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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Oct 09. 2020

코로나 일상 탐구

조경가 엄마의 직장 생활 편


[환경과 조경 10월호 16-17 페이지에 수록된 글의 원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하루의 일정을 알리는 슬랙(Slack) 메시지가 도착했다. 구글 캘린더(Google Calendar)로 오늘의 미팅 스케줄을 확인하고 밤새 지구 반대편에서 온 이메일을 훑어본다. 간단히 아침 요가를 하고 아이의 도시락과 아침을 준비한 후 출퇴근 시간을 아껴 조금 이른 시간 일과를 시작한다. 6:00 am.


나는 초고층빌딩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형 건축회사인 SOM(Skidmore, Owings & Merrill)의 오픈 스페이스 프렉티스(Open Space Practice) 팀에서 조경가로 일하고 있다. 요즘 한창 진행 중인 일은 뉴욕의 건축팀과 협업하고 있는 서울의 프로젝트이다. 지난 몇 달간 약 15명 정도 되는 뉴욕의 건축, 구조 팀과 샌프란시스코의 오픈스페이스 팀원들은 서부보다 세 시간 빠른 동부 시차에 맞춰 매일 아침 프로젝트 미팅으로 만나고 있다. 신입 사원부터 파트너까지 한 화면에 모여 디자인 진행 사항을 발표하고 리뷰하는 과정을 통해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다. 매일 아침 긴장과 열정의 뜨거운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8:00 am.


코로나 19로 인한 재택근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에도 미국의 지사인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엘에이, 워싱턴 DC 뿐 아니라 런던, 상해, 홍콩 등 전 세계의 동료들과 같이 일해왔기에 원격으로 업무를 조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일의 방식은 아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모든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오피스에 있는 팀원들과도 원격으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점과 출장의 제한으로 클라이언트 미팅도 모두 화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팅의 횟수와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의사소통, 협의, 신뢰 등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는 요즘이다.

 

지난 3월 이후 오픈스페이스의 모든 팀원들은 매일 아침마다 만나 프로젝트 상황을 보고하고 하루 스케줄을 파악해 매니저와 디자인 리뷰하는 시간을 정한다. 각자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매니저인 알렌과 나도 비록 화상이지만 매일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하루에 몇 번씩이나 만나 일을 하고 있으니 최근 반 년동안 나눈 대화가 지난 10년보다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아직 열 시인데 벌써 아침 프로젝트 미팅 이후 두 번째 만나서 다음 주 스케줄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10:00 am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손쉽게 클릭 한 번으로 참여할 수 있는 원격 미팅의 특성상 부담 없이 더 많은 정보에 선택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프로젝트나 팀 단위의 데일리 미팅뿐 아니라 도시 부서 스튜디오가 만나는 주간 미팅이나 스텝 미팅, 전체 오피스 타운홀 미팅, 디자인 리뷰(Thursday Design Review, Friday Tech Design Review)등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미팅에 더 많은 직원들이 참여하여 회사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직원의 깜짝 줌(Zoom) 생일 파티를 하기도 하고 회사 차원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크리틱을 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이나, 팬더믹과 관련하여 리서치와 발표를 하고 슬랙 채널(#global-equity)에서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가진 직원들의 정보나 고충을 나누는 부모 채널(#parents)이나 컴퓨터나 프로그램 등의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help-office-of-technology) 채널 등 다양한 슬랙 채널도 활성화되어 있다. 집에서 각자 하고 있는 일에만 몰입하고 있다 보면 세상의 어느 좌표에 서서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희미해지기 쉬운 요즘, 회사 커뮤니티 속에서 세상의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정보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중심을 잡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회사 역시 더 많은 소통의 기회와 통로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1:00 am

 

팀원의 깜짝 줌(ZOOM) 생일파티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해서 유명한 테크 회사가 많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지역은 실리콘밸리라고 불린다. 이 지역의 많은 테크 회사 직원들은 이전부터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어 있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유연하게 일을 해왔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각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이나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 19로 갑자기 나도 전례 없던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출퇴근 시간을 합쳐 2시간 정도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점과 항상 아쉽고 미안했던 아이와의 시간을 이전보다 더 많이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동시에 설레기도 했다. 일주일 정도 미리 재택근무를 시작한 남편과 유치원이 닫아 꼼짝없이 집에 있게 된 아이, 이렇게 우리 셋의 격리생활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엄마와 놀고 싶은 아이를 데리고 삼시 세 끼를 챙겨가며 일을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를 낳고 워킹맘으로 지낸지도 3년 차, 그나마 출퇴근으로 나누어져 있었던 일과 육아의 경계가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일을 하는 중간중간 남편과 번갈아가며 아이와 놀아주고 밤에는 부족한 일을 보충하기 위해 새벽달을 만나며 몇 달을 지냈다. 아이도 적응했는지 혼자 노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우리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요령이 늘어갔다. 일도 하면 할수록 탄력이 붙어서 일하는 시간이 자꾸 늘어만 가고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일을 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최근 기사에서 재택근무로 한 달 기준 1.4일 정도 일하는 시간이 늘었다는 글을 보았는데 실제로 나도 재택근무 이전보다 2배 정도 일을 더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이 와중에도 남편은 오전 시간을 빼서 아이랑 놀아주는 시간으로 우선순위를 두었고 나도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 오전에 할 수 있는 한 중요한 일들을 마무리지으려 노력하고 있다. 12:00 pm


4개월 동안의 격리 생활 후 아이의 학교는 다시 문을 열었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면 남편이랑 둘이 점심시간이라도 느긋하게 챙기나 했더니 그 시간이라도 아껴가며 일을 계속한다. 미팅을 하다 말고 아이를 픽업하러 가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몇 분 남지 않은 시계를 확인하며 서둘러 아이를 픽업하러 달려가며 그때서야 한숨을 돌려본다. 3:00 pm


아이가 집에 오면 간식을 챙기고 저녁시간 전까지 일을 마무리한다. 최대한 6시 이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그날 꼭 해야 하는 일은 아이가 자고 난 이후에 보충한다. 회사로 물리적인 출근과 퇴근은 하지 않지만 아침 6시부터 집 안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나와 우리의 하루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치열했다. 덕분에 더 부지런히 시간을 관리하며 살게 되었고 일과 육아 사이에서 모드를 빠르게 전환하는 능력과 그 순간에 집중하는 능력이 향상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의 소중함과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6:00 pm


이번 주 타운홀 미팅에서 9월부터 단계적으로 회사를 오픈하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같은 날 남편의 회사는 원하면 평생 재택근무를 해도 된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지만 반년이 훌쩍 넘은 미국에서의 재택근무에 잠시 쉼표를 찍고 장소에 구애 없이 일할 수 있는 장점을 활용하여 남은 한 해는 한국에 잠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환경과 조경 잡지 10월호가 발행될 때 한국에서 자가 격리를 시작하고 있을 예정이다. 한국에서의 원격근무 (Working From Korea)의 생활도 나눌 기회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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