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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난 Sep 06. 2021

당신이 쉬고 싶을 때 쉬게 되길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이랑 님을 알게 된 것은

5년 전 '신의 놀이' 뮤직비디오 때문이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형식의 노래에 맞춰

한 번도 보지 못한 형식의 춤이 연결되는 영상은

놀라울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서로 닮은 결의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생긴 몸을 움직이는 군무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몸짓을 표현했다고 했다

어깨가 결려서 팔꿈치를 들어 올려 푸는 몸짓

바닥을 걸레로 닦고 닦고 닦는 몸짓


이 뮤직비디오에 반해서 앨범을 다운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이랑 님의 앨범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랑 님은 음원 유통구조의 불합리함에 항의하는 마음으로

디지털 음원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가사집과 함께 본인의 에세이가 실린 <신의 놀이>라는 책을 구입하면,

10곡의 노래를 다운 받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알려준다고 했다

너무나 놀라운 판매방식이었다

이런 패기라니,  사람은 말도 안 되게 용감하네. 너무 멋있네.



그리고 이랑 님은 다음 해 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신의 놀이' 최우수 포크 가수상을 수상하며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수상소감 도중 경매에 부치는 퍼포먼스를 해버린다

창작가인 동시에 싸우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인 동시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

예술인인 동시에 노동자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이번 주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었던

<책읽아웃, 김하나의 측면돌파> 마지막 방송을 했다

마지막 게스트는 이랑 님과 슬릭님이었다

멋있는 사람 둘이 고되게 살아가며

멋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이야기였다

김하나 작가님이 후기에  말이 기억에 남는다


-

시선들과 피로와 과로의 톱니바퀴에 끼인 채로 살아가는 이들의 유쾌함과 우울함이 다 담긴 방송이 되었습니다.

제가 잔소리를 유독 많이   같기는 한데 마지막 방송의 다급함(?)으로 이해 바라며...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다급했다.

이렇게 멋진 사람이 이렇게 힘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렇게 멋있는  만드는 사람이 이렇게 주눅 들어 있으면 안 되는  아닌가.

이렇게 멋있는 창작자가 이렇게 노동에 치이면 안 되는  아닌가.

나의 아이돌이자 롤모델에게 힘을   있는 사람이

이제 더 이상 방송을 하지 않는다니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점심시간에 병원에 내려가서 링겔 조리개를  풀어서

2배속, 3배속으로 영양제를 맞는 다급함으로

작가님 어서  이야기해주길.

이랑 님 어서  많이 기운 내길. 


오늘은 밤에 운전을 하면서

이랑 님의  앨범을 들었다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당신의 일이  거랍니다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너희가 먹는 빵을 만드는 사람일 


<늑대가 나타났다 中>


우리는 죽고 싶은 걸까

아니면 살고 싶은 걸까

아이고 모르겠다

그냥 잠만  편하게 들면 좋겠다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 中>

​​


마음에 쌓인 고통을 전부 쏟아내면

거칠고 쑤시고 날카로워야 하는데

노래가 너무도 우아해서 

그것이  사람의 빛나는 재능이라서

고되고 바쁘고 피곤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서

입을 삐쭉거리면서 코를 훌쩍거렸다

스포티파이에서 이랑 님을 검색하면

기부를   있다는 사인이 뜬다

기부의 뜻은 '대가 없이 돈이나 물건을 내놓는' 것이라고 하니까

이것은 틀린 말이다


이랑 님의 가사처럼

 땅에는 충격이 필요하고

 대신 몸을 던져 꾸준하게 충격을 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은 거래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5만 원을 지불했다

<김하나의 측면 돌파>를 더 이상 못 듣는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이지만

김하나 작가님처럼

쉬는 것이 필요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그러고 싶고 이랑 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모습의 성공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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