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언제쯤으로 가고 싶을까?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지금이 제일 좋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에는 종종 그리워지는 시절이 있다. 아날로그 시대를 살았던 시간이다. 삐익, 지지직 거리는 잡음들 사이로 다이얼을 돌리며 주파수를 맞추던 시절. 선명해지는 멜로디를 찾아 헤매던 그때는 분명 지금과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흘렀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팝과 가요, 클래식을 들으며 나는 전 세계를 여행했다. 다양한 음악이 라디오를 통해 내 세계로 들어왔고, 나의 학창 시절도 음악으로 채워졌다. 그 시간 어디쯤에는 친구 집에 모여 방송국에 보낼 엽서를 만들던 저녁도 있었다.
문구점에서 관제엽서를 구입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두근거렸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제목으로 만든 소설 같은 사연을 써 내려갔다. 엽서를 꾸미는 일은 예술을 완성하는 일과 같았다. 모자이크로 여러 장을 줄줄이 이어 붙이며 대형 작품처럼 만들었고, 빨간 단풍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그렸다. 눈 내리는 마을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해 벽화처럼 그려 넣기도 했다. 그렇게 만든 엽서들은 단순한 사연이 아니라 내 청춘의 서사였다.
밤마다 ‘오늘은 어떻게 엽서를 꾸밀까?’ 숨어있던 창의성을 끄집어내기 바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오려 붙이는 속도는 더뎠지만 느림 속에서 언제나 깊은 몰입을 맛보곤 했다. 그때 나는 예술혼을 불태우는 작가였으며 화가였다. 그렇게 정성을 들여 열정을 쏟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방송작가나 DJ의 눈길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었다. 라디오에서 내 엽서가 소개되기를,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실시간으로 DJ와 청취자가 소통하는 시대다. DJ는 사서함 주소 대신 전화번호와 모바일 앱을 소개하고 엽서 대신 문자로 사연을 받는다. 편리하고 빠르다. 하지만 우체통에 엽서를 넣고 며칠을 기다리던 설렘은 이제 없다.
기다리는 순간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함께 자란다. 그 생각들이 나를 사색으로 이끌고 감정의 뿌리가 되어준다.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깊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보내는 일은 시간을 단축시키지만 그 찰나에 기다림은 없다. 채팅창에 글을 올리는 순간 내 글은 수많은 다른 글에 묻혀 바로 사라져 버린다. 차를 타고 지나며 스치는 풍경처럼 짧은 글들이 숏폼 영상처럼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못한다. 느린 것도 좋지만, 새로운 스마트폰을 보면 고양이처럼 호기심 가득 찬 눈빛이 된다. 나는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닌 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느 세대에 속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어느 시대에 살려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느리다고 뒤처지는 것도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맞춘다고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느림이 주는 여유 속에서 사색을 즐기고, 또 어떤 때는 빠른 변화에 반응하면서 그렇게 나만의 균형을 찾으면 된다.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되 눌러 않지 않고,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을 받아들이되 휩쓸리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천천히 나만의 지금을 살아간다. 지금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