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셩 Nov 04. 2020

아무튼, 새벽

새벽에 몹시 일어나고픈 자의 몸부림


-

새벽.

나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멀어진 단어이자 시간이다.


올해 여름 어느날 갑자기

새벽에 일어나야겠다! 다짐하고

미라클 모닝을 외친 지 몇 달 째.


정말 미라클 모닝을 실현한 적은 고백컨대

없다.


처음엔 나의 미라클모닝 운동에 심각하게 동조해주던 엄마도

"미라크을~ 모오닝~" 하고 놀리며 나를 대충 깨운다.

잔소리도 없는 거 보니 기대조차 하지 않는 눈치다.


겨울의 네 절기만 남긴 이 시점이 되니

일어나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마치 내가 곰이 된 것 마냥 따수운 이불 속에서 나오기가 싫다. (출근도 싫다.)

그와중에 고양이가 한 녀석이라도 내 침대에 올라와

자기 엉덩이를 내 옆구리에 착 붙이기라도 하면 변명거리는 완벽하게 완성되어

나는 녀석을 끌어안고 마저 못 잔 (어쩌면 자지 않아도 되는) 잠을 청하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나의 미라클 모닝은 과연 올까.



-

처음부터 새벽잠이 많았던 건 아니다.

나에게도 새벽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가장 먼저 교실문을 열었던 건 나였다.


코끝을 시원하게 뚫고 들어오는 새벽공기를 맡으며

여섯시 반에 교실문을 열었던 나였다. (왜 그랬지?)


책을 보든, 영어노래로 영단어 공부를 하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싶었나보다.


어둑했던 하늘을 햇살이 가르고

창문을 뚫고 들어온 빛이 교실 안을 가볍게 덥히기 시작하면

하나 둘 친구들이 등교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성스러운 아침시간도 마무리가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그 시간만큼은 오래동안 간직하고 싶어

가끔은 일찍 오는 친구들에 아쉬워했던 기억도 난다.


난 자타공인 명백한 '새벽형 인간'이었다.



-

그런 내가 어느 순간부터

새벽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니, 새벽의 의미가 달라졌다고나 할까.


대학교에 들어가고서부터 나에게 새벽은

하루가 아쉬워 버티다 버티다 맞이하는 마지노선 같은 것.

새벽까지 놀다 아침이라 하긴 애매한 시간에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가

잠시 잠을 청하고 해가 중천에 뜨기 전 또다시 집을 나선 게 몇 번인지.


하루를 시작하기 전 나를 고요히 단장할 수 있던 시간이

하루가 저무는 게 아쉬워 붙잡는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나는 새벽을 하루의 끝에 묻어버리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

지나온 새벽의 기억을 더듬으며

앞으로 맞이할 새벽을 기대해본다.


당장 내일부터 일찍 일어나

아침 햇살을 받아 고양이 털이 반짝이는 순간을 기다리며

커피 한 잔 여유를 즐길 수 있을까?




to be continued...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