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 에티카 4부 전반부 강독
<4부 강독 – 정리 1~18>
<정리>
정리 1 : 표상 vs 현존
-> 표상 = 나의 주관적인 관념 / 현존 = 객관적인 사실.
-> 달의 크기가 엄청나게 크다고 하더라도 나의 눈에 보이는 크기는 작음. 나의 표상과 현존은 동일하지 않음.
-> 그러나 내가 현존을 파악했다고 하더라도 (달의 크기가 엄청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더라도) 여전히 나의 표상은 그대로임(내가 보는 달의 크기는 여전히 작음).
-> 이를 통해 인간의 표상은 제거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음.
2. 정리 2 : 수동적인 인간
-> 인간은 다른 사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음. (인간의 수동성)
->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을 이해해줄 매개체가 필요.
-> 스피노자는 그것을 공동체라고 이야기하는 듯 함.
3. 정리 3 : 영향받는 인간
->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외적기제들(외부 원인들)은 무수히 많기 때문에 인간은 영향을 받음.
4. 정리 4 : 자연속의 인간
-> 인간은 필연적으로 수동에 예속, 자연의 공통질서 속에 존재함.
5. 정리 5 : 정념의 수동성
-> 우리의 정념은 외부원인의 역량에 의해 규정됨.
6. 정리 6 : 정념의 힘
-> 정념의 힘이 인간의 역량을 능가할 수 있음.
7. 정리 7 : 감정의 억제 및 제거
-> 감정의 억제 및 제거는 오직 더 크고 상반되는 감정에 의해서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 즉, 감정을 없애거나 줄이려면, 또 다른 외부 원인이 필요하다. 하나의 감정은 스스로 없어지지 못한다.
->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스스로 감정을 없애거나 줄일 수 없다.
8. 정리 8 : 선과악의 주관성
-> 선과 악은 주관적이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일 뿐이다.
-> 그렇기 떄문에 각 인간들의 선과 악은 다 다르다.
9. 정리 9~10 : 시공간과 표상의 힘
-> 시간적으로 현재에 가까울수록, 장소적으로 나와 더욱 가까울수록 그것을 표상하는 힘은 강력해진다.
-> 표상은 인간의 감정을 자아낸다.
->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시간적으로 현재에 가까운, 장소적으로 가까운 외부 원인에 의해 더욱 감정의 영향을 받는다.
10. 정리 11~13 : 우연과 필연, 그리고 감정의 힘
-> 필연적이라고 표상하는 사물에 대한 감정은 필연적이지 않다고 표상하는 사물에 대한 감정보다 격렬하다.
11. 정리 14 : 참된 인식과 감정의 억제
->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인식을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나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인식이 감정으로 간주되는 한에서는 억제되어야 할 감정보다 더 강할 경우 그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
12. 정리 15 : 참된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욕망 vs 수동적 감정들로부터 생기는 욕망
-> 참된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욕망보다 수동적 감정들로부터 생기는 욕망이 더욱 강하다. 그러므로 전자의 욕망이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있다.
13. 정리 16~17 : 정리 15로부터 나오는 인간의 한계
-> 참된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욕망은 쉽사리 쉽사리 수동적 감정들로부터 생기는 욕망들로 인해 억제된다.
14. 정리 18 : 이성과 덕, 그리고 자기보존과 공동체
-> 스피노자가 말하는 덕과 이성은 철저히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 활동하는 것 뿐이다. 현대의 이성과는 그 개념이 다르다.
-> 스피노자는 자신의 본성, 자기보존의 법칙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 이성적이며,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2부 요청 4로부터 우리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많은 외부 사물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같은 본성을 가진 사물이 그 존재를 보존하는데 가장 좋다.
->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필요성을 스피노자는 역설한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 & 논의하면 좋을 것 같은 부분>
정의 4. “가능적인 것” : 우리가 사물이 산출되는 원인만을 따져 볼 때, 그것을 산출하게 만드는 원인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개별 사물.
