지만,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도전해보고 싶었던 영역들이 있었다. 여러 투자사들과 미팅 끝에 우리의 장기적인 비전을 지지하는 이들과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아마 내 만삭 퍼포먼스(?) +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내린 결정들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이제야 엄마로서도, 대표로서도 첫 발걸음을 뗀 느낌이다.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엄마로서- 그리고 우리 직원들에게도 듬직한 대표로서 계속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