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STORY가 그야말로 대세 중 대세이다.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까지 전세계인들이 K-STORY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다. 필자가 어릴 때만해도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려 볼 수 있는 ‘주말의 명화’는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였다. 대학 때는 ‘러브레터’와 같은 일본영화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받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세계 시청률 1위를 하고, 몇 년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지난 봄, 애플TV+에서 무려 100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제작한 드라마 ‘파친코’를 공개했다. 이 드라마는 단번에 OTT시장에서 독주하던 넷플릭스를 밀어내고 OTT 콘텐츠부문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파친코’는 한국인 조차 좋아하지 않는 암울한 일제강점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일제강점기는 암울하고 아프고 억울한, 그래서 한국인조차 직면하기 힘든 역사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많지도 않고 인기를 끄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런데 ‘왜 전세계 사람들은 ‘파친코’에 열광할까?’
한국의 역사에 대해 모르는 그들에게 어떤 부분이 공감을 이끌어냈을까?
영화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 같은 이야기는 전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빈부격차, 사회불평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파친코’는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다. 과거 일제강점기 식민지민으로 살면서 겪은 한국인들의 고난과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애써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공감을 일으키기 위한 장치를 만들지도 않았다.
디즈니플러스의 새로운 히어로 TV시리즈 ‘미즈 마블’은 ‘캡틴 마블’의 열렬한 팬이자 히어로를 꿈꾸는 16살 카말라가 숨겨져 있던 폭발적인 힘을 얻게 되며 MCU(마블 코믹스의 가상세계관)의 새로운 미래를 이끌어갈 슈퍼 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이다. 기본 스토리구조는 마블 코믹스의 여느 히어로물과 비슷하지만, 주인공과 공간적 배경으로 미국에 사는 무슬림 가정을 다룬다는 것에 큰 차이가 있다. ‘미즈 마블’은 생소한 무슬림의 문화가 배경이 되고 인도-파키스탄의 역사 분쟁 문제도 다루고 있다. 비록 마블 시리즈 치고 높은 시청률은 아니었지만, 미국중심-백인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에 관심을 갖고 다루었다는 점에서 평론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중심 -백인중심의 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적 접근을 하고자 한 디즈니의 시도는 ‘미즈 마블’이 최초는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개봉한 애니메이션들을 살펴보면 (‘모아나’, ‘엔칸토:마법의 세계’,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코코’, ‘루카’ 등) 디즈니의 다양한 시도를 알 수 있다. 디즈니의 역대 가장 큰 흥행작인 ‘겨울왕국’ 역시 북유럽의 문화를 기본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서유럽 백인중심의 문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표준을 정하고 그것에 맞추거나,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살아왔다. 특히 1,2차 세계대전 후 패권국이 된 미국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는 전세계가 지향하는 이상향이 되었다. 미국에서 시작되는 것들은 곧 전세계의 표준이 되었고, 이는 마치 공장에서 규격화된 제품을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생산해내는 것과 같았다.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과도 같이 움직였다. 그렇게 70여년 동안 세계는 아주 효율적으로 20세기 초 겪었던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눈부신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이 존재하듯 그 이면에는 개인, 소수의 가치와 문화가 존중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존재했다.
지금은 김난도 교수가 ‘트렌트 코리아 2022’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나노사회’이다. 개개인의 가치와 개별성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느덧 사회는 표준을 지양하고 새로움과 다름을 추구한다. 디즈니가 더이상 하얀 피부에 금발머리를 한 공주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1)지금 왜 ‘창의성’인가?
세계 표준이 되었던 ‘미국을 누가 더 빨리 따라가느냐’가 국가 경쟁력이 되었던 시대. 우리나라는 그동안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er)였고, 이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했으며 마침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그리고 더 이상 세상은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er)를 원하지 않는다. 이제 세상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요구한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필요조건이 바로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찾아내거나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들을 새롭게 조합해 내는 것과 연관된 정신적이고 사회적인 과정이다. <출처: 위키백과>
우리나라 교육에서 본격적으로 ‘창의성’이란 단어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제7차 교육과정(1997적용)부터이다. 이후 지금까지 ‘국가수준교육과정’에서 ‘창의성’이 언급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약 30년 전(교육과정을 준비하는 시기포함)부터 교육에서는 계속 창의적 인재 육성에 대한 필요성이 언급되었고, 미래사회를 위한 준비로 창의성을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미래사회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왜 ‘창의성’이 그토록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까? 이에 대한 가장 쉽고 간단한 답변이 ‘열두 발자국’의 저자인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가 자신의 책에서 정리한 ‘지능’과 ‘창의성’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 아닐까 싶다.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이고, 창의성은 지식과 절차를 모를 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열두 발자국, 정재승>
흔히들 미래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한다. 지금까지의 시대는 그래도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했고 미리 필요한 능력과 기능을 습득하여 대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너무도 급변하기 때문에 공고히 다져진 지식습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지식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문제상황, 누구도 겪어보지 않은 문제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안내된 ‘지식과 절차’가 없어도 자신이 가지고 있거나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연결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창의성’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창의성 이렇게 하면 길러집니다’
이렇게 요리 비법서처럼 명확한 안내서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 어떤 학자도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남과 다른 각도로 문제 바라보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들을 연결해보는 모험심이 필요하다. 또한 실패에 대한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연결할 수 있는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열두 발자국>의 저자 정재승 박사는 저서에서 아래와 같이 조언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아무리 논의해봤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잘 안 나오는 겁니다. 나와 다른 경험을 한 사람, 나와 다른 분야에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 나와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사람들과 지적인 대화를 즐기세요. <열두 발자국, 정재승>
즉,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요즘 K-STORY가 주목받고, 디즈니가 달라진 진짜 이유가 아닐까?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말처럼
창의성이란 결국 아이의 가장 ‘자기다움’이 긍정적으로 발현된 모습이 아닐까?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각 색깔마다 가지고 있는 특별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런데 욕심을 부리고 이 모든 색을 한꺼번에 칠해버리면 도화지는 금새 까맣게 된다. 우리 아이들 각각이 고유한 색깔로 빛날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보고, 더 빛날 수 있도록 적기에 살짝 건드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다행히 지금은 개인의 고유성과 개별성이 충분히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시대이다.
개별성이 곧 창의성인 시대,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
아이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못하는 것을 채우기보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아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칼날을 더 날카롭게 갈아 요긴하게 쓰일 곳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참고자료:도서「 열두 발자국」 (저자:정재승/어크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