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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하고 호사스런 동네 공원

프로스펙트 파크

by Jisu

지난 주말, 뉴욕 시티 하프 마라톤이 열렸다. 남편을 응원하러 아이와 함께 나섰다. 평소라면 차들로 가득 찼을 도로가, 이날은 달리는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내어져 있었다. 뉴욕 시티 하프 마라톤 코스는 한 공원에서 다른 공원까지 달리는 ‘파크 투 파크 런’이다. 프로스펙트 파크에서 출발해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 맨해튼 이스트 리버를 따라 브라이언트 파크를 거쳐 타임스퀘어를 지나, 결국 센트럴 파크로 달려가는 코스! 내년에는 나도 꼭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 시티 하프 마라톤 코스, 2025 (Source: CBS News 3/16/25)


뉴욕을 대표하는 공원으로는 대부분 센트럴 파크를 떠올리겠지만 센트럴 파크와 멀지 않은 브루클린에는 프로스펙트 파크가 자리 잡고 있다. 센트럴 파크와 마찬가지로 프레드릭로 옴스테드 (Frederick Law Olmsted)가 설계한 공원으로, 센트럴 파크가 완공된 지 10년 후인 1867년에 완성되었다. 센트럴 파크 보다 면적이 작지만, 여전히 60만 평이 넘는 대형 공원이다. 센트럴 파크는 뉴욕 맨해튼의 도시 격자에 맞춰 설계되어 긴 직사각형 모양임에 비해, 프로스펙트 파크는 더 자연스러운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다각형의 비정형적인 모양을 하고 있다. 브루클린의 지형에 맞추어 일부 면은 곡선형으로 되어 있고, 다양한 방향에서의 접근을 고려한 형태로 설계되었다.


센트럴 파크는 세계적인 랜드마크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관광지로 방문한다. 구겐하임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등 유명한 박물관 등이 근처에 있어, 관광객들은 공원 방문과 함께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동시에 한다.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들에게 더 사랑받는 프로스펙트 파크는 브루클린 뮤지엄, 공립 도서관, 식물원, 동물원, 아이스링크 등의 문화시설과 연결되어 있어 단순한 녹지 공간을 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역 주민들에게 사시사철 제공한다.


매년 4월이면 브루클린 보태니컬 가든은 벚꽃을 구경하러 온 사람으로 붐빈다. 2024 봄.


나는 브루클린의 파크 슬로프에 살고 있다. 이 동네는 프로스펙트 파크 서쪽 경사면을 따라 형성되어 ‘파크 슬로프’라는 이름이 붙었다. 100년이 넘은 브라운스톤 주택과 울창한 가로수들이 조화를 이루는 이 동네는 격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도시의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유모차를 끄는 부모들을 비롯해 아이들 몇 명은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항상 거리가 생동감 넘친다. 공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도시 한가운데 살고 있지만 언제든 쉽게 찾을 수 있는 크고 럭셔리한 뒷동산을 가진 듯한 든든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이가 들떠 있다. 오늘은 학교에서 프로스펙트 파크로 필드트립을 떠나는 날이다. 공원 관리자인 어반 파크 레인저(1)와 함께 새를 관찰한다고 한다. 또한 공원에서 특별한 나무를 만나고 올 예정이라고 한다. 학기 초에 클래스 트리를 지정해 계절마다 그 나무를 관찰하고 스케치하는 시간이 있다. 지난달에는 이 지역에서 살았던 원주민들이 지었던 움막을 나무 가지를 이용해 만드는 체험도 했다. 다가오는 여름 방학에는 하루 종일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캠프에 보내달라고 하는데 도시의 중심에 살고 있지만 걸어서 쉽게 자연을 찾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파트에서 자랐지만, 근처 동네 공원에서 사생대회를 하고 주말이면 돗자리를 펴고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며 잠자리를 잡던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큰 동네 공원을 여러 모로 이용하고 있는 아이와 나는 정말 축복받았다.


프로스펙트 파크의 롱메도우에서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과 함께한다. 2021 여름

학교로 가는 길에 이웃집 반려견 루비를 만났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이 동네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 프로스펙트 파크의 롱메도우는 이른 아침 시간과 밤 시간에 사람이 적은 시간대를 정해, 목줄 없이 뛰어놀 수 있는 오프 리쉬 시간대가 있다. 그 시간에 공원을 찾으면, 온 동네 개들이 나와 자유롭게 뛰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진풍경이다. 도그 비치라 불리는 작은 호수에서는 개들이 수영도 즐긴다. 하지만 아이들이 노는 공간과 스포츠 필드에는 개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어, 공원 이용에 대한 배려와 질서가 조화를 이룬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공원으로 향한다. 오늘은 공원에서 하는 요가 클래스에 참여할 예정이다. 거꾸로 서서 끝없이 넓게 펼쳐진 메도우를 바라본다. 공원에서 각자의 방식과 속도로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혼자 책을 읽고 있는 사람, 간단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 배구를 하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원을 만끽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자유롭고 여유로웠던 메도우는 여름 저녁이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이나 야외 영화 상영 이벤트를 즐기러 온 사람들로 꽉 차기도 한다. 한여름 밤의 행복한 순간들이다. 겨울이면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순백의 메도우는 자연 썰매장으로 변신한다. 메도우의 다양한 높이와 경사의 언덕에서 썰매를 타고 눈사람을 만들며 동네 사람들과 자연스레 만나, 따로 또 같이 행복한 기억을 눈과 함께 쌓아간다. 계절마다 새로운 경험과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원이다.


