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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Mar 20. 2023

삶에도 공식이 있다면

중. 꺽. 마.

“아빠. 이거 해줘."

아들이 언제 샀는지 모를 루빅스 큐브를 들고 와서 맞춰달라 조른다. 

어릴 때도 못했던 것을 지금 와서 당장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마 유튜브에 검색하면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30분 뒤

늙어버린 뇌를 한탄하며 

"아들. 이거 아빠가 좀 더 고민해보고 해 줄게 미안. 아직은 이해가 잘 안 되네."

결국 이틀이나 지난 뒤에야,

"오 아들 아빠 이해했어. 이제 했다."

결국 해냈다. 

아들과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오늘은 그래도 뭐라도 했다는 충만감이 차오른다. 

'그래 이거라도 한 게 어디냐. '

내 인생도 큐브처럼 공식 몇 개로 풀고 싶어 진다. 


평범한 일상이 반복된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일상이다. 

아들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고, 회사는 무료하지만 

반대로 루팡짓을 해도 월급이 따박 따박 나오는 신의 직장이다. 

이런 내가 힘들다고 얘기한다면 아마도 

'복에 겨워서 그런다.'는 소리를 들어도 싸겠지. 


그런데 뭔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요 몇 개월 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이제 곧 마흔인데, 뭔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 

'직장에서 본인의 업을 정의해라'라는 강의를 유튜브로 듣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훌륭한 강의에는 이견이 없지만, 내 삶을 돌아보니 도저히 

내 '업'이 정의가 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들어오는 일을 쳐내기 바쁠 뿐. 

무언가 경험이 쌓인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제 정년을 마치고 은퇴한 선배들과, 

지금도 현역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선배들을 둘러봐도

잘 모르겠다.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정의하고 또 했는지를. 


막상 내가 생각한 '연구자'의 이미지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과는 괴리가 크다. 


바로 가고 있는 걸까. 

 

열심히 하지 않더라도, 딱히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면 놀랍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괜스레, 혹시 가정불화 때문에 일에 집중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손한 생각마저 든다. 

그래 정말 불손한 생각이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향을 알고 있겠지


'받는 만큼 일한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은 

본인의 직장이 그만큼 구리기 때문이다라는 유현준 건축가의 말을 떠 올리며 

오늘도 

'그래.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이런 식으로 만든 직장이 이 조직이 문제가 있다.'

며 남의 탓으로 돌리기도 해본다. 

그런데, 

그런 구린 조직에 함께 있으면서도 열심히 하는 저 사람은 뭔지 

뭔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도 위안이 되는 것은 솜씨는 형편없지만 

그리고 매일 쓰면서도 생산이 아니라 뭔가 싸지르는 것 같지만 

이렇게라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그래도 뭐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오늘도 내 글에 

공감을 하는 누군가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써 내려가 본다. 


최근 넷플릭스로 재밌게 본 '치히로 상'이라는 영화에서는 

사람들 안에 작은 외계인이 있고, 그 외계인은 각자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대사가 나온다. 

(그래서 가족들이 서로 이해를 못 하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가 핵심)


아마도,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건 

같은 행성에서 온 동지를 찾는 설렘이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무섭다는 '권태'가 언제 내려앉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브런치에 글을 한편 올리고 나면 잠시라도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에 얹은 돌덩이가 하나 사라지는 기분이라 

이 맛에 이거라도 부여잡고 싸질러 본다. 



정말 '뭐'라도 해야 되는데

도대체 '뭐'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곧 마흔인데

인생 성공방정식을 풀 수 있는 

공식이 있으면 좋겠다. 


근데 아마, 그런 공식이 있어도 

꾸준히 계속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겠지 

결국 중요한 건 실행력인 것을. 

다 알면서 오늘도 신세한탄만 하다 시간이 다 간다. 


인생.

참 어렵다. 


아오. 이런 글은 이제 더 이상 쓰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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