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발가락이 부러졌다.
엄지발가락이 부러졌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오른발 엄지발가락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같이 들어요. 이거 무거워요.”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혼자 들 수 있으니까 그냥 놓으세요.”
“많이 무거운데.”
“괜찮아요, 들 수 있어요.” 직원이 말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불안한 예감이 스쳤지만 손을 놓으라고 반복하는 직원의 말을 계속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물건에서 손을 떼었다. 예상대로 그는 버티지 못했고 거대한 나무 가구는 내 오른발 위로 ‘쾅’하고 떨어졌다.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시간은 정지되었으며, 내 몸은 그대로 굳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반깁스를 했다. 불편한 걸음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양쪽 발에 분산되었던 힘이 왼발에 집중되었다. 오른발은 발바닥 전체가 아니라 발 날과 뒤꿈치로 버텨야 했다. 그제야 왼쪽 엄지발가락의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무심코 걸을 때는 알 수 없었던 움직임이었다. 걸을 때마다 왼쪽 엄지발가락 앞부분이 바닥을 꾹꾹 눌러주며 다음 걸음을 위해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동안 오른쪽 엄지발가락도 이렇게 움직이고 있었구나.' 사실, 살면서 한 번도 발가락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존재다. 신발 속에 숨겨지고, 양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작은 존재가 새삼스럽게 크게 느껴졌다.
오른발을 다쳤는데 왼쪽 다리가 아팠다. 힘을 지탱하지 못하는 오른발 덕분에 왼쪽 다리가 평소보다 두 배로 움직였다. 왼쪽 다리에 파스를 붙이고 찜질을 하며 그동안 참 많은 일을 무의식적으로 해냈음을 알았다. 단순해 보이는 모든 일상이 사실은 몸의 완벽한 균형이었다.
다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갑자기 심한 통증이 몰려와 꼬박 밤을 새웠다. 베개를 다리 사이에 끼워도, 무릎을 세워도, 옆으로 누워도 통증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불의 무게조차 고통이었다. 5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통증이었다. 어떤 고통인지 내가 아는 단어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몸이 느끼는 고통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무게에 짓눌려 죽었던 신경세포가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경세포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는 이 육체가 존재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장 실체적인 내 몸을 외면한 채, 다른 곳에서 의미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동경하며 나의 존재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프고 나서야 평소 무심하게 지나쳤던 몸의 움직임들이 나를 지탱해 주던 기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내 육체가 묵묵히 나를 떠받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 있었던 평범한 하루조차 그 기둥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너무 가까이, 언제나 곁에 있어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그 존재의 무게를 엄지발가락 뼈가 부러진 후에야 진심으로 알게 되었다. 발끝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움직임에 집중해 본다. ‘무엇도 사소하지 않은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되새기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