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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Oct 05. 2020

팬더믹 노마드, 또 다른 시작

코로나가 준 기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정착하는 줄 알았던 나의 미국 생활 13년 차, 샌프란시스코에서만 딱 10년.

올해 초 코로나로 인해 삶의 방향이 (적어도 지금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지난 6개월간 재택과 육아를 병행하며 어느 때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집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 적어지고 움직이는 생활 반경이 작아지며 일상이 더욱 단조로워졌다. 일상을 벗어나는 한 방법인 여행마저 자유롭지 않으니 특별한 기대나 기약 없이 매일 똑같이 돌아가는 하루에 익숙해졌나 싶다가도 막막해지기도 한다.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벌써 여름이 다 가고 10월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끝이 안 보이는 이 단순한 생활에 적응하면서도 지쳐가고 있던 8월의 어느 날, 남편의 회사는 평생 재택근무를 발표하였다. 남편의 회사 이외에도 이 지역의 많은 테크 회사들이 내년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하거나 평생 재택근무를 발표하였기 때문에 아주 놀랄만한 새로운 소식은 아니었지만 그게 우리의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던 것 같다. 당황스러우면서도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매년 하반기가 되면 우리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국으로 3주 정도 휴가를 떠난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해외 입국자 2주 격리 규정이 생기기도 했고 나와 남편 모두 한국에서 재택근무가 가능하기에 2-3달 정도 길게 한국에 들어갈 계획을 어렴풋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 회사의 평생 재택근무 소식을 듣고 나서 우리는 '한국에 좀 더 길게 있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의 타지에서 한국의 가족과 떨어져 살며 가장 아쉬운 점은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아인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모, 삼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아직 정규 교육을 시작하지 않은 3살 (한국으로는 4살) 나이이기에 장기간 한국에 나가 있어도 학교를 빠진다는 부담이 비교적 적고 이 기회에 한국에서 온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영주권 신분으로 미국 밖 해외에 체류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인 6개월 동안 한국에 나가기로 결정했다. (다른 과정을 거치면 최대 2년까지 해외에 체류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아인이 유치원비와 집 렌트비를 6개월간 내기에는 큰돈이라 유치원도 빼고 집의 짐들도 빼서 스토리지에 넣어놓고 가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게 남편 회사의 평생 재택근무 발표 이후 이틀 안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우리가 지난 6년간 살았던 밀브레(Millbrae)는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와 남편의 회사가 있는 마운틴 뷰(Moutain View)의 중간에 위치한 베이 지역의 작은 도시이다. 각자 북으로 남으로 통근하는데 위치의 이점이 있고 비교적 학군도 좋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밀브레를 중심으로 장기적으로 정착할 집을 사기 위해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오픈하우스를 가보기도 하고 부동산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우리의 예산과 취향에 맞는 집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물가와 집 값이 싼 다른 도시로 갈까 생각해보기도 했고, 우리 맘에 드는 집이 그나마 많고 나의 직장과 가까운 샌프란시스코 도시로 나가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늘 제자리걸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 방황 속에 이제는 적어도 남편은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서 살아도 괜찮은 상황이 되어 위치의 제약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이다. 그런 남편의 상황과 더불어 일한 지 10년이 조금 넘은 이 시점 잠깐 쉬어가며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나에게도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좋은 분들, 친구들을 생각하면 당연히 이곳에 있고 싶지만 미국에서 집 값과 생활비가 제일 비싸다는 베이 지역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실제로 우리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베이 지역을 떠나기 시작했고 주변의 몇몇 친구들도 한국에 장기간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나랑 외모부터 많은 부분이 닮은 남편에게 나랑은 다른 모험적인 기질이 있다. 그런 남편은 코로나 이전 한참 전부터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미국에 10년 있다가 유럽에서 살고 10년 후에는 더 동쪽으로 가서 살아보고 나서 한국으로 들어가서 살자고 이야기하곤 했다. 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나는 아이가 생기고 나니 더욱 아이에게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고 항상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었던 것 같다. 그런 우리 둘이 한국에 반년 간 들어가기로 마음을 맞추고 나니 다음 질문이 주어졌다. "그럼 우리 그 이후에는 어디로 갈까?"  갑자기 핸드폰을 들더니 미국 내에서 교육이 좋은 곳이 어딘지 검색해본다. 우리 가족의 주요 일원인 아인이의 교육 환경도 무시할 수는 없는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다. 메사츄세츠와 뉴저지가 1, 2위로 뜬다. "우리 그럼 보스턴이나 뉴욕으로 갈까?" 평소 같으면 무슨 소리냐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을 이야기인데 동부의 집값을 검색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우리에게 다가올 큰 변화에 그 어떤 설렘도 느껴졌다. 아직 우리는 젊고 (물론 젊음은 상대적인 것이지만 오늘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젊은 때이기에) 아인이도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고,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으니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고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기분과 모든 게 준비된 운명 같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알고 지낸 친한 사람들과의 헤어짐이 안타깝고 안정적이고 익숙한 환경이 아쉬웠지만 하나를 놓지 못하면 새로운 건 없다. 계속 이렇게 똑같은 곳에서 안주하며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생활도 10년이 넘어가며 도전의 기회가 많이 적어지고 불평이 늘어난 나에게 새로운 변화는 확실히 필요했다. 이것저것 모두 다 따지고 나면 바뀌는 건 없을 것 같았다. 우리 그럼 일단 한국으로 가서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살지 어디로 갈지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며 우리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기로 서로 마음을 모았다. 팬더믹 노마드(Pandemic Nomad) 어때?


하루가 지나기 바쁘게 새로운 뉴스로 가득했던 2020년, 우리도 올해의 분위기에 발맞추어 갑자기 새로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바로 다음날 두대의 차량 중 잘 안 쓰고 있던 차를 먼저 파는 것을 시작으로 한 달 반 동안 가구들을 정리하고 짐을 싸며 집을 정리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결혼하고 6년 동안 살며 아인이도 태어난 많은 추억이 가득한 우리의 밀브레 집을 정리하고 노마드 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불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레고 신난다. 물론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얻는 기쁨과 배움이 더 클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이 모든 여정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지고 만다.


어려운 상황에서 주변의 모든 사람이 평안하길 바란다. 우리도 평안 속에서 변화를 즐길 수 있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한걸음 옮겨본다.


We can do it! We can ma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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