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하다

by 정인한



내가 서우만할 때, 살았던 우리 동네는 막다른 골목이 많았다. 우리 집도 막다른 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낡은 주택이었다. 이 층에는 세 가족이 살았다. 세 가족은 한 화장실을 사용했지만, 시골집과 달리 수세식이라서 좋았다. 또 뭐가 좋았냐면 옥상이 있어서 좋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탁 트인 하늘이 있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빨래가 있었고 늘 청결한 냄새가 났었다. 정면을 바라보면 비슷한 모양의 평평한 옥상들이 들판처럼 이어져 있었다. 우주선 같은 물탱크들이 집마다 보였다. 난간이 낮아서 위험하긴 했지만, 옥상에서 뛰어다니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시골에서 살다 온 나는 그 풍경이 좋아서 옥상에 자주 올라가곤 했었다. 아찔한 난간을 꼭 잡고 내려다보는 풍경도 마음에 들었다.

막다른 골목은 차가 들어오기 어려웠음으로 안전한 놀이터 같았다. 꼭 두 세 명씩은 나와서 놀고 있었다. 구슬치기하든, 딱지를 하든, 집 놀이를 하든, 아이들은 골목에서 무엇이든 하고 있었다. 나는 심심해지면 누구야 같이 놀자 하면 되었다. 가끔 작은 트럭이 들어오기도 했다. 대게 부업거리를 싣고 오는 것이었다.

인근 신발 공장에서 가지고 온 고무 밑창들이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골목 한 쪽에 돗자리를 펴놓고, 인두로 밑창 테두리를 지지는 작업을 하곤 했다. 뜨거운 것이 지나가면 미끈해지는 것이 신기했는데, 보고 있으면 저리 가라고 했다. 고무 타는 냄새가 해롭다고 했다. 오히려, 나는 도시 냄새 같아서 좋았다. 해서, 친구들에게 갔다가 돗자리 옆으로 갔다가를 반복하곤 했었다. 아이들이 노는 소리와 깔깔대면서 알지 못하는 농담과 걱정을 주고받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작은 골목을 가득 채우는 날이 많았다. 그런 막다른 골목이 우리 동네에는 많았다.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조용한 산책로를 바라보는데, 왜 그런 생각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서우를 보면서 그 시절의 내가, 온이를 보면서 그 시설의 내가 문뜩 떠오를 때가 있다. 까마득하게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문뜩 그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 기억은 주고받은 사랑으로 덧칠이 되어서 아름다운 것일까, 실제로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모를 일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들에게 집중하면, 나의 낡은 유년 시절에도 옅은 의미가 새삼스럽게 돋아난다.

며칠 전에는 온이가 유치원에서 작은 꽃을 만들어왔다. 떨어진 은행잎을 모아서 묶은 것이었다. 어설펐지만, 마음이 그럴싸해서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지난 주말에는 동네 서점에 작은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고맙게도 초대를 받았다. 가게 되면, 인맥도 넓히고 좋은 기회였는데, 고민하다가 딸과 약속을 위해서 그냥 평소처럼 놀이터에서 하루를 보냈다.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타게 된 서우에게는 기억될 하루였고,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다른 날들은 비슷한 나날이었다.

계절이 겨울로 접어들면서 아침 출근길이 밤 같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른 새벽 한 번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결국은 조용히 일어날 수 있음으로 삶은 앞으로 나아간다. 몇 개의 과속방지턱을 지나, 좌회전 몇 번과 우회전 몇 번을 하면 금세 카페에 도착한다. 테라스에는 새로 구매한 난로를 틀고, 음악은 최근 손님에게 선물 받은 백건우의 슐만을 튼다. 겨우내 슐만을 듣지 싶다. 지금 이 글도 그 선율에 맞춰서 쓰고 있다.

가끔은 내가 커피를 내리는 작은 카페가 막다른 골목 같다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동네 엄마들이 넋두리를 늘어놓고, 주식 이야기, 집값 이야기, 남편, 자식에 대한 고민을 풀어 놓는 곳. 길 건너 산책로는 끊어지지 않고 아름다운 곳으로 이어지지만, 내 마음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느낌을 받게 하는 곳. 그래서 가끔 떠올라서 찾게 되는 곳.

오늘도 이 공간에서 커피를 만든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런 사실이 실감되는 날들이 있다. 그러면 두렵고 어지럽다. 홀로 남루한 모습으로 남게 될까 두렵고, 헤아리지 못한 세상사 때문에 어지럽다. 그럴 때는 잠시 길 건너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 하늘을 보는 것 외에는 아직 별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피부에 닿는 차가운 공기를 느껴본다. 겨울이 깊이 느껴질 때까지, 혹은 손님이 무용한 나를 필요로 할때까지 기다린다.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결국 차분해지는 것을 보면서 나의 걱정은 대개 사소한 것이라 믿기로 한다. 계절이 지나가면 자연스레 평평해지는 것이라 믿기로 한다.

늘 반복하는 다짐. 버는 돈과 무관하게 작은 의미를 찾아야지 다짐한다. 찾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위로를 전해야지 다짐한다. 늘 반복하는 동작. 포터 필터를 깨끗이 하고, 원두를 받는다. 잔을 체크하고 뜨거운 물을 받는다. 추출된 진득한 에스프레소를 뜨거운 물 위에 띄운다. 잔을 가지런히 하고, 크레마가 흩어지기 전에 커피 한잔을 기다리는 손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렇게 묵묵히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어제처럼 저녁이 온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운전대를 잡고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과 이어진 사람들을 생각한다. 만약에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난 세월 속의 막다른 골목을 서글프게 떠올렸을지 모를 일이다. 내가 온전히 보살펴야 하는 서우와 온이가 없었으면 지난 삶의 복기도 없을 것이다.

나는 반복이 괜찮은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를 반복하는 평범한 일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누군가를 위한 반복은 떨어지는 낙엽을 쓸거나, 흩날리는 눈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선한 것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다만, 요즘은 딸이 자라나는 홀로 멀리 걸어가는 만큼 마음의 반경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두 딸의 꽁무니를 따라가다 보면, 그런 길이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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