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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한 Sep 30. 2023

종희 아저씨

종희 아저씨는 내가 반지동에 살 때 1층 주인집에 살았다. 키가 컸고 동네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눈이 컸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 아는 척을 하면 눈썹이 활처럼 펴졌다. 큰 눈이 더 커졌다. 딱지를 치거나 축구를 하고 있으면 뭐 하고 있는 것이 뻔하게 보이는데도, 느그들 뭐하고 노노 하고 물어보곤 했었다. 물어보며 웃었는데 웃으면 입주름이 느긋하게 지면서 무척 인자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종희 아저씨는 아들은 내 친구였다. 이름은 종희,  하얗고 키가 나보다 컸다. 싸움은 안 하고 공부는 중간 즈음하는 친구였다.


  종종 종희 집에 놀러 가곤 했다. 종희 방에는 침대가 있었고, 286 컴퓨터가 있었다. 그 컴퓨터로 황금 도끼라는 게임을 처음 해봤다. 다락방에는 레고가 많았다. 그 레고를 한 번도 가지고 놀지는 못했지만, 흑기사의 성이랑 드래곤이 있는 레고 모형이 방 한쪽에 설치되어 있었다. TV 광고에서 보던 것보다 조금 작긴 했다. 또 종희 집에는 비디오테이프가 늘 있었다. 드래곤 볼이 항상 몇 개씩 있었다. 종희가 보고나면 나도 잠깐만 보고 줄게 하고 빌린 비디오를 다시 빌려서 봤다. 나는 띄엄띄엄 그것을 보았다. 비 오는 날은 현관 앞 포치에 앉아서 부루마불을 했다. 종희는 주사위를 잘 굴려서 더블이 잘 나왔다. 나는 좋은 땅에 잘 안 걸렸다. 파산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파산하면 은행을 했다. 은행을 하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종희네 집 2층 안채에 살았다. 2층 현관 앞에서 보면 종희 집 마당과 대문이 잘 보였다. 주인집 마당에는 고운 잔디가 자랐다. 담을 둘러싼 곳에는 나무가 잘 자라고 있었다. 동백도 있었고, 개나리도 있었고, 2층 높이 까지 올라오는 커다란 목련도 있었다. 2층 난간에서 기대어 그 아래를 바라보면 진짜 우리 집이 아닌데도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이런 집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계절 그냥 보고 있으면 흘러가는 구름처럼 시간이 잘 가는 풍경이었다.


  여름에는 담벼락 너머 삼거리와 삼거리 앞의 녹이 슨 하늘색 철문과 그 집 위로 솟은 무화과나무와 그 옆을 왕왕거리는 말벌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 집 바깥채에는 문신한 젊은 삼촌과 이쁜 누나가 살았다. 무성한 잎새 너머로 그 둘이 키스하는 모습을 몇 번 보았고, 그것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 누나의 배가 불러오는 것도 보았다. 저러다 터지는 것 아닌가 싶었던 어느 날 그 누나와 그 삼촌은 갑자기 사라졌다. 그것이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집 2층 안채에 사는 아저씨는 평상에 앉아 소주를 자주 마셨다. 빨랫줄에 매달려서 펄럭이는 흰 속옷과 셔츠를 그늘 삼아서 낮부터 술을 마시는 아저씨였다. 어느 겨울에는 그 집 아주머니와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경찰도 출동하고 동네가 떠들썩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술 마시는 모습을 보기 어려졌다. 알고 보니 택시 운전사가 된 듯했다. 골목에 택시를 닦는 아저씨 보았다.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물며 주윤발처럼 택시 지붕을 닦고 있었다. 인사를 하면 배우처럼 멋지게 손을 흔들곤 했다.


  가을에는 특히 엄마, 아빠가 집에 없었다. 보통 북면에 과수원 일을 하러 갔다. 그런 날은 종희 아저씨가 나와 동생을 불러서 같이 목욕탕에 가자고 했다. 그러면 종희와 종희 아저씨와 동네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에서 우리는 냉탕에서 놀았다. 잡기 놀이를 하거나 물총놀이를 했다. 동네 아저씨들은 관대해서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놀아도 별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저씨는 종희 등을 밀어주고 나와 동생 등도 밀어줬다. 나도 아저씨 등을 몇 번인가 밀었다. 아저씨는 등이 무척이나 희고 연한 느낌이었는데 꽤 질겼다. 빨개지도록 밀어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참 신기했다. 나는 아픈데 아저씨는 왜 안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게 진짜 어른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집에서 고등학교 이학년 때까지 세 들어 살았다. 고등학교 이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이웃과 가깝게 지낸 적이 없다. 공부한다고 바쁘기도 했고 창밖을 자주 볼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창밖을 보았다고 한들 별일이 없었을 것 같다. 아파트는 같은 풍경을 보지만 서로를 잘 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희네 집에 세 들었던 기억은 꽤 소중한 것이 되었다. 어쩌면 마지막 이웃에 대한 기억일 수도 있다. 오늘 종희 아저씨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입관하지 않아서 장례식장에 가지는 못했다. 내일 일어나면 최대한 일찍 일어나 장례식장에 갈 생각이다.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느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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