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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su Jun 21. 2021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일과 삶, Part 1 - 일


작년 10월, 샌프란시스코의 집을 정리하고 편도 항공권을 끊어 한국으로 왔다. 남편은 업무상의 이유로 4개월을 채우고 먼저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고 나와 아인이는 이후로 3개월을 더 머물며 총 7개월이라는 시간을 한국에서 지냈다. 2008년 여름, 대학원 유학차 미국으로 출국한 이래 가장 긴 기간 동안 한국에 머물 수 있었다. 늘 그리웠던 한국의 (대) 가족과 일상을 함께 할 수 있어 매 순간이 특별하고 소중했던 꿈같은 시간이었다.

 

판데믹으로 재택이 계속 이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 안에서 대부분을 보내야만 하는 생활에 지쳐갈 때쯤 한국에 왔고 조금 긴 휴가를 쓰고 부모님, 우리, 그리고 아인이까지 삼대가 함께하는 또 다른 일상에 적응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을 2020년 한 해를 보내고 올해 초부터 또다시 "집"에서 일에 복귀했다. 


5:30 AM 서울.

한국 재택근무의 시작이다. 새벽 5시부터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2시 반까지를 근무 시간으로 정했다. 중국에 팀이 있기도 하고 매니저가 충분히 배려해준 덕분에 한국 시간으로 일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미국 시간으로 점심시간 정도부터 일을 하면 팀원들과 미팅을 하기 수월했기에 샌프란시스코와 반나절 이상 겹치는 일정을 택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과 함께 반 강제적 아침형 인간이 되었고 쉬어가느라 흐트러졌던 리듬을 다시 잡아가기 시작했다. 원래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다. 아침이면 조금이라도 더 누워 있고 싶어서 이불을 덮어쓰는 스타일. 하지만 아이를 낳고 1분 1초의 시간이 부족했기에 에너지가 다 소진된 저녁 시간보다는 아침 시간의 활용이 더 효율적임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예전엔 어떻게 그렇게 밤을 새워서 뭘 할 수 있었는지 이제는 그럴 체력이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야만 하는 것 이기도 하니 한편으론 슬프다.


이상적인 아침 루틴은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아침은 일로 시작해야 하기에 눈을 뜨자마자 슬랙이나 이메일을 확인한다. 미국 시간으로 오전에 있었던 미팅 관련 사항이나 오늘 급히 해야 할 일 등 주로 바쁜 일들의 연락이 잔뜩 쌓여 있는 걸 확인하면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해도 잠이 번쩍 달아난다. 그렇게 새벽 5시, 서머타임이 시작된 3월 중순 경부터는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모두 자고 있는 조용한 집안을 살금살금 걸어 커피를 내리고 앉아 나의 일과를 시작한다. 여긴 아직 해도 안 뜬 고요한 새벽인데 이미 하루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지구 반대편의 직원들과 미팅을 하며 모드를 맞춰본다.

 

해가 뜨는걸 이렇게 매일 본 적이 있었던가. 한참 일을 하다 보면 밖이 밝아온다. 아인이를 깨우고 챙겨 아파트 아래로 오는 등원 버스를 태워 유치원에 보낸다. 그리고 나는 양재천을 걷는다.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기도 하고 늘어질 것 같은 아침에 15분 정도 걸으면 왕복 5 천보가 채 안 되는 걷기 운동이지만 하루의 활력에 도움이 된다. 양재천을 걸어 매일 가는 카페로 간다. 누군가 장난으로 "사무실로 놀러 갈게!"라고 말할 정도로 일주일의 많은 시간을 한 카페의 같은 자리로 출근하게 되었고 마우스 패드를 놓지 않아도 마우스가 잘 굴러가는 2층의 내 전용석은 내 작은 사무실이 되었다. 오전에 도착하면 거의 사람이 없는데 한창 집중하다가 정신을 차려 고개를 들어보면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 하러 온 듯한 직장인 들이나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도 아이들 이야기에 바쁜 엄마들로 시끌벅적하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사방에서 열정적으로 이야기 중인 사람들이 동료가 되고 왠지 위로가 된다.

카페의 내 전용석.


샌프란시스코에 있든 한국에 있든 시차 말고는 일하는 데에 있어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위치에 상관없이 내가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잘 해내면 될 뿐이다. 시끌벅적해진 카페 안에서 하던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허둥지둥 짐을 챙겨 아인이를 픽업하기 위해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종종거리며 아인이를 챙겨야 하는 워킹맘의 삶도 어디서든 변함은 없다.


나의 출퇴근길 양재천.


한국에 있는 동안 모교의 설계 수업 리뷰에 참가하게도 했고 한국 조경 학회에서 주최하는 웨비나에 참석하는 기회도 있었다.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전남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비슷한 주제로 프로젝트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학생들과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대면임에도 불구하고 모니터 너머로 학생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어서 보람된 시간이었다. 한국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고 있는 같은 분야의 사람들과의 연결은 나에게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앞으로도 이런 비대면의 장점을 활용하여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필요로 하는 곳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이 생겼다. 


한국 조경학회 웨비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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