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나름 잘 풀린다고 생각되는 날이었다. 카페 건너편에 매화가 하나둘씩 봉오리를 맺기 시작했었다. 멀리서 사진을 찍어도 나오지 않는 몇 개의 점에 지나지 않았지만, 분명 그런 것이 보였다. 날씨도 조금은 봄의 기운이 묻어났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이 오랜만에 제법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소파에 앉아서 아이패드로 뭔가를 열심히 보는 두 딸에게 아는 척했었고, 아내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저녁으로 배달 음식을 먹었다. 조금은 어지럽혀진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로 실장이 신을 신발을 고르고 있었다. 커피 가루가 묻으니까, 검은색이 좋겠지. 착화감이 좋고 오래 신을 만한, 내가 한때 즐겨 신었던 것으로 살펴보았다. 몇 개 제품을 위시리스트에 넣었다. 그리고 이제 설거지를 해볼까, 아니면 딸의 숙제를 도와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자가 왔다. 이제 일을 한지 삼 주 정도 되는 K로부터 온 것이었다. 문자는 “사장님 급작스럽게 이런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로 시작했다.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아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현재 어머니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사업이 있습니다. 제가 그 사업에 참여할 의사가 전혀 없었으나, 어머니께서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고 하셔서 그 일에 같이 참여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하루빨리 말씀드리는 게 카페 운영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적을 것 같아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읽는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블루투스 헤드셋을 휴대전화에 연결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K에게 전화를 걸었다. 뭔가 중요한 것이 새고 있는 느낌, 그 양을 알 수 없는 느낌, 반복되는 일이지만 좀처럼 익숙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을 보면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는 굽으려는 어깨를 애써 바로 하면서 짧은 통화를 했다.
다행인 것은 바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행이다, 괜찮다, 그런 말을 되뇌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나의 무능력함이 실감 났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아내가 있으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저렇게 뭔가에 몰두하는 두 딸이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을 막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작은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앉아 있었다. 건너편의 서가에 꽂혀있는 책들의 제목을 보면서 한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책에 어떤 슬픔이 있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어떤 따뜻함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어렵다, 힘들다,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날 밤 나는 딸의 숙제를 도와주지도 못했다. 식탁을 정리하지도 못했고, 설거지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그다음 날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에 구직자로부터 받은 문자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K의 모친이 인테리어를 진행 중이라고 했으므로, 구인 광고를 올리고 경력자를 찾으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하지 싶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카페에 구인이 완료되어서요. 더 좋은 일터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내가 보냈던 문자에 따뜻한 답장을 보냈던 사람들에게 새로 자리가 생겼다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K에게는 실장에게 그만둔다는 말을 직접 전해달라고 했다. 되도록 간곡하고 예의 바르게 전해 달라고 했다. 아마도 열심히 가르쳤는데 갑자기 그만둬서 상심이 클 수도 있다고 했다. 강한 사람이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 입을 수도 있다고 했다. 상처를 입으면 다음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오늘도 새벽은 추웠다. 그래도 매실나무가 천천히 그러나 누구보다 꾸준히 꽃봉오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멀리서 그것은 작은 점에 불과했고, 작은 구멍처럼 보였다.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하지만, 볕이 드는 곳은 미열처럼 봄기운이 분명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