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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영 Mar 20. 2024

있나요 생 트러플 냄새에 질려본 적

주방 막내 고군분투기

이탈리아 사람들이 가을에 가장 많이 찾는 요리 몇 가지를 꼽자면 단연코 첫째는 트러플, 둘째는 아티초크, 셋째는 밤 일 것이다.

난 이탈리아에서 첫 가을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생 트러플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 이전에 한국에서 경험한 트러플은 가히 '가짜 트러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작 트러플 향만 조금 입힌 오일스프레이나 몇 번 써봤던 나였다.


여느 때와 같던 저녁 즈음에 갑자기 주방이 소란스러워졌던 날이 있었다. 누군가 싸우거나 하는 안 좋은 소란이 아니라 설렘과 기대로 가득찬 소란스러움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코 끝에 아주 강하게 어떤 향이 훅 들어왔다. 생(生) 화이트 트러플이었다.


화이트 트러플


태어나 처음 생 트러플을 마주하고 있자니 트러플 향이 너무나 우아하고 묵직해 황홀할 지경이었다. 트러플이 뭔지도 몰랐던 대학생 때의 난, 트러플이 초콜릿 이름인 줄 알았다고 이제는 고백할 수 있다. 트러플 모양으로 만든 초콜릿을 트러플이라고 이름 붙여 팔지않았던가.

주방의 모두와 홀의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들어 트러플 향에 흠뻑 취해 있었다. 트러플은 매년 시세가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2018년 기준 100g에 740유로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트러플에도 아주 많은 종류가 있겠지만, 내가 살던 아스티는 화이트 트러플로 아주 유명한 Alba 의 옆 동네 였기 때문에 훨씬 더 쉽고 저렴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트러플을 가져다 주는 도매업자 아저씨의 특이한 복장도 아직 생생하다. 은하철도 999에나 나올법한 망토, 카우보이가 쓸 것 같은 모자, 가죽 바지, 종아리까지 오는 부츠를 신고있었다. 기절할 것 같이 황홀한 트러플 향과 아직 생경하게 들리는 이탈리아어와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아저씨가 삼위일체를 이뤄 내가 지금 꿈 속에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때는 아직 몰랐다. 트러플 관리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트러플 손질이 얼마나 어려운지.




트러플은 고유 향이 금방 날아갈 수 있는 아주 예민한 버섯이기 때문에 60도 이상의 고온 가열은 하지 않는다. 잘게 다져 소스로 만들기도 하지만, 트러플 향을 최상의 버전으로 음미하는 방법은 요리 위에 마무리로 트러플 전용 채칼로 아주 얇게 밀어 요리와 함께 먹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난 매 서비스 시간 전 마다 트러플을 들고 씨름을 해야했다. 트러플에 묻은 모든 흙을 아주 조심히 털고 닦아야했다. 흐르는 물을 아주 살짝씩 묻혀가며 닦기도 하고 아주 작은 솔로 살살 긁기도 하고 휴지로 털어내기도 했지만 사람이 먹을 정도로 깨끗이 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살면서 트러플을 처음 본 애가 뭘 알겠냐구!

하도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뒷 목이 아프고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 두 계절을 매일 하다보니 결국 어느 순간엔가 트러플 향이 아주 역하게 느껴지는 날이 왔다.

'트러플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린거면 억울하지나 않지!'


트러플로부터의 고통은 봄이 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여름이 되니 이번엔 블랙트러플이 제철이란다.




그렇게 매일 시간을 보내고 나서 귀국 후에도 여전히 난 트러플이 들어가는 메뉴는 괜히 피하곤 한다.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먹는 것이야 괜찮지만. 사람의 기억력에 후각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이 정말인 것 같다. 트러플 향을 맡을 때마다 내 뒷 목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 또 나처럼 매일 트러플 손질하느라 고생할 어디선가의 어느 어떤이에 대한 괜한 짠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트러플을 나쁘게만 기억하는 건 아니다.

트러플 닦다가 트러플 향에 완전히 질려버렸지만 수셰프 마리오가 너희도 트러플 맛은 봐야한다며 정신없는 마감시간에 스크램블드 에그에 생 트러플을 무심히 툭툭 뿌려주었던 그 접시는 절대 잊지 못 하겠다. 마리오는 마법을 부린 것 같았다. 평범한 스크램블드 에그가 완전히 다른 요리가 되어있었다. 생크림과 계란의 부드러운 식감 끝에 우아한 트러플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어쩌면 그건 그저 한 접시일 뿐이 아니라 그가 내게 나누는 동료애 였을 수 도, 타국살이 하는 외국인에게 선사하는 따스함이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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