-> 이게 무슨말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2. 정리 4. “자신이 적합한 원인이 되는 변화 이외의 다른 변화”
-> 자신이 적합한 원인이 되는 변화는 무엇이 있는가?
3. 정리 11~13 : “필연적이라고 표상하는 사물에 대한 감정이 우연적이라고 표상하는 사물에 대한 감정보다 격렬하다.”
->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오히려 우연적이라고 표상하는 사물에 대한 감정이 더욱 격렬하지 않은가? 예컨대, 행운, 불행이라고 여겨지는 우연적인 사건들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더욱 강력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4. 정리 14 : “선과 악에 대한 참된 인식을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나의 감정을 억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인식이 감정으로 간주되는 한에서는 억제되어야 할 감정보다 더 강할 경우 그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
-> 참된 인식이 감정으로 간되는 경우는 어떠한 경우인가? 또한, 참된 인식이 그 자체만으로 감정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면, 인간이 탐구하는 진리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5. 정리 15 : “참된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욕망보다 수동적 감정들로부터 생기는 욕망이 더욱 강하다. 그러므로 전자의 욕망이 억제되거나 제거될 수 있다.”
-> 참된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욕망이 수동적 감정들로부터 생기는 욕망에 비해 더욱 강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나?
6. 정리 18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은 슬픔의 감정에 의해 줄어들거나 억제된다. 또한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의 힘은 인간의 역량과 외부 원인의 힘이 합쳐져 규정되어야 하는 반면,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의 힘은 오로지 인간의 역량만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 이해가 잘 안된다.
<정리 18에 대한 질문과 반박>
정리 18 : 이성과 덕, 그리고 자기보존과 공동체
-> 스피노자가 말하는 덕과 이성은 철저히 자기 본성의 법칙에 따라 활동하는 것 뿐이다. 현대의 이성과는 그 개념이 다르다.
-> 스피노자는 자신의 본성, 자기보존의 법칙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 이성적이며,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나 2부 요청 4로부터 우리 존재를 보존하기 위해서 많은 외부 사물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같은 본성을 가진 사물이 그 존재를 보존하는데 가장 좋다.
->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필요성을 스피노자는 역설한다.
Q. 스피노자가 말하는 인간의 자기보존의 방식은 무엇이 있는가?
Q. 스피노자가 말하는 공통된 이익이란 무엇인가? 공통된 이익이 존재하는게 가능한가?
Q. 인간이 자기보존을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남을 짓밟아야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특히나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과연 자기보존과 공동체는 동시에 성립 가능한 개념인가?
Q. 스피노자가 말하는 이성과 덕은 철저히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기보존을 실천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매우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덕과 이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이성에 따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욕망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자신을 위해서 욕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따라 나온다.”라고 주장한다. 왜 이성에 따라 행동할 경우 타인을 위해 욕망하게 되는 것인가?
Q. 내가 생각하기에 스피노자가 말하는 이성적인 인간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그들이 물리적으로만 모여서 공동체를 구성한다면, 그 공동체는 홉스가 말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기보존의 추구가 이성과 덕을 향한 길이라는 것에는 찬성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것도 동의한다. 즉, 스피노자의 전반적인 이야기에는 동의한다.
이성적인 인간들 -> 공동체 결성 -> 공통된 이익 추구
스피노자는 위와 같이 정리 18에서 이야기하였다. 나 역시 해당 논지에는 동의하나, 내가 생각하기에 스피노자가 놓친 부분이 있다.
이성적인 인간들 -> ?(1) -> 공동체 결성 -> ?(2) -> 공통된 이익 추구
위와 같이 이상적인 인간들이 모여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가 되지 않으려면 “?(1)”을 잘 해야 하고, 공동체를 결성하고 그 공동체가 공통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2)”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즉, 내가 생각하기에 이성적인 인간들이 그냥 모여서 공동체를 결성한다고 공통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1)”과 “?(2)”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