오늘 아이의 방과 후 활동은 아이스 스케이트 강습이다. 여름 동안은 롤러스케이트 장과 물 놀이터로 이용되던 공간이 두 개의 스케이트 링크로 변신한다. 공원을 가로질러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지만 문제없다. 피크닉 하우스와 메도우를 지나고, 보트하우스를 지나 숲을 거쳐 걷다 보면, 목소리가 울리는 다리 아래를 지나면서 공원 속 숲과 호수를 배경으로 한 아이스 스케이트 링크가 나온다. 아이스 스케이트를 신나게 타고나서는 바로 옆 카페테리아에서 초콜릿 향이 가득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핫초코를 마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꽁꽁 언 호수 근처에 들렀다. 거위들이 호수 위에서 미끄러지듯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지는 해 아래에서 한참 거위를 구경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움츠렸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 프로스펙트 파크와 함께 있는 식물원인 브루클린 보태니컬 가든에는 노란 수선화 꽃과 핑크빛의 벚꽃이 손님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하다.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다.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이기도 하다. 봄의 따뜻한 햇살 아래서 보태니컬 가든을 거닐며, 벚꽃을 만끽하고 자연 속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낸다.




주말 아침, 프로스펙트 파크의 북서쪽 그랜드 아미 플라자라는 입구 광장에서는 파머스 마켓이(2) 열린다. 감성 있게 꽃 한 다발을 사고,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들을 적당히 사들고 공원에서 가볍게 산책을 즐긴다. 우리 옆으로 사람들이 같이 걷기도 하고, 킥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각자의 속도로 지나간다. 피크닉 하우스 근처에서는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 신랑, 신부가 공원을 배경으로 서약을 하고 있다. 하객을 포함한 공원의 사람들이 함께 축하한다. 우리는 친구의 생일파티가 공원에서 있다.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어우러져 자연 속에서 생일 파티를 즐긴다. 버블쇼나 마술쇼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생일 파티가 아니어도, 학부모 모임이나 선생님과의 만남 등 다양한 학교 모임이 공원에서 이루어진다. 평소에는 친구와 놀이터에서 만나 놀기도 한다. 공원 안에는 자연놀이터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놀이터가 곳곳에 있어 원하는 대로 골라가며 즐기는 재미도 있다. 특히 여름이면 물 놀이터와 쉽게 만날 수 있어, 아이들의 수영복이나 여벌옷을 챙기는 것은 꼭 기억해야 한다.

가을 단풍이 한창인 공원에서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2022 가을.


한국은 한창 러닝 붐이라고 하는데 나도 가을부터 러닝을 시작했다. 덕분에 지난 몇 년 보다 공원을 이용하는 빈도가 일주일에 세 번 이상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주로 달리는 코스가 있지만, 가끔 다른 길로 달리기도 한다. 어느 날은 공원 안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덕분에 공원에서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기도 하고 새로운 나만의 공원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정리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공원과 조금 더 친해지는 기분이다. 아침 6시, 아직 어둑어둑한 집을 나서서 공원을 향해 달린다. 잎이 조금씩 나기 시작한 겨울나무 사이로, 하루를 시작하는 햇살이 서서히 내려온다. 새삼 공원이 가까이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공원은 단순한 동네 공원이 아니다. 정말 럭셔리하고 풍성한 자연과 경험을 품고 있다. 공원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1) 뉴욕의 어반 파크 레인저는 프로스펙트 파크는 물론 뉴욕 공원의 전반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1979년, 뉴욕시 공원이 범죄와 마약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으로 도입된 파크 레인저는 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 파크 레인저는 공원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이 자연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탐험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 레크리에이션 활동, 자연 관찰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학교나 유치원과 연계한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자연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한다.


(2) 뉴욕의 그로우 뉴욕시티라는 프로그램이은 여러 곳의 그린 마켓을 지원하며, 로컬 농부들과 협력하여 유기농 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통해 뉴욕 시민들이 건강하고 신선한 로컬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로컬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속 가능한 식생활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환경과 조경 2025년 5월호에 수록된 글의 원문입니다. [슬기로운 공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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