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V good to go, sir!
이름모를 골목 3번째 가로등 아래,
그곳을 우리의 첫번째 야영지로 정했다. 밖에 피워둔 장작불은 그대로 둔 채 아침에 깔아뒀던 에어매트 위에 올라와 누우니 세상편한 호텔이 따로 없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링로드의 첫날밤은 유난히도 고요했다. 두사람의 온기가 침낭으로 전도되니 금방 졸음이 몰려왔고 때마침 화로에 피워둔 장작불은 자기 할일을 다 했는지 조용히 숯불이 되었고 쌓인 눈에 이내 꺼졌다.
'굿나잇~ 여봉~'
4:00 AM
코끝에 스며오는 한기에 눈을 떴다. 새벽기온은 영하 10도 쯤. 몸 구석구석 붙여놓은 핫팩으로 도움이 되었지만 코앞의 한기까지는 어떻게 해주지는 못했다. 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이 도로와 차 위에 까지 두껍께 쌓여 있었다. 어제 잠든게 10시 쯤이었으니 6시간은 잔셈. 해가 뜨려면 아직 5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해가 떠 있는 시간이 하루에 5시간채 안되니, 어두울때 이동하고 밝을때는 부지런히 사진이라도 찍어야 겠다.
"여봉~ 잘잤낭?"
"으응~ 잘잤지잉~"
부은눈을 부비며 아내가 일어났다.
"우리 가야할길이 멀어서 쪼금이라도 일찍 움직여야 되지 않겠나?"
항상 와이프는 캠핑을 가면 스타벅스 에스프레소를 보온병에 담아서 간다. 캠핑 둘쨋날 아침 숱향 가득한 뜨거운 물에 섞어먹는 에스프레소만큼 강렬한 감성도구는 경험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제 끓여서 보온병에 넣어둔 탄산수로 커피를 탔다. 에스프레소든 다방커피인들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영하10도의 아이슬란드 새벽에 침낭을 덮고 마시는 이 커피가 어떤여행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특별한 감성포인트다.
현재위치에서 요쿠살롱으로 찍어보니 대략 거리가 300킬로 남짓, 눈길임을 고려하면 5시간 이상을 달려야 한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거리를 단숨에 달려야 하지만 여기는 누구나 달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아니라 아이슬란드 링로드이다. 아무도 달리지 않은 소복히 눈이 쌓인길, 마치, 정설이 끝난 직후 첫 리프트를 타고 달리는 땡보딩 기분이다. 스키장에 가서도 하루에 두번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보딩.
아무도 달리지 않은 뽀얀 눈길위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과 무심히 떠있는 달이 보였다.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눈덮힌 산은 달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고 저 멀리서 스코가포스(Skogafoss)는 외로이 신비로운 빛을 반사시키며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5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요쿠살롱, 도착직전 제법 긴 강을 지나서 어느 공터에 주차를 하고 바로 화로에 장작불을 켰다. 엔진열로 데운 건조한 히터바람과 장직불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비교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와이프와 나는 한동안 불멍에 빠졌다가 허기에 못이겨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오늘 메뉴는 에그스크램블과 스팸구이와 누룽지. 듬성듬성 잘라놓은 스팸은 장작불 위에서 특유의 소금향으로 식욕을 자극했다. 이걸론 양을 채우지 못해 너구리를 한마리 더 몰고가기로 했다.
불멍 :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장작불 앞에서 본인도 모르게 혼이빠져 멍때리는 행위
지금 시간은 9시 반, 한국이었으면 벌써 해가 중천일텐데, 아직 새벽 5시 느낌이다. 그래도 아침이라고 사람들이 조금씩 움직인다. 5시간을 달리면서 한반도 못봤던 차들이 멀리서 줄지어 어디론가 달리고 있었다.
"투어 차들인가봐?"
근데 저 불빛들 방향이 화롯불에 스팸을 먹고 있은 우리쪽으로 꺽어서 돌진해왔다. 줄지어서!!
"응!??"
"왜......"
"헐! 여기 불피우면 안되나?"
"캠핑의 천국이라며??"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체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펠에는 이제막 너구리가 이제 그만 몰고가고 드시라고 외치고 있었고 줄지어 오는 헤드라이트는 점점 가까워졌다.
'어유 그 캠퍼들은 도데체 어디로 간거냐고??'
"철컥!"
하고 차 문이 열리고, 왁자지껄 관광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줄지어 온 차들 중에는 중국인 관광버스도 있었다. 알고보이 여기가 얼음 동굴투어 집결지. 여기서 불피우고 밥먹는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괜한 걱정했네;
서둘러 아침식사를 정리하고 대장처럼 보이는 가이드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이거 예약안했는데 우리도 조인할수 있어?"
대장가이드는 전혀 문제없는듯 조인하라고 했다. 결제도 카드로 가능하다고,
"홋?! 당연히 가야지~! 여봉~ 출발하자~!"
아침식사후 세안(화장솜과 물티슈로) 하고 있던 와이프를 서둘러 준비시켰다.
얼음동굴 투어는 내 키만한 바퀴의 승합차를 타고 출발했다. TV에서만 봐오던 몬스터트럭을 타고 얼음바위길을 헤쳐나갔다. 정말 운전해보고 싶어서, 'I Wanna Drive This car!' 라고 마음속으로 수백번 외치고 있었지만, 내가 가이드라도 이건 안해줄 것 같아서 그냥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듬성듬성 놓여있는 얼음덩이들이 아침햇살을 받아 수정처럼 빛나고 있었다. 처음보는 풍경인데 뭔가 데자부 처럼 낯이 익다. 그리고 귓가에는 가슴떨리는 그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SCV, good to go, sir!”
당장이라도 우클릭으로 미네랄을 캐고 싶다. 우클릭이 아니다. 나는 지금 덜컹거리며 미네랄 필드를 비껴서 커멘드센터로 돌아가는 시즈탱크 안에 있다. 미네랄 뒤에 숨어있던 다크템플러가 소리도 없이 나타나 워프블레이드를 휘두를것 같고 저 멀리서는 스피드업한 질럿이 달려오고 있다. 이럴때가 아니다 당장 시즈모드로 전환해서 원거리 타격부터 해야한다.
"오빠!"
라고 부르는 와이프 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오니 벌써 얼음으로된 평원에 도착해있었다.
온통 얼음으로 뒤덮힌 인터스텔라에서 보았던 만 박사의 행성 그 풍경 그대로다. 추위보다는 그 주위의 풍경에 압도당해 불멍아닌 얼음멍을 시연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조인한 가이드 투어에 주위 관광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처음보는 지형에 들뜬 표정이었다. 영국인, 미국인들 여럿 조였지만 어디나 중국, 대만에서 온 관광객도 여럿 보였다. 어딜가나 우리같은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
대장가이드의 지시대로 빨간 헬멧을 쓰고 아이젠도 착용했다. 이젠 또 새로운 세계로 빨려들어간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