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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Mar 06. 2016

엄마...이야기

베트남에  살며 적는 일상 이야기 

"엄마~"

어릴 적 새끼가 숨을 쉬듯 '엄마'라고 불렀었던 기억, '엄마'의 사랑스러운 음성에 대한 기억이 가뭇하다. 그리고 어느 새 늙어계신 그 '엄마'에게 '엄마'라고 불러볼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다.


엄마들은 대부분 한결같은 모성애를 갖는다. 

군입대를 앞둔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안쓰러움과 한동안 못 보게 될 생각에 먹먹한 가슴앓이를 한다. 

나이 사십이 넘어 장가도 못 간 채 자기정신 없이 깊은 정신병실에 갇힌 아들을 둔 엄마는 이제는 점점 희미해지는 기력과 함께 주저앉을 만큼의 절망감에 쌓인 채 늙은 하루를 보낸다. 

아직도 검은 물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는 아이의 그 숨 못 쉬었을 생각에 가슴을 저이며 엄마 역시 그 숨 못 쉼에 혼미해진다.

...



낯선 것에 대한 동경과 여러 볼거리들로 여행자들을 이끌던 이 곳도 아이의 군 입대 전 얼굴 한번 비칠 요량으로 날아와 같이 구석구석 돌아다닌 이후부터는 여행자로서 느끼며 다녔던 아비의 감흥은 사라진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거리로 변해버렸다.



부모는 자식에 대한 정성과 그리움으로 사는가.

법륜스님은 스무 살이 넘는 자식에게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자식의 성장에 도움을 주지 못하니 방치하는 것만 못하다 하셨다. 모든 미물들과 마찬가지로 성체가 되면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연스러운 성체로 독립하므로. 그런데 인간의 어미가 갖는 자식사랑이 동물들의 그것보다 숭고하거나 오지랖이 넓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유가 있다.

인류 농경사회에는 마치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사냥법을 가르치듯 자연을 배우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인류 집단은 자연이 아닌 인류 자신과의 먹이 싸움의 틈바구니에 있다. 인간만큼 의. 식. 주에 직접작업에 참여하는 비중이 적은 종족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인류의 적자생존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복잡한 엄마의 유전이 시작되고 우리는 어릴 적 사랑스러운 엄마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모성 아닌 다른 형태의 것들로 변색된 엄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권력과 돈이 있는 엄마'

는 권력시스템을 통해 '금수저 유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드러나지 않는 권력이나 제도권 내에서의 각종 '음서제'의 형태는 과거부터 실시간으로 모든 팩트들이 모니터링되는 지금의 세상에까지도 스스럼없이 자행되어 그들의 '유전'을 도모하여 왔다.일류 학벌의 출세패스가 유리한 유전이 되도록 사회가 만들어지고 '자본가 엄마'는 노른자위 개인과외로 복종자 엄마의 유전을 저만치 멀리 따돌린다. 



문제는

우리의 '권력과 돈에 소외된 대부분의 엄마'들이 어떻게든 좋은 유전의 자리를 꾀차게 만들 권력의 루트를 만들거나, 엥겔지수가 빈천하리만큼 아빠 월급을 학원비로 쏟아 붇거나, 무르익지도 않은 아이를 KPOP대열에 끼어 넣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소위 모든 엄마들이 참가하는 참피온십 유전 토너먼트전에서 허망하게 루저가 되고 결국은 원치 않던 '자기복제 유전'을 대물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엄마'를 잃고 세파에 늙어버린 엄마의 모습만 보게 된다



다시... 엄마~.

엄마가 주는 한결같은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의 연장선에 그 무엇들이 있건 없건간에 자식의 삶은 이어진다. 이 세상은 아마도 그 복잡하거나 살아본 선배들만이 알 수 있는 인생살이의 방법이 있어서 어쩌면 부모, 엄마의 관심과 지혜가 늦은 나이까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면으로 보면 법륜스님의 말씀이 백 프로 옳다고 얘기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의 인생인가

조급하고 맹목의 군중심리에 휩쓸려 결국 허망하게 늙어버린 엄마의 기억보다는 마냥 사랑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도 엄마 자신에게도 행복한 기억의 모습이 아닐까. 작금의 우리는 누구든 루저가 되는 토너먼트전에 자기 선수를 참가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엄마의 나 자신은 과연 그 옛적의 '엄마'의 모성성을 아직 갖고 있는지...  


누구나 마찬가지 듯 자신 앞에 펼쳐질 삶의 기록은 정해져있지 않다. 아이들이 살아가며 겪게 될 삶의 굴곡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티 없고 꿈만 많은 아이들에게.



2015년

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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