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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Jun 01. 2023

오월의 영도

오월에는 영도에 몇 번인가 갔었다. 흰여울마을 공영주차장에 차를 두고 해변을 끼고 걸었다. 아이들은 바닷바람과 어울려서 방파제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 따라 신나게 뛰듯 걷고, 아내와 나는 그 뒤를 따라가듯 천천히 걸었다. 산책로의 오른편으로는 수평선이 보였다.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잔잔한 먼바다에는 이름 모를 큰 배들이 정박한 듯 떠있었다. 그 바다를 배경으로 두 딸과 아내가 서있으면 꽤 그림 같아서 사진도 몇 장인가 남겼다.


사진을 남기고 그동안 왼편으로 끼고 걸어왔던 해안 절벽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꽤 가파른 계단이었지만, 중간중간 쉴 수 있는 곳도 있고 고개만 조금 돌려도 바다가 보여서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다 오르면 도로에 이면한 좁은 인도를 따라서 걸었다. 그다지 볼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발걸음은 어느 때 보다 가벼웠다. 오르막에 비하면 그 길이 편해서 일수 도 있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단골 식당이 나와서 일수도 있었다.


그 가게는 단층집에 수제 돈가스 전문점이라는 작은 간판을 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메뉴는 라면이었다. 객관적으로 안성탕면에 파와 땡초를 잘게 썰어 넣은 맛이었지만, 훨씬 더 특별한 무엇이 있었데 그것은 아마도 창밖으로 보이는 바닷 풍경같기도 했고, 그 라면을 흡입하는 먹는 두 딸의 모습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면발을 들어 올려 호호 불어가면서 먹는 모습은 <벼랑 위의 포뇨>에 나오는 소스케와 포뇨 같았다.


라면을 먹고 나서는 느릿느릿 걸어서 벼랑을 내려왔다. 피난민들이 정착해서 만들었다는 자고 낮은 집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면, 어느샌가 다시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넓게 보이는 곳은 소품가게와 카페가 줄지어져 있었다. 노키즈존도 있었지만, 어느 곳이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인형들이 있었고,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적은 돈으로 아이들의 웃음을 살 수 있었다. 하하 호호 웃으면서 앞서 걸어가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쫓아 가다 보면, 어느새 원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출발점에는 작은 몽돌해변이 있었다. 배도 적당히 부르고 노곤해져서 그 해변에서 잠시 머물렀다. 아내와 나는 차에서 가지고 온 캠핑의자에 앉아 있었고, 아이들은 해변에서 이쁜 보석을 찾으며 놀았다. 도시에서 버려진 유리병이 마모되어서 만들어진 씨글라스가 꽤 많았다. 아이들은 그것을 진짜 보석인양 여겼다. 이런 시간들도 그렇게 여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본적격인 더위가 오기 전까지,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날씨만 괜찮다면 당분간 바다에 갈 것 같다. 고맙게도 두 딸이 바다만 보여줘도 무척이나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좋은 차를 태워주지는 못하지만, 괜찮은 숙소에서 일박하는 것도 어렵지만, 운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간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세월이 이어질 수 있으면